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 오페라 데뷔, 세계적 바리톤 김기훈
▶ 22일 개막 푸치니 ‘라보엠’의 마르첼로 역
▶ BBC 카디프 콩쿠르 우승 등 세계무대 ‘우뚝’
▶ “한인사회 가장 큰 LA 무대 서 기쁘고 영광”
![[인터뷰] “화려하고 세련된 전통 오페라의 정수 기대하세요” [인터뷰] “화려하고 세련된 전통 오페라의 정수 기대하세요”](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25/11/20/20251120192210691.jpg)
22일 개막하는 LA 오페라의 ‘라보엠’에서 마르첼로 역으로 미 서부 무대에 데뷔하는 세계적 바리톤 김기훈의 리허설 모습. [사진제공=LA 오페라/By Cory Weaver]
한국이 낳은 오페라 스타 중 한 명으로 세계 주요 오페라하우스를 무대로 급격히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는 바리톤 김기훈이 처음으로 LA 오페라 무대에 선다. 뉴욕 메트 오페라, 런던 로열오페라,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등 세계 정상급 무대를 이미 섭렵해온 그는 LA 오페라단 40주년 시즌의 두 번째 작품인 푸치니의 ‘라보엠(La Boheme)’에서 마르첼로 역으로 데뷔한다. LA 오페라가 ‘라보엠’을 선보이는 것은 지난 2016년 이후 9년 만이다.
바리톤 김기훈은 오는 22일 LA 오페라의 ‘라보엠’ 개막 공연을 앞두고 지난 18일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캘리포니아에 처음 와 봤어요. LA는 한인사회가 가장 큰 도시이기도 하고 꼭 와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미국에서 손꼽히는 오페라하우스의 40주년 무대에 서게 돼 정말 영광입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세계를 무대로 활약해 온 김기훈이 LA 오페라 데뷔를 의미 있게 여기는 이유다.
■허버트 로스 연출의 ‘라보엠’ 속 마르첼로
LA 오페라의 이번 ‘라보엠’ 무대는 영화 ‘터닝포인트’, ‘푸트루스’ 등으로도 유명한 연출가 허버트 로스(Herbert Ross)의 클래식 연출 버전이다. 김기훈은 이 연출을 “관객이 오페라에서 기대하는 모든 정수를 보여주는 무대”라고 설명했다.
“요즘 유럽은 모던 연출이 많아요. 실험적이죠. 그런데 로스의 연출은 영화적이고 디테일이 살아 있어요. 관객이 ‘이게 오페라구나!’ 하고 느끼게 만드는 화려함도 있고요. 전통적이면서도 세련된 방식이라 무척 선호합니다.”
독일 하노버 슈타츠오퍼(국립 오페라 하우스)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했던 그는 유럽 극장의 ‘정해진 리듬’을 언급했다. “독일은 예술 분야도 노조가 워낙 강해서 아침 10시~1시 리허설, 3~4시간 휴식 후 저녁 연습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장점도 있지만 답답할 때도 있어요.”
반면 미국 시스템은 “계속 새로울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캐스트가 바뀌고 작품 접근 방식도 유연해 프리랜서 가수로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곡성 청년에서 세계무대로
전남 곡성 출신으로 부모님의 재능을 이어받아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하고 잘 했던 그는 고3이 되던 무렵 우연히 동네 교회 성가대 세미나에서 한 첼로 전공 선생님의 눈에 띄며 성악 인생이 시작됐다. “테스트 한번 받아보라 해서 갔는데, 그 길로 성악을 시작했죠. 그땐 노래를 ‘개인기’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광주로 왕복 1시간씩 레슨을 다니고 연세대 음대(10학번)에 입학한 뒤에도 그는 테너인지 바리톤인지 정체성을 고민했다. “묵직하게 소리를 만들려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다보니 제 소리가 찾았어요. 밝은 하이 바리톤, 그게 제 길이더라고요.” 연세대에서 바리톤 김관동 교수를 사사한 그는 “진정한 은사님은 김관동 선생님”이라 말하며 깊은 존경을 드러냈다.
독일 유학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서울국제콩쿠르 우승 후 미국 진출을 고민했지만, 연세대와 하노버가 맺은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 극장에 발탁되면서 진로가 바뀌었다. “독일어 A,B,C도 못 읽던 상태로 독일 갔어요. 지시를 오해했다며 화내는 연출과 설명이 엇갈려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죠. 너무 억울해 혼자 한국말로 풀기도 했고요.” 그러나 그 시절의 극장 경험은 지금의 그를 만든 결정적 토대였다.
■무대 위에서는 ‘나는 김기훈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노래하는 배우’라고 말한다. 그만큼 연기 욕심도 많다는 뜻이다. “메소드 연기처럼 캐릭터에 젖어들어요. 무대에 올라가면 ‘나는 김기훈이 아니다’라고 생각해요. 마르첼로의 성격과 제가 20대 때 친구들과 철없이 놀던 모습이 닮아서 더 자연스럽죠.”
그는 특히 ‘라보엠’ 1막의 유명한 대사 “Ho un freddo cane!(개춥다!)”를 언급하며 웃었다. “이탈리아어도 요즘 우리 ‘개○○’ 같이 무엇을 강조하는 뜻의 속어가 있어요. 카네(cane)가 ‘개’인데, 그런 유머 포인트가 있어 재미있죠.”
■스카르피아의 꿈
마르첼로로 호평을 받아오고 있는 김기훈이 가장 해보고 싶었던 역은 의외로 악역 스카르피아(‘토스카’)였다고 한다. 실제 달라스 오페라에서 이 역할을 맡았었다. “웃는 상이라 악역이 될까 고민했는데, 오히려 웃으면서 잔인한 사이코가 더 무섭잖아요. 그런 역할, 너무 매력적이죠.”
그는 ‘징크스 없는 삶’을 강조한다. “시험 전 떨린 적이 많았는데 대학교 2학년 때 어느 날 문득 ‘왜 내가 떨지?’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건 뽐내기 위한 직업인데. 그 순간 불안이 사라졌어요.” 그래서 오히려 루틴이나 징크스는 만들지 않는다.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념 때문이다.
■“좋은 무대로 보답”
그의 공연 일정은 이미 2~3년치가 잡혀 있을 정도로 세계무대의 콜을 받고 있다. 이번 시즌은 LA를 시작으로 베를린,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 칠레 산티아고까지 이어진다. 내년 가을에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라보엠’의 쇼나르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마지막으로 LA 한인들에게 인사를 부탁했다. “한인 커뮤니티가 가장 큰 LA에서 여러분을 만나는 게 정말 기쁩니다. 오페라 주역으로 한국인이 세계적인 무대에 서는 일이 아직 흔치 않아요. 손흥민 선수가 경기장에 나오면 반갑듯, 그런 마음으로 응원해주시면 큰 힘이 될 겁니다. 좋은 무대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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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김기훈은
연세대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 하노버 음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지난 2016년부터 3년 동안 독일 하노버 슈타츠오퍼 솔리스트로 활동했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와 뤼벡마리팀 성악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2019년에는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와 오페랄리아 콩쿠르(도밍고 국제성악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하며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지난 2021년 세계적 권위의 ‘BBC 카디프 콩쿠르 싱어 오브 더 월드’의 아리아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메인 프라이즈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최고 오페라하우스들의 콜을 받는 스타 가수로 부상했다. BBC 카디프 대회는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브린 터펠 등 걸출한 바리톤을 배출한 세계적 권위의 성악 콩쿠르로, 당시 가디언지는 김기훈의 우승에 대해 “눈물과 경외를 자아내는 벨벳 같은 바리톤 음성으로 정상에 올랐다”고 평했다.
지난 2023/24 시즌에는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 코벤트가든에서 ‘라보엠’의 마르첼로, 달라스 오페라에서 ‘토스카’의 스카르피아,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서 ‘라보엠’의 쇼나르, 그리고 도이체 오퍼 베를린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 역으로 잇달아 데뷔했다.
2024/25 시즌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라보엠’의 쇼나르 역으로 데뷔했고, 덴마크 로열 시어터에서는 ‘돈 카를로’의 포사 역을 맡았으며, 잘츠부르크 부활절 축제에도 초청받아 세계 정상급 성악가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인터뷰] “화려하고 세련된 전통 오페라의 정수 기대하세요” [인터뷰] “화려하고 세련된 전통 오페라의 정수 기대하세요”](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25/11/20/20251120192522692.jpg)
LA 오페라의 이번 ‘라보엠’ 공연은 11월22일부터 12월14일까지 LA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총 6회 펼쳐진다. 바리톤 김기훈(오른쪽 2번째)이 동료 가수들과 연기하고 있다. [사진제공=LA 오페라/By Cory Weaver]
■LA 오페라 ‘라보엠’ 공연 일정
-11월22일(토) 오후 7시30분
-11월30일(일) 오후 2시
-12월4일(목) 오후 7시30분
-12월6일(토) 오후 7시30분
-12월10일(수) 오후 7시30분
-12월14일(일) 오후 2시
■티켓:
www.LAOper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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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아 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