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좋은 거 아름다운 거 많이 많이 느끼렴.” 플로리다에 사는 언니 시인과 통화 중에 들려온 새해 인사말이다. 시인의 남다른 인사말을 마음에 두고 되뇐다. 아름답다는 게 빛나고 높은 것만은 아닐 테지. 슬픔, 고통, 비루함을 빚어 예술로 재탄생시키지 않는가.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를 스치고 가는 모든 느낌표에 귀를 열어두어야지.
몇 년 전 부산 국제아트페어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터라, 마침 1월 둘째 주에 열린다는 LA 아트쇼에 가보기로 했다. 참가 갤러리마다 보유하고 있는 작가가 다르기 때문에 미술 시장의 흐름과 함께 개성 넘치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나름의 재미는 덤이다. 그림을 사지 않더라도 나의 오감을 총동원하여 즐기면 된다. 나에게 미술이나 그림에 대해 좀 아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호기심이 많다고 해두자. 그림이 탄생하게 된 뒷얘기에 더 관심 갖는 편이라고.
아트쇼 마지막 날에 가서 그런지 예상보다 붐비지 않았다. 나는 90개의 갤러리 부스를 차례로 둘러본 후, 특별히 끌렸던 몇 군데를 다시 찾아서 그림 앞에 서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미 팔려나간 자리엔 새 작품으로 채웠기에 내가 놓친 작품도 많은 듯했다. 한국에서는 10개 화랑이 참가했는데 그중 한 곳의 신인 작가가 내 눈에 들어와 한참을 그림 앞에서 서성거렸다. 첫날에 가장 큰 대표작이 팔렸다며 화랑 대표가 즐겁게 귀띔을 해주었다.
다섯 시간 동안 그림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집중했다. 색과 빛을 빨아들이고 작가의 노동을 상상했다. 보고 느끼고 질문했다. 답은 없다. 그 순간 내가 느끼는 게 답일 것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 오롯이 내 몫의 감동이고 해석이리라.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느낄 수 있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내 몸과 마음에 전해지는 느낌표가 크고 강력할수록 다양한 각도의 표현이 따라온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오래 머물러야 한다. 깊이 들여야 보아야 한다. 작가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궁금해서 혼자 질문하다가 나를 휘감고 차오르는 어떤 순간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어느 날 남다른 심미안을 지니게 될지도 모르겠다.
마감 시간이 다가올수록 작품 아래 붙은 빨간 스티커가 늘어가고 팔리는 부스와 팔리지 않는 부스의 온도 차가 확연해졌다. 이왕이면 한국 측 작품이 많이 판매되어 관계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전시장을 휘리릭 다시 둘러본 후 떠나는 발걸음이 개운하지만은 않았다. 행사의 성격상 많이 팔고 못 파는 결과를 만들게 되고 팔리는 작가와 안 팔리는 작가로 나뉘게 되는 것 같아서다. 자칫 그것이 창작의 세계에서 우열을 가리는 잣대로 비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림 앞에 서 있던 다섯 시간 동안 내가 좋은 생각을 하고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힘을 얻었다면 잘된 것이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고 발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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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영라 수필가 미주문협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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