한국과 캐나다의 인연은 130여 년 전 캐나다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시작됐다. 최초의 캐나다인 선교사인 제임스 스카스 게일(한국명 기일)은 1888년 개인 자격으로 조선에 입국해 전도와 교육 활동에 매진했다. 그는 ‘춘향전’ ‘구운몽’ 등 우리 전통 문학을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렸다. 캐나다 장로회는 선교사 윌리엄 존 맥켄지(매견시)가 한국에 간 지 2년 만인 1895년 만 33세의 젊은 나이에 풍토병과 과로로 사망하자 교단 차원의 한국 선교를 결정하게 된다. 이후 파견된 200여 명의 선교사들은 의료·교육 등 한국의 근대화에 공헌했다.
■올리버 에이비슨(어비신)은 한국 근대 의학의 아버지로 최초의 서양식 종합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을 설립했다. 평소 “한국 사람으로 죽고 싶다”고 했지만 1935년 미국에 잠깐 갔다가 아내 사망 등으로 인해 영영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현지에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등 한국 독립에 힘을 보탰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석호필)는 3·1운동의 민족 대표 33인에 더해 ‘제34인’으로 불릴 만큼 일제의 잔혹성과 한민족의 독립 투쟁을 해외에 알린 인물이다. 로버트 그리어슨(구예선) 역시 교회·학교 설립은 물론 이동휘 등 간도의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했다. 플로렌스 머레이(모예리)와 셔우드 홀은 각각 한센병 치료, 결핵 퇴치에 헌신하다 일제에 의해 추방됐다.
■캐나다와 국교를 수립한 것은 1963년이다. 하지만 캐나다는 이미 한국전쟁 때 미국·영국 다음으로 많은 군인을 파병한 혈맹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성공은 우리 힘만으로 이룬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캐나다와 2014년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2022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등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다. 한화그룹이 60조 원 규모의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 수주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캐나다 국민에게 ‘과거를 잊지 않는 한국’을 보여줘 수주전이 성공하고 미래 관계가 더 진전되기를 기대한다.
<최형욱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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