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요구 거부에 시범케이스로 대학길들이기?…타대학에도 적용 시사
▶ 외국인 유학생들 불안감 확산… “트럼프, 유학생 협박 수단 사용”
▶ 자금지원 중단 이어 재정부담 악화 우려…하버드, 법적 대응? 타협?

하버드 대학교[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반(反)유대주의 근절 수용 등 정부의 교육정책 변경 요구를 거부한 세계적 명문 하버드대를 상대로 외국인 학생 등록을 받지 못하도록 결정하면서 양측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하버드대의 외국인 학생들은 다음 주 졸업식을 앞두고 22일 갑작스럽게 전해진 이 같은 소식에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대학 측의 대응과 사태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 '반전시위 진원' 엘리트 대학 표적…"다른 대학도 유사 조치 고려"
크리스티 놈 미 국토안보부 장관은 이날 하버드대에 보낸 서한에서 하버드대를 향해 "외국인 학생을 등록시키는 것은 특권이며, 캠퍼스에서 외국인을 고용하는 것 또한 특권"이라며 하버드대의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tudent and Exchange Visitor Program·SEVP) 인증 취소 사실을 알렸다.
앞서 국토안보부는 지난달 16일 하버드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들의 불법·폭력 활동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4월 30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하면서 미제출 시 SEVP 인증을 박탈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놈 장관은 기한이 지난 후 하버드에 자료 제출 기회를 추가로 줬지만 하버드대가 불충분한 응답을 제공했다고 이 같은 조치를 결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내려진 SEVP 인증 취소 조치로 인해 트럼프 행정부와 하버드대 간 갈등의 골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지는 형국이다.
하버드대는 미국 대학 중에서는 처음으로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근절 등을 명분으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교내 정책 변경 요구를 거부한 후 미 정부와 갈등을 겪어왔고, 이번 조치도 이 같은 갈등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지난해 미국 대학가에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중단 등을 촉구하는 반전시위가 확산하면서 미 전역의 캠퍼스가 몸살을 앓은 바 있다.
이 가운데 하버드대를 비롯한 주요 명문대들은 반전 시위의 진원지로 꼽혀왔고, 트럼프 행정부는 캠퍼스 시위에 대응을 느슨하게 했던 주요 대학들을 상대로 강도 높은 제도 개편을 요구해왔다.
제도 개편의 중심은 반유대주의 근절에 있었지만, 그 외에 대학의 입학·채용 관련 'DEI(다양성·포용성·형평성) 정책'이나 진보주의적 편향에 대한 교칙 수정을 주된 요구 사항에 포함하는 등 일명 '엘리트 대학'들을 트럼프 행정부 성향에 맞게 손보려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본인이 유대인이기도 한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은 정부 요구안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수용을 거부했고, 이후 갈등은 격화 양상을 보여왔다.
트럼프 정부는 수년간 나눠 지급하는 3조원대 규모의 연방 지원금을 중단하는 등 보복 조치에 나섰고, 하버드대에 대한 면세 지위 박탈을 검토 중이다.
하버드대는 이에 반발해 지원금 중단을 멈춰달라는 소송을 낸 상태다.
놈 장관은 이날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컬럼비아대 등 다른 대학에도 하버드대와 유사한 조치를 고려 중인지에 대한 질문에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답해 이번 하버드대 조치가 다른 대학들을 향해 보내는 '본보기 사례'임을 숨기지 않았다.
◇ 외국인 유학생 등록 불가…하버드 유학생들 '충격'
국토안보부의 SEVP 인증 취소는 외국인 유학생의 하버드대 등록을 전면 차단한다는 점에서 이례적으로 극단적인 조치로, 그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국토안보부는 이번 조치와 관련해 SEVP 인증 상실에 따라 하버드대가 더는 외국인 학생을 등록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올해 하버드대학에 합격했거나 유학이 결정돼 입학을 앞둔 외국인 학생들은 자신의 거취에 대한 불안감과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됐다.
또 기존에 하버드대에 유학중인 외국인 학생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존 외국인 재학생은 다른 학교로 편입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법적 지위(체류 자격)를 상실하게 된다고 국토안보부는 밝혔다.
SEVP는 유학생 비자 등을 관리하는 국토안보부의 프로그램이다.
대학들은 SEVP의 인증이 있어야 외국인 학생 등에 유학생 자격증명서(I-20) 등을 발급할 수 있으며, 이 자격이 없으면 학생(F·J 등) 비자를 받을 수 없다.
로버트 셔먼은 센추리재단 선임연구원은 블룸버그에 "이번 조치는 학문 교류를 위축시키고 과학적, 역사적 연구에 중앙집권적 통제를 가하려는 악의적인 시도"라고 지적했다.
외국인 유학생들도 이날 갑작스러운 소식에 충격을 받으며 불안감에 휩싸였다.
스웨덴 출신 유학생 레오 거든 씨는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외국인 유학생 없는, 전 세계 최고의 인재들을 데려올 수 있는 능력이 없는 하버드는 더는 하버드가 아닐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협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 지원금 중단 이어 재정압박 가중될 듯…추가 법적 대응 전망
하버드대는 이번 조치가 '불법'이라고 반발하며 즉각 대응에 나설 것임을 시사한 가운데 하버드대에 가해지는 재정 압박은 한층 가중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버드대 학생이 연간 내야 하는 비용은 2024∼2025학년도 기준 등록금과 주거비, 각종 서비스 요금 등을 포함해 약 8만3천 달러(약 1억1천500만원)에 달한다.
하버드대는 외국인 유학생도 미국 학생과 동일한 기준으로 등록금이나 주거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공식 입장이지만, 미국 대학에서 외국인 학생은 연방 정부 지원금을 받을 자격이 없다 보니 일반적으로 미국 학생보다 더 많은 학비를 지불하는 경향이 있다.
놈 장관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 게시글에서 "대학들이 외국인 학생을 등록시키고 그들의 높은 등록금으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대학기금을 불리는 혜택을 누리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라고 말했다.
하버드대는 연방정부 지원금 중단 이후 관련 연구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채용을 중단하는 등 재정 타격을 헤쳐 나가기 위해 이미 강도 높은 비용 절감에 들어선 상태다.
정부의 조치에 대해 "불법"이라는 입장을 밝힌 하버드대 측은 SEVP 인증 취소를 중단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는 등 곧바로 대응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NYT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가 하버드의 두 번째 법적 대응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하버드는 트럼프 행정부의 지원금 중단이 위법하다며 이를 멈춰달라는 소송을 낸 상태다.
하버드대에서 언론을 담당하는 제이슨 뉴턴 디렉터는 이날 성명에서 "우리는 하버드대와 미국을 풍요롭게 하는 140여개국에서 온 외국인 학생과 학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하버드의 능력을 유지하는 데 전적으로 전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공동체 구성원에게 지침과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신속히 노력하고 있다"며 "이런 보복 조치는 하버드 공동체와 미국에 심각한 해를 끼칠 위험이 있고, 하버드의 학술 및 연구 사명을 훼손한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조치 이후 트럼프 행정부와 하버드 간 갈등이 새 국면 전환을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놈 장관은 이날 하버드대에 보낸 서한에서 "하버드대가 다음 학년도 이전에 SEVP 인증을 회복할 기회를 원한다면 72시간 이내에 요청한 외국인 학생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하버드대는 그동안 정부의 조치에 대해 학문의 자유 침해라고 반발해왔다는 점에서 강경대응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나 타협을 모색하며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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