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Titan)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종족을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어 티탄의 영어 이름이다. 몸집이 거대하여 거인으로도 불리우며 토성 주위를 도는 위성의 이름, 말러의 교향곡 1번의 이름이기도 하다. 말러는 타이탄(1악장)에서 알듯말듯… 다소 미스테리한 선율로 자신의 교향악 첫 곡부터 위험한 주사위를 던지고 있는데 처음 이 음악을 들었을 때 선율이 전혀 없기 때문에 뿌연 안개를 묘사한 듯 느껴졌었다. 음악(인간)적인 야망보다는 왠지 종교적인 내면이 느껴져 왔다고나할까.
말러는 타이탄을 쓸 당시(29세)에 요한나라고 하는 소프라노를 짝사랑하다 실연당한 뒤라 더욱 거인으로서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시기였다. 4악장에 거인으로 향하려는 우렁찬 기개가 표출되어 있지만 평론가들에게 까이면서 초연 당시에는 성공적인 데뷰를 치루지는 못했다. 말러는 유태인으로서 늘 견제받았는데 특히 독일문화권에서 유태인으로서 성공하기는 (당서로선) 하늘의 별따기였다. 교향곡 8번이 발표되기 전까지 비인에서 작곡가로서의 말러는 없었다. 결국 말러는 카톨릭으로 개종하는 등 온갖 살방도를 강구했지만 지휘자로서의 말러는 몰라도 위대한 작곡가로서의 말러는 그의 사후에나 가능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 말러의 음악을 무척 좋아했었는데 그것은 단순히 (유태계 작곡가로서의) 말러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말러의 음악에 반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말러라는 대명사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했고 또 그의 음악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은 것도 아니었다. 이유는 단 하나, 교향곡 1번 ‘타이탄(거인)’의 시작을 알리는 서주부의 작은 부분때문이었다. 말러는 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같은 그런 ‘꽝’하고 울리는 장엄한 교향악의 서주부를 포기하고 그처럼 불안하고 음습한, 알듯말듯 미스테리한 선율로 자신의 교향악의 첫 출발을 알리는 곡에 위험한 주사위를 던졌을까?… 그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선율적인 요소를 떠나서 완전히 다른 음악이었다. 굳이 음악적으로 설명한다면, 1악장의 다른 서주부와는 다르게 흔히 보이는 음악(인간)적인 야망… 성공에 대한 어떤 열정… 세상적인 그런 투지보다는 왠지 종교적인 내면이 느껴져 왔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교향곡 1번의 모든 것이 그런 것은 아니고 1번도 끝에 가서는 공작새처럼 가득 뽐내고 과장으로 가득찬 클라이막스를 보여주지만 1악장 서주부만큼은 어딘지 꿈과 모험으로 가득한… 한마디로 음악을 사랑하고 또 음악에 모든 것을 건 사람이 아니고서는 영감받을 수 없는 그런 어둡지만 강렬한 (내면적)신비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음악을 사랑하는 민족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음악가가 많은 것도 유태계가 가장 압도적이다. 왜 유태인일까? 같은 유태인으로서 지휘자였던 오토 클렘펠러는 젊은 시절 말러의 추천서가 담긴 명함 한 장을 평생 신주단지처럼 간직했다고 한다. 2천년 동안 세계를 떠돌아 다녔던, 유태인들의 음악 사랑은 단순히 그들이 고난의 민족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유태인들의 음악 사랑은 너무도 선천적이다. (아무튼) 돈, 음악으로 대표되는 유태인들은 너무도 다른 이면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사고는 대체로 앞으로 나가는 것이 정상이다. 불분명하고 알쏭달쏭하다는 것은 한가지의 목적이나 대상에 대해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고 진심이 빠져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신이나 운명의 문제라면 얘기는 조금 다를 수 있다. 말러는 교향곡 거인(타이탄)을 작곡하면서 구약성서의 야곱을 연상하며 투지를 불태웠다고 한다. 신(운명)과의 싸움(씨름)에서 (기필코) 승리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태인들의 절박함…
자신의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신(神)이라고 하는 그런 운명적 존재와 화해하지 않고는 인생에서의 주사위는 제 아무리 자신감 넘치는 선택이라고 해도 불안한 것일 수 밖에 없다. 음악은 정신적이다?… 물론 그럴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만 음악의 어떤 종류는 (유태인과 음악처럼) 종교적인 광채 때문에 다소 (조심스럽고) 위압적으로 들려올 수도 있지만 동시에 위로가 되는, ‘신과의 만남’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말러의 음악처럼 다소 (수수께끼처럼) 아리송하게 들려올 수도 있지만 어떤 음악은 두려움과 절망의 힘 때문에 오히려 영감으로 소통할 수 있는, 영적인 무게… 타이탄의 감동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 4악장, 연주시간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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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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