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 하나를 갖고 싶다./ 힘이 자꾸 빠지는 흐린 봄날에는/ 작은 꽃밭 하나만이라도/ 갖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 … 물을 뿌리고 희망을 키우는/ 절망하지 않는 작은 꽃밭 하나를/ 흐린 봄날에는 갖고 싶다” <김수복, ‘꽃밭’ 중>
삶이 힘에 부치는 날이면 시인은 꽃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 꽃밭 하나를 장만해 물을 뿌리고 꽃을 키우면서 희망도 함께 키우고 싶은 마음이다.
우울한 날이면 이해인 시인은 장미를 보고 싶어 했다. 그의 시 ‘장미를 생각하며’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울한 날은/ 장미 한 송이 보고 싶네// 장미 앞에서/ 소리 내어 울면/ 나의 눈물에도 향기가 묻어날까 …” 그리고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가시에 찔려 더욱 향기로웠던/ 나의 삶이/ 암호처럼 찍혀 있는/아름다운 장미 한 송이// ‘살아야 해, 살아야 해’/ 오늘도 내 마음에/ 불을 붙이네”
위의 시인들에게 꽃과 장미가 어떤 구체적 의미를 갖는지, 어떤 개별적 사연들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꽃밭을 가꾸다 보면 근심걱정 다 잊게 되고, 장미 한 송이 받아들면 울적했던 기분이 활짝 밝아지는 것은 보편적인 경험이다. 꽃이 갖고 있는 신비로운 힘이다.
꽃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경험으로 아는 바이다. 꽃을 심든, 사든, 받든, 주든 … 꽃이 개입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19세기 미국의 식물학자이자 원예가 루터 버뱅크는 꽃이 사람들을 더 나은 존재, 더 행복하며 더 유용한 존재들로 만든다고 했다. “꽃은 영혼을 위한 햇살이자 음식이며 약”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꽃의 이런 효과들이 그냥 기분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사실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팬데믹 3년 동안 많은 사람들은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이때 처방약이나 상담 등 전통적 치료와 더불어 종종 추천된 것이 꽃이었다. 꽃이나 화분을 집안에 두라는 것이다. 싱그러운 꽃들을 곁에 두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우울하거나 슬플 때 꽃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이는 꽃들이 방출하는 화학물질들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특정 색깔이나 냄새들에 끌린다. 그 이유는 이들이 심장박동을 고르게 하고 감정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화학물질들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드는 호르몬 즉 도파민, 옥시토신, 세로토닌을 방출하게 돕는 물질들이다. 도파민은 우리가 새롭고 다양한 것들을 접할 때 생성되는 호르몬으로 생동감을 주며 기분을 고양시킨다. 사랑의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은 상대방과 연결되면서 하나가 된 느낌을 주며, 세로토닌은 무드와 행동을 관장하면서 전반적으로 기분 좋은 느낌이 생기게 돕는다.
이들 세 호르몬이 함께 작동하면 심신을 활성화하는 효과가 극대화하는데, 그 대표적 매체가 바로 꽃들이다. 산행을 가서 알록달록 만개한 야생화들 속을 걷거나 식물원에 가서 진기한 꽃들을 보며 한 나절을 보낸다면 단순히 눈 호사로 끝나는 게 아니다. 영혼에 따스한 햇살이 듬뿍 내려 쪼여서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평안해진다.
꽃이 주는 치유효과를 적극 활용하는 병원들도 늘고 있다. 캔사스 주립대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입원실에 꽃을 두면 환자들의 회복이 빨라진다. 환자들이 진통제를 덜 복용하게 되고 불안 정도도 낮아진다. 환자들이 꽃을 보며 기분이 상기되어 통증을 덜 느끼는 결과이다.
요즘 남가주에서는 어디를 가나 꽃이 만발했다. 꽃향기 맡으며, 꽃구경하며 매일 동네 한 바퀴씩 돈다면 심신의 건강에 그 보다 좋은 게 없을 것이다. 돈 안 드는 보약이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주는 자극은 인지기능에도 좋다고 하니 노인들은 필히 꽃밭 하나씩 마련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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