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으로 뿌리내리다] 테이크루트 안미정 대표의 요리 이야기 (2) [살림으로 뿌리내리다] 테이크루트 안미정 대표의 요리 이야기 (2)](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25/11/14/20251114092904691.jpg)
오미자 화채. 사진 양지현 | Photo by Jee Yang
장선용 선생님(이하 장 선생님)의 산림경제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 실마리는 ‘음식 하는 게 즐겁고 그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이 장 선생님 이전에도 있었다’는 사실에서 찾았다.
“(사진을 보여주며) 이게 1945년인가 그래요. 그러니까 그때 얼마나 가난할 땐데. 우리 엄마야, 엄마. 우리는 식구끼리 밥 먹어 본 적이 없어. 이렇게 큰 데다가 밥상을 쭉 놔. 그러면 20-30명 쭉 앉어. 그러구 살았다구. 만날 사람이 바글바글 많아. 우리가 팔판동 살았는데 엄마 쪽 친적, 아버지 쪽 친적, 그니까 다 우리 집에 와 있는 거야. 우리 아부지가 그러고 사셨기 때문에 우리 엄마는 안 되는 일이 없어. 다 우리 집서 밥 먹던 사람들 이어 갖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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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 초안.
![[살림으로 뿌리내리다] 테이크루트 안미정 대표의 요리 이야기 (2) [살림으로 뿌리내리다] 테이크루트 안미정 대표의 요리 이야기 (2)](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25/11/14/20251114092904693.jpg)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 영문판에 저자가 사인을 하고 있다.
집안 곳곳에서 장 선생님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아들 폐백과 결혼식, 손주 백일과 돌잔치 등 인생사의 중요한 순간들에는 꼭 음식 이야기가 있었다. 서재와 주방, 그리고 거실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집안 곳곳이 익숙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눴다. 내가 처음으로 맛본 것은 오미자 화채였다. 새콤달콤한 맛에 아삭 씹히는 배 맛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그 옆의 두텁편과 개성약과도 맛보았는데 그 맛이 얌전하면서도 풍미가 넘쳤다. 음식을 더 맛보고 싶은 만큼 음식에 담긴 장 선생님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졌다.
-(미국엔) 언제 오셨어요?
“73년도에 우리 남편이 여기 페어차일드로 왔어요. 한국에 페어차일드가 1966년에 들어왔다구. 반도체 고참중의 고참이야.”
-그 당시에 어떻게 오셨어요?
“비행기 탔지. 우리는 그때 휴가까지 받고 해서 일본에 한주일 친구집 가서 놀고, 그다음 하와이 가서 호텔에서 또 있구, 그리고 11월 3일 날 미국에 온 거야.”
-오셨을 때 바로 머물 곳이 있으셨어요?
“회사에서 해주니까. 그 엘까미노에 카바나 하얏인가에 큰 방을 두 개를 해주더라구. 애들이 막 너무 좋아하는 거야. 73년도 서울을 생각해 봐. 근데 우리 큰아들이 하와이에서 일본에서 김치도 못 먹고 그래선지 미국에 와서 애가 얼굴이 퉁퉁 부어버렸어. 그래서 친구네 집에서 오라그래서 갔다구. 그때 김치를 해줬는데 그 김치를 딱 한 젓가락 먹었는데 싹 낫더라구.”
-선생님을 살린 단 하나의 음식을 꼽으라면요?
장 선생님은 단연 ‘김치’를 꼽았다.
“김치를 담글 때 국물을 꼭 부어야 하는데 김치가 국물 속에서 익어야 김치가 맛있다구. 그래서 국물을 하는데, 김치를 담그고 다음날 김치 국물 맛을 봐요. 그 다음에 국물을 붓는데 나는 꿀가루를 좀 넣어. 그 다음에 육수를 만들어서 넣으면서 거기다 조선간장을 꼭 넣어요. 소금을 넣으면 김치가 써져.”
김치 담그는 비법에 이어 자연스럽게 장 선생님의 산림경제에 큰 영향을 준 엄마와 어린 시절 이야기로 흘러갔다. 모두가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 어린 장 선생님은 엄마를 도와 김장을 했는데 매년 배추를 500포기씩 담갔다고 한다. 어느 날은 그 많은 배추를 마차에 싣고 오다가 마차 바퀴가 빠져 아찔한 상황을 겪기도 하셨다고.
피난길에 재봉틀을 챙겨가 옷을 짓고, 모찌떡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어간 엄마의 억척스러움은 타지 생활이 힘겹지만은 않도록 장 선생님을 단련시켰다. 또 없는 살림에도 이웃과 음식 나눔을 마다하지 않았던 엄마의 인심은 그것을 익히고 실천한 장 선생님의 삶 곳곳에 스며들었다.
엄마에게서 좋은 것을 많이 물려받은 장 선생님이지만 개중에는 바꾸고 싶은 것도 있다고 하셨다. 장 선생님은 손대중, 눈대중으로 만들어 ‘만들 때마다 맛이 변하는 음식’보다 정확한 계량법에 기초한 레시피로 만든 ‘한결같은 음식’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장 선생님의 정확한 계량법 이야기는 7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에는 외국 손님을 맞을 한식 전문점을 찾기 힘들었는데 장 선생님댁이 ‘한식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귀빈 방문이 잦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장 선생님은 엄마와 언니에게 음식 레시피를 배우고자 물었는데 그때마다 ‘적당히’ 그리고 ‘알아서’ 하라고 핀잔을 들었다.
“나는 그냥 딱 레시피대로 하잖아. 정확해 아주. 하나도 안 틀려. 엄마는 엉터리였어.”
그때부터 손대중 눈대중 말고 정확한 레시피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장 선생님은 온갖 요리책을 사서 그대로 직접 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해보아도 실패하는 레시피가 떡 만들기였다. 그래서 미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타지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떡 전문가 강인희 선생님을 찾아가 93년부터 10년간 배웠다. 그곳에서의 배추 300 포기 김장은 일도 아니었다고 회고하는 장 선생님의 호탕함에 우리는 모두 웃었다.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은 장 선생님이 직접 연구 개발한 음식 레시피를 외국에 사는 며느리에게 적어 보낸 편지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레시피가 맛있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던 종이 조각이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문화원을 통해 1993년 12월 1일 책으로 출간되었다. 총 30만 부 이상이 팔린 이 책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주는 책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영향력을 뻗어 나갔다. ‘양육자가 딸/아들에게’ 전하며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맞춤 선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사진 하나 들어가지 않은 이 책이 커다란 유명세를 타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책에 담긴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똑같은 양의 똑같은 음식맛을 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은 내가 초대받아 방문한 대다수의 가정집 책장에 꽂혀 있었는데 최근에는 이 책의 효용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화까지 듣게 되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딸아이가 대학교 기숙사로 나가기 전에 이 책의 레시피를 따라 삼색 나물을 손쉽게 무쳐내었고, 그 맛도 일품이었다는 것이다. 부모는 그제야 딸아이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잘 먹고살 수 있겠다며 안심했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만들 수 있는 음식,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한결같은 맛을 이어가려는 노력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지난 칼럼에서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탄생한 냉동식품은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정체성 결핍을 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생산지를 알 수 없는 식재료들과 읽기도 어려운 화학첨가물로 버무려진 냉동음식도 ‘한결같은 맛’을 낸다. 그러나 냉동식품의 한결같은 맛은 ‘표면적인 맛’에 지나지 않는다. 손으로 전해진 온기가 깃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맛과는 달리 ‘깊이와 너비까지 가득한 맛’은 말 그대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손으로 만든 음식에서만 우러난다. 이 맛이야 말로 과거와 현재를 잇고 나아가 미래로 나아가는 살아있는 맛이다.
장 선생님의 산림경제 안에는 나를 살리고 세대를 살리는 음식 만들기 비법뿐만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는 삶의 지혜가 들어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세대에 걸쳐 내려온 맞물림의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장 선생님의 산림경제가 가진 좋은 점들이 우리와 맞물려있는 차세대들에게도 전달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장선용 선생님의 요리 레시피]
오미자 화채
오미자 우린 물 만들기
준비물: 오미자 1/2컵, 따뜻한 물 5컵
1. 오미자는 물에 흔들어 씻는다.
2. 따뜻한 물을 붓고 12시간정도 두어 빨갛게 우린다.
화채 국물 만들기
준비물: 오미자 우린 물 3컵, 설탕물 1/4컵, 꿀 1큰술, 잣 약간
1. 오미자 우린 물을 체에 걸러 3컵 분량을 담는다.
2. 1에 설탕물과 꿀을 넣고 저어 화채 국물을 만든다.
3. 완성된 화채 국물을 차게 둔다.
4. 상에 낼 때는 잣 약간을 띄워 낸다.
주의: 오미자를 우릴 때는 반드시 유리나 플라스틱 그릇을 써야한다. 쇠그릇을 쓰면 색깔이 변한다. 숟가락도 쇠숟가락이 아닌 유리나 플라스틱 숟가락을 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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