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오래전부터 이상(理想)적인 사회를 꿈꿔왔다. 현실의 부조리와 불평등, 권력의 남용 속에서 사람들은 늘 정의롭고 평등하며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해 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철인(철학자)이 통치하는 계급 없는 정의로운 국가를 제시하면서, 지혜와 절제, 용기와 정의가 조화를 이루는 이상국가의 모습을 철학적으로 설계하였다.
이 국가에서는 사유재산을 제한하고 개인보다 전체의 조화를 우선시하는 공공 중심의 질서를 통해 이상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사유재산이 폐지되고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노동하고 분배받는 섬나라 사회를 상상하였다. 그가 그린 유토피아는 당시 영국 사회의 계급제도와 탐욕적 현실을 비판하고자 한 정치적 풍자이자 이상사회의 설계도였다.
이와 같은 서구의 이상사회 사상은 19세기 덴마크의 교육운동가 니콜라이 프레데리크 세베린 그룬투비(Grundtvig)의 사상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는 농민을 위한 자유로운 학교, 즉 ‘삶을 위한 학교’를 제안하고, 공동체 중심의 교육과 자치, 협동을 통해 실제 농촌 공동체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그의 운동은 단지 교육 개혁에 그치지 않고, 현실 속에서 가능한 이상공동체 건설의 실험이었다.
이상사회에 대한 동경은 서양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조선 후기의 문인 허균은 그의 소설 ‘홍길동전’에서 신분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율도국’이라는 섬나라를 등장시킨다.
홍길동은 현실의 부조리를 떠나 새로운 나라를 세워 백성들이 평등하고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이는 조선 사회의 봉건적 신분제와 지배 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한국적 이상사회에 대한 상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상사회에 대한 동경은 20세기 초,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일제강점기, 미국에 망명한 도산 안창호는 단순히 정치적 독립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그는 독립된 조국을 위한 준비는 곧 도덕적 민족의 형성이라고 보았고, 이를 위해 미주 한인사회 내에 자치적 공동체를 세우고자 했다. 그는 한인들의 공동자치를 실현한 ‘대한인국민회’를 조직하고, 독립자금 조성뿐 아니라, 교육, 상조, 문화, 출판 등 모든 영역에서 한인 사회가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이 공동체를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Republic of Korea)’라 부르며, 독립된 조국의 모델을 미주에서 먼저 실현하고자 했다. 도산의 공동체는 단지 망명자의 조직이 아니라, 실질적 민족 공동체의 실험장이었다.
한편, 이탁은 주로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1910년대 부민단 등 자치조직을 운영하며, 교육과 생산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건설을 시도했다. 그는 단순한 항일 무장 투쟁이 아닌, 한민족 스스로 운영하는 자치적 농촌 공동체를 통해 독립운동의 기반을 강화하려 했다.
그의 이상촌 구상은 실질적인 농업 생산, 교육 시스템, 공동의식 형성을 동반한 것으로, 독립 이후 조선이 지향해야 할 이상사회의 기초 모델이기도 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코리아타운(Koreatown)은 초기에는 이민자들의 생존 공간으로 출발했으나, 점차 교육, 종교, 상업, 문화 활동이 융합된 복합적 한인 공동체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세대 간의 단절, 본국과의 관계 및 이념적 갈등, 현지 사회와의 소통 및 참여 부족 등으로 인해 공동체성이 약화되고 있다.
코리아타운은 단순한 상권이나 민족 거주지가 아니라, 한민족의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며, 세계 시민 속에서 자율과 공존을 실현할 수 있는 현대판 이상촌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전 세계에 존재하는 코리아타운들은 단순한 이민자 집단을 넘어, 정체성과 도덕성, 자치성을 갖춘 공동체로 재탄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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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완/코리안리서치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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