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에선 큰 틀에서 두개의 신분제도를 운영해 왔다. 로마제국을 세운 로마시민을 자유인으로, 그리고 포로로 끌려온 자들을 노예신분으로 구분하는 엄격한 신분제를 유지해왔다. 실질적으로 참정권과 관직 계급은, 오직 ‘자유인’에 국한돼 있었다. 또한 자유인에게만 법절차에 의해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성경에서는 로마시민권자인 즉 자유인, 사도바울의 재판을 유대점령지의 로마총독 조차도 로마 시민권자의 재판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유인이 되어야, 국가의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공공시민으로 필요한 공정한 사고를 견지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노예는 명령에 맹종하는 열등한 존재로 하나의 재산으로 치부되어 매매와 증여상속의 대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한다. 그것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은 할 수 없는, 정치라는 예술을 펼칠 줄 아는 존재이며,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공동체인 ‘폴리스’ 라는 민주주의 정치공동체를 조직할 줄 아는 존재, 자유인임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무력하고 왜소한 존재인지, 사회적 약자가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몇년전 국적 항공기 땅콩 회항 사건에서, 사무장이 경영주 앞에 무릎 꿇고, 계약직 노동자가 무릎 꿇고, 강남의 아파트 경비원이 갑질하는 아파트 주인에게 무릎 꿇는다. ‘무릎 끓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 노예 민주주의 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전후에 벌어진 국정운영에서 소용돌이쳤던 상황은, 온국민들에게 커다란 실망감과 혼란, 상처를 남겼다. 최고의 국정을 다루는 국무회의에서, 토론은 커녕 대통령의 ‘말씀’을 받아쓰기에 여념이 없는 장관들, 그를 상전으로 모시고 있는 여당 정치인들, 이들의 행태는 주인 앞에서 무릎 꿇는 노예의 모습 그 자체다.
‘어느 누구도 그의 더러운 발로 내 마음을 밟도록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마하트마 간디의 명언이다.
자유인은 본능적으로 신으로부터 유산으로 받은 고귀한 신적인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서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보석, ‘양심’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심연에 존재하는 양심을 무시한다면, 그는 비겁한 자가 되어 권력에 쉽게 복종하며 평생 노예로 살 것이다.
철학자 니체는 자신의 양심보다 사회의 관습이나 법에 순응하는 심리를 ‘군중본능’ 이라고 했다. 인간은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군중에 영합한다. 군중이 가진 폭력이 개인의 힘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아테네인들은 민주주의가 정착하고 왕정 독재로 회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 한 명 한 명이 스스로 ‘숙고’ 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민주주의를 ‘중우정치’ 라고 비판했다.
각 정당은, 자신들의 이론이 최선이라고 주장하고, 그 정당에 속한 사람들의 무조건적 충성을 요구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단이 만든 우상 만을 숭배하고, 경쟁 정당은 무비판적으로 파괴하려고 달려든다. 요즘 우리 주위에서 수시로 마주하는 정치의 민낯들이다.
단테는 자신의 작품 ‘신곡’에서 비겁한 자들을 지옥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최악의 인간으로 묘사했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중립적인 행위는 비겁 이라고 정의되며, 가공할 만한 역사적인 사건과 폭력 앞에서 아무런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을 ‘악’ 이라고 말한다.
“이 나라는 가히 ‘거짓말 공화국’이다.” 라고 한다. 그들에게 맞설 무기는 ‘지식과 사유’이다. 한국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그러나 그 결과도 지지한 후보나 당이 패배한 경우에는 승복하지 않는다.
법원의 판결도 자신이 바라던 것과 다르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투표 결과는 ‘부정선거’이고, 원했던 것과 다른 판결은 ‘편파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겁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자유인을 리더로 선택해야 한다.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가를 가릴줄 알아야 한다. 정치적 편법과 불법적 사건들이 사법부로 넘어갔다. 사법의 정치화라는 우려에,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에 임한다”고 반론하고 있다.
그들도 빛나는 거룩한 양심을 지키는 ‘자유인’ 이어야 한다. 자신의 양심을 저버린 상태로 권력에 굴해서 재판에 임한 판사는 바로 ‘노예’ 인 것이다. ‘ 당신은 자유인입니까? 노예입니까?’ 오늘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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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응남/변호사·15대서울대미주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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