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파벳 올 시설투자 규모 850억달러
▶ 삼성 320억달러·SK 155억달러 격차
▶ “기업 자발적 투자마저 막아선 안돼”
▶ 금산분리 풀어도 자금수혈 난항
정부가 일부 대기업에 대한 특혜 논란을 무릅쓰고 지주회사의 행위 제한 및 금산분리 완화에 나선 것은 우리 기업들이 혼자 힘으로 구글이나 엔비디아 같은 빅테크들과 맞대결을 펼치기 힘들다는 위기 의식 때문이다.
실제 최근 주요국 정부들은 기업들에 보조금을 주는 재정 지원을 넘어 기업 지분을 직접 사들이는 방식까지 동원하며 국가 대항전을 펼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경제력 집중 등 부작용에 매달리다가 생존 절벽에 몰릴 수 있다는 게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글로벌 인공지능(AI)·반도체 기업들의 시설 투자 규모는 매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급증하고 있다. 실제 올해 아마존의 시설 투자 규모는 최대 1185억 달러(약 175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이는 내년도 우리나라 본예산(728조 원)의 25%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이다. 구글 지주사인 알파벳이 올해 850억 달러를 투자하고 대만 TSMC도 420억 달러를 쏟아부을 계획이다. 삼성전자(320억 달러)나 SK하이닉스(155억 달러)도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경제 규모가 작은 한국 기업이 미국이나 중국·일본 등과 지속적으로 경쟁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장치산업인 반도체 특성상 시설 투자가 한 세대 지연되면 1~2년 내에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가 발생한다”며 “투자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조차도 3개 분기 연속 적자가 나면 시설 투자를 멈춰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일본 등 경쟁 국가들은 우리 기업을 맹렬한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일본 미쓰이글로벌전략연구소는 한국의 반도체 시장점유율이 2023년 12%에서 2027년 13%로 1%포인트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메모리 시장 1위인 한국조차도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더 이상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같은 위기감 속에서 정부가 꺼내든 카드가 첨단산업에 대한 지주사 규제 및 금산분리 완화다. 정부는 특히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국내 자회사(지주회사의 증손회사)를 두려면 지분을 100% 보유하도록 한 규정을 50% 이상으로 완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율 규정을 100%에서 50%로 낮추면 손자회사는 신규 사업에서 자금 마련 부담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리스 회사를 보유하는 길도 열어 줄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금산 분리 원칙을 적용하는 방식에 일부 변화를 줄 것으로 관측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규제가 완화되면 값비싼 설비를 리스 형태로 써도 되고 시간이 흐른 뒤 감가상각된 가격으로 사들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현재는 일반 지주사가 금융업을 영위하는 국내 회사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는데 이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금융리스업이 표준 산업 분류상 금융업으로 분류되다 보니 일반 지주사가 리스업을 하는 데 제약이 있다”면서 “지주사가 리스업을 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관련 규제를 완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이번 조치에 따라 SK하이닉스를 손자회사로 둔 SK그룹이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외부 투자를 받아 증손회사를 세운 뒤 이 회사가 반도체 설비를 새로 도입하거나 공장을 신설하면 SK 전체 투자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SK 입장에서 보면 설비 도입에 드는 비용을 일시에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전보다 재무 부담을 덜 수 있게 된다.
다만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 논란은 부담 요인이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공정위가 특정 기업에 집중해 규제 완화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밝힌 바 있다. 증손회사 규제는 마지못해 풀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국내 기업들을 옥죌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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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구경우·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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