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로코로나 저항 ‘백지 시위’ 이후 하야와 발음 비슷한 ‘새우이끼’ 등 SNS에 당국 비판하는 조어 유행

지난달 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 추도식에서 코로나19 봉쇄 조치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검열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백지 시위’를 펼치고 있다. [로이터]
정부 검열을 따돌리기 위한 중국인들의 재치가 ‘백지 시위’ 정국에서 빛나고 있다. 검열 대상에 오른 단어와 발음은 비슷하지만 뜻은 전혀 다른 어휘를 써서 검열을 피하는 식이다.
‘바나나 껍질’과 ‘새우 이끼’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바나나 껍질은 중국어로 ‘샹자오피(香蕉皮)’로, 이니셜이 ‘시진핑’과 같다. 또한 새우 이끼는 중국어로 샤타이인데, 발음이 퇴진, 하야라는 뜻의 샤타이(下台)와 비슷하다. ‘바나나 껍질 새우 이끼’라는 외계어 같은 문구가 중국인들에겐 ‘시진핑 하야’로 읽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검열에 걸리지 않는다.
최근 중국 곳곳에서 제로 코로나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따르는 가운데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에서 한 여성이 알파카를 데리고 거리로 나선 모습이 포착됐다.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풀’과 ‘흙’, ‘알파카’가 담긴 사진은 중국 검열 당국을 비난하는 뜻으로 통용된다. 트위터 사진 캡처
중국 정부가 인터넷 검열을 본격화한 2010년대 초반 유행했던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풍자적 사진이나 영상)’도 제로 코로나 항의 시위를 계기로 부활했다.
이런 식이다. 풀과 흙으로 덮인 길 위를 걷는 말 또는 알파카의 사진이 있다. 언뜻 보면 아무런 메시지가 없다. 풀(草), 흙(泥), 말을 중국어로 연달아 발음하면 “너의 엄마를 X 먹여라”라는 뜻의 욕설인 ‘차오니마’와 비슷하게 들린다. 알파카 밈은 검열관들을 약올리는 의미로 사용된다.
백지 시위의 시발점이자 시위가 가장 격렬하게 벌어진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에선 한 여성이 알파카 세 마리를 길 한복판에 끌고 나오기도 했다. 정부를 비판하고 조롱한 것이지만, 공안 당국은 알파카를 끌고 다닌 행위 자체에 범죄 혐의를 씌울 순 없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모교인 베이징 칭화대학교 학생들은 우주의 팽창 속도를 측정하는 ‘프리드만 방정식(Friedmann equations)’이 적힌 A4용지를 들고 시위에 나왔다. 방정식의 주인공 프리드만의 발음이 ‘봉쇄당하지 않은 자유로운 사람’을 뜻하는 ‘프리드맨(Freed man)’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향한 불만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달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광둥어를 사용한 정부 비판이 쏟아졌다. 홍콩을 포함한 중국 남서부의 방언인 광둥어를 사용할 경우 표준어인 만다린어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집중된 검열을 피할 수 있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중국 온라인 공간에선 톈안먼 민주화 운동(1989년)을 떠올리게 하는 ‘톈안먼’과 톈안먼 시위 날짜인 ‘6월 4일’도 검열 대상에 오른다. 중국 네티즌들은 ‘5월 35일’이란 표현을 암호처럼 사용한다. 5월 31일 이후 나흘이 지난 날짜라는 뜻으로, 6월 4일을 가리킨다.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최근 칼럼에 “시진핑을 조롱한 것도, 규칙을 어긴 것도 아니고 그저 ‘바나나 껍질’이라고 쓴 사람들을 체포하지 못하는 것이 독재자(시 주석)가 처한 딜레마”라고 지적했다.
<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