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해자에게 기울어진 법 권력 비판한 ‘불신당하는 말’ 출간
▶ 미국 로스쿨 교수 사법적 정의 필요…피해자 말 존중해야

‘미투 촉발’ 와인스타인[로이터=사진제공]
할리우드 유명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은 미투운동을 촉발한 인물이다. 언론은 와인스타인의 수많은 성폭행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했고, 숨어있던 피해자들은 용기를 내 '미투'를 외쳤다. 와인스타인은 여론 법정에서 악당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 법정에서의 풍경은 달랐다. 노련한 와인스타인의 변호사들은 성폭력을 고발한 여성들을 끊임없이 몰아쳤다. 그들의 주장에서 고발 여성들은 부와 명예를 얻고자 나선 거짓말쟁이로 그려졌다. 피고가 주장하는 합의된 성관계를 맺었지만 이를 후회하고 앙심을 품은 사람들로 몰렸다. 어째서 수년간 기다렸다가 나섰는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왜 사건 이후에도 와인스타인과 친분을 유지했는지 압박을 당했다.
공방이 오갔지만 1심 재판부는 와인스타인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엄청난 승리"를 상징하지만, 이 순간이 있기까지 너무나 많은 여성이 필요했다. 증언한 이는 여섯 명이었지만 유명 배우 앤젤리나 졸리, 셀마 헤이엑, 애슐리 저드를 비롯해 백인 여성 수십 명이 와인스타인을 향해 공개적으로 들고 일어나 검경을 압박했다. 재판을 이렇게 수가 많고, 유명한 사람들이 동참해야 피해자의 주장에 힘이 실린다면 성범죄 사건에서 발생하는 단독 고발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더구나 유색인종이나 다른 주변화된 여성이 성폭력에 관해 목소리를 낼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검사 출신 데버라 터크하이머 미국 노스웨스턴대 프리츠커 로스쿨 교수의 의문이었다.
최근 번역 출간된 '불신당하는 말'(교양인)은 터크하이머 교수가 이 같은 의문을 토대로 성폭력 사건을 파헤친 결과를 담은 책이다. 책에는 백인 여성과 함께 유색 인종·빈민·장애·성 소수자·이주 여성들이 당한 성폭력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이들의 청원은 흔히 "사실이 아니거나, 비난할 정도가 아니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묵살당하기 일쑤였다.
흑인 여성 벤케일라 헤인스가 그랬다. 그녀는 갓 입학한 신입생 때, 친구이자 인근 대학 운동선수였던 남성에게 강간을 당했다. 대학 당국에 신고했으나 당국의 반응은 싸늘했다.
"학교 밖에 있는 그 아파트에 가지 말았어야지. 그런 옷을 입지 말았어야지. 그런 남자애들과 어울리지 말았어야지. 공부에 집중했어야지…."
헤인스는 "모든 책임은 나에게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신고를 취소했다. "강간당한 흑인 여자는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주여성 알레한드로는 잡역부로 일하다 상습적으로 관리자에게 성폭력을 당한 케이스다. 관리자는 "아무도 당신 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며 알레한드로를 괴롭혔다. 이는 가해자가 흔히 쓰는 '입막음 전략'이다. 알레한드로는 자신을 신고하면 해고당할 거라는 말을 가해자에게 반복해서 들었다. 그를 경찰에 고발하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린 이유다. 알레한드로는 "몇 년 동안 고통 속에서 보냈다"고 회고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 피해자들은 성폭력 사건에 대해 가해자보다는 자신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와인스타인에게 성폭행당한 로즈 맥고언은 수많은 나날을 자기혐오 속에서 보냈다.
"자신을 탓하면서 사건 테이프를 돌려보고 또 돌려본다. 이렇게 했더라면, 이렇게 했더라면, 이렇게 했더라면."
피해자들이 이렇게 자기혐오 속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이유는 경찰과 검찰, 학교를 포함한 누구도 여성들의 말을 믿지 않아서다. 저자는 이를 "권력"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가해자에게 기울어진 법이라는 권력, 여성의 말을 불신하는 남성이라는 권력, 백인의 말을 더 신뢰하는 인종이라는 권력, 하층 계급보다는 상층 계급의 말을 신뢰하는 계급이라는 권력…. 책은 힘없는 주변부 출신 피해자들의 말일수록 불신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생생한 사례를 곁들여 보여준다.
저자는 피해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선 '회복적 정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가해자의 인정, 잘못한 행위에 대해 책임지기, 금전적 보상을 포함한 보상, 범죄가 되풀이되면 안 된다는 약속을 담은 예방까지를 아우른다.
이와 함께 가해자에 대한 유죄 선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누군가 책임을 지지 않을 경우 피해자는 "남은 일생" 오롯이 그 무게를 짊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자신의 권리와 존엄을 멸시한 일로 질책받음으로써 자신이 공동체에서 지지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울러 관련법 개정, 손해배상 한도 상향, 사회적 약자 보호조치 확대 등도 필요하다고 곁들인다.
저자는 "법이 집행되는 방식을 유의미하게 바꾸려면 문화 그 자체가 진화해야 한다"며 "(피해자 말에 대한) 신뢰성 폄하와 (가해자 말에 관한) 신뢰성 과장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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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대법원판사님도 몇명있다는데 어찌 약자의말에 힘이있을꼬 하늘의저주를받을것들...ㅉ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