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에서 로키산맥의 끝자락으로 이사 오며 제일 많이 변한 것은NFL경기를 빠지지 않고 시청한다는 것이다. 특히 콜로라도팀 브롱코스(Broncos)를 열렬히 응원한다. 심지어 우리 팀이라 부르며. 브롱코스의 성적은 8년전, 최고조에 달해 리그의 챔피언에 등극, 슈퍼볼 승리의 기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은 리그의 최하위에 머물렀다. 그래도 한국할머니의 우리팀 사랑은 여전하다. 브롱코스의 게임이 있는 날이면 어디를 가든 기어를 풀로 장착한다. 심지어 성당 미사를 갈 때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주홍색과 푸른 색이 어울린 유니폼을 찾아 입는다. 장갑에 모자까지 써야 직성이 풀리는 열성 팬.
시즌이 시작되는9월 프리게임부터 열광은 시작된다. 그러다 브롱코스 게임이 마무리되면 나의 열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싸늘하게 식는다. 올시즌은 새로 영입한 신생 쿼터백, 보닉스(Bo Nix)를 앞세워 게임을 잘 풀어 나갔다. 시즌 10승을 달성하며 와일드 카드까지 진출. 지난 몇 년간의 성적에 비하면 월등히 나아진 상황. 다음 시즌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안겨준 우리 팀. 그러나 플레이오프 첫 게임인 와일드 카드에서 강적 버팔로, 빌스(Buffalo, Bills)를 만나 완패했다. 동시에 나에게는 급격한 금단 증상이 찾아왔다. 입맛도 없고 모든 것에서 관심이 사라졌다. 매주 이어지는 다른 팀들의 플레이 오프 게임. TV는 켜져 있지만 무심히 지나치며 힐끔거릴 뿐. ‘와~ 엥~ 뭐지?’ 하는 등의 반응이 전혀 없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한다.
시즌을 시작하며, 헬멧 뒤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붙이고 나오는 구영회가 소속되 있는 펠콘(Falcons)에 관심이 갔다. 그러나 팀은 플레이오프까지 오지 못했다. 이어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노틀담 대학을 나왔다는 카일 해밀튼(Hamilton)이 뛰고 있는 레이븐(Ravens)에도 가끔 시선이 갔다. 레이븐은 어제까지 플레이 오프 게임을 뛰었고 눈이 펄펄 내리는 빌스(Bills)구장에서 아쉽게 패했다. 천사의 도시에서 화마를 헤치고 플레이오프까지 가서, 필라델피아 이글스(Eagles)를 만나 고건분투했던 LA의 램스(Rams). 꼭 이겨야 하는 당위의 이유가 있었지만 날씨 탓에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사람의 마음은 참 알 수 없다. 나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듯하면 시선이 가고 마음이 쓰인다. 그런데 어제, 레이븐마져 져서 더 이상 마음가는 팀이 없다. 이젠 어느 팀이 리그의 챔피언이 되고, 슈퍼볼에 올라 간다 해도 시큰둥하다. 다들 캔사스의 취프스(Chiefs)가 3연승을 할 거라고 예상한다. 취프스가 풋볼의 새로운 역사를 쓸꺼라지만 나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팀. 그 시간, 그곳에서 또 하나의 경기가 있을 뿐.
미국에는 풋볼 위도우(Football Widow)란 말이 있다. 시즌이 시작되면 팝콘과 맥주를 들고 TV 앞에 앉아 꼼짝 안 하는 남편을 둔 아내를 말한다. 어쩌면 나는 그 남편들과 같은 모습이였던걸까? 혼자 웃으며, 풋볼이 없는 몇 개월은 뭘 할까 궁리를 한다. TV앞에 앉는 일이 줄며 우울 속으로 빠지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활짝 기지개를 켠다. “브롱코스, 내년엔 더 잘하자! 나도 더 크게 박수 치고, 더 열심히 응원할 것이니!!! 홧팅~~~”
한국 할머니의 진심을 보태며 이번 시즌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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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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