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학연 특허 수익화 효율성 제고 방안
미에 등록된 특허 22만6,851건으로 선도국 수준이지만 건당 수익은 3만4,000달러 불과, 中보다 30% 이상 낮아
▶ 산학연 특허전략 부재…‘빠른 추격자’ 패러다임 못벗어나…기술사업화 체계 구축 중요…국가 IP R&D도 강화해야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기술 탈취, 산업 스파이에 대한 경각심은 커지고 있으나 정작 우리나라의 특허 수익이 매우 적은 것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허 전문 미국 변호사인 임경수 아이디어허브 대표는 한국의 특허 수익 실태에 대해 “세계 최대 특허 시장인 미국에 등록한 한국의 특허 수익 창출액을 보면 건당 3만 4,000달러(세계은행 통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는 독일 20만 1,000달러, 일본 7만 9,000달러, 미국 6만 5,000달러는 물론 중국 4만9,000달러보다도 적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중국과 비교해서도 건당 특허 수입이 30% 이상 낮은 것은 심각하게 봐야 한다. 전통적으로 기초·원천 기술이 강한 미국·독일·일본 등과는 특허 수입 총액이나 건당 특허 수입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미국에 등록된 특허 수(올해 4월 기준)를 보면 미국(179만 8,423건)을 제외하면 일본(59만 6665건)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은 한국(22만 6,851건), 독일(17만 9,940건), 중국(13만 5,320건) 순이다. 한국보다 700배나 큰 미국의 특허 시장(1,890억 달러, 2019년)에서 우리가 양적으로는 결코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독일보다는 4만 7,000여 건이나 많을 정도로 양은 많은 편이다.
하지만 특허의 질을 분석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다. 미국 내 각국별 특허 수지(세계은행)는 미국(약 97조 700억 원), 일본(약 26조 7,600억 원), 독일(약 26조 300억 원)은 큰 폭의 흑자국이지만 한국(약 3조 6,500억 원)과 중국(약 36조 900억 원)은 적자국이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비교해 특허 수입(77억 4,200만 달러)은 11억 3,700만 달러가량 앞서지만 건당 수입 측면에서는 외려 뒤진다. 중국보다도 ‘질보다 양’에 치우쳤다는 뜻이다.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우리가 ‘선도자(퍼스트 무버)’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빠른 추격자(패스트 팔로어)’ 시절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올해 대학,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비롯한 공공 연구원, 기업 등에 지원하는 연구개발(R&D) 예산은 약 30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으로는 이스라엘과 함께 세계 1~2위이다. 대학과 기업에 각각 4분의 1씩을 지원하고 출연연 등 국·공립 연구원에 40% 넘게 쓴다.
문제는 한국이 특허 출원 건수에서는 중국·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4위이지만 대학과 공공 연구원에 이른바 ‘장롱 특허’가 많다는 점이다. 대학의 경우 2020년 1025억 원의 특허 수익밖에 올리지 못했다. 이 중 해외에서 거둬들인 것은 단 67억 원에 불과하다. 전체 대학의 미국 특허가 1만여 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초라한 액수다. 올해 예산이 약 1조 1100억 원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조차 국내외 기술 이전 수입이 100억 원을 넘는 정도다. 이는 결국 우리 대학을 다 합쳐도 미국 대학 특허 수입 8위인 플로리다대의 실적(9,472만 달러·약 1,230억 원)에도 미치는 못하는 수치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25개 출연연의 연간 기술 이전료 수입도 약 1,215억 원(2020년)에 그친다. 공공 연구원도 대학처럼 도전 정신, 모험 정신을 뜻하는 ‘기업가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정부 R&D 과제를 연구원의 인건비 충당 개념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 특허 수익화가 부진하다. 지난해 4월 스마트폰 사업을 접은 LG전자가 노키아나 에릭슨보다도 많은 4G·5G 표준 특허를 가지고 있으나 기술 사업화에 나서지 않는 게 단적인 예다. 최근 5년 간 외국 기업과 지식재산권(IP) 분쟁을 겪은 중소·벤처기업이 130개 이상이지만 특허 분쟁 대비도 미흡하다.
천세창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융합촉진옴부즈만은 “대학과 공공 연구원은 물론 삼성과 LG 등 대기업조차 특허 수익화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꼬집었다. 정상조 국가지식재산위원장은 “미국·독일·일본 등에 비하면 대학과 공공 연구원은 물론 기업도 특허 전략이 미흡하다”며 “국가적으로 특허 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IP 중 특허와 실용신안권, 상표와 프랜차이즈권 등 산업재산권이 35억 3,000만 달러 적자(2020년)에 이른다. 다만 R&D, 소프트웨어, 문화 예술 관련 저작권 수지가 18억 9,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해 IP 전체 적자 폭은 18억 7,000만 달러로 줄어든다.
대학·출연연 등 공공 연구원이 벌어들이는 특허 수입은 특허 출원·등록·유지비와 연구자 보상금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25개 출연연이 특허를 등록한 뒤 4년 차 이후에 내는 특허 유지 비용(2020년)이 해외 437억 원 등 총 828억 원으로 기술 이전료 수입의 70% 가까이 된다. 여기에는 연 300억 원가량의 특허 출원과 등록비가 빠져 있다. 대학, 공공 연구원 모두 특허 수입이 들어오면 절반가량은 연구자들에게 보상금으로 지급한다. 결국 대학과 공공 연구원이 기술 이전 과정에서 불러일으키는 부가가치 효과를 제외하고 단순히 기술 이전료 수지만 보면 한참 적자인 셈이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정부가 많은 R&D 투자를 지원하고 있지만 회수율이 상당히 낮다”며 “국가 R&D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산학연의 IP 사업화 의지와 역량이 취약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에서 보통 4년에 걸쳐 건당 2,000만 원가량 들여 상당히 많은 특허를 등록하고도 수입 측면에서 ‘속빈 강정’에 그친 것이 이를 방증한다. 미국 특허청에서 받아줄 정도의 특허라면 질적인 측면에서는 나름 좋다고 볼 수 있지만 수익화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학은 물론 공공 연구원에서도 임용이나 승진에서 논문을 중시하는 문화가 뿌리 깊기 때문이다. 괜찮은 논문을 유능한 변리사에게 맡기고 특허를 내라고 하면 여러 건의 특허도 만들 수 있다. 정부 R&D 과제에서도 요즘 논문·특허 등의 정량 평가 못지 않게 정성 평가를 강조하는 추세라고 해도 현장에서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8조 4,000억 원의 R&D 예산을 기획·집행하는 이광복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영향력이 큰 연구 성과를 위해 정성 평가를 강조하더라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논문, 특허 숫자 등 정량 평가 위주로·· 진행된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실제 대학과 공공 연구원에서 ‘논문을 위한 논문’, ‘특허를 위한 특허’라는 구습이 근절되지 않아 기술이 사업화로 이어지는 비율이 낮은 게 현실이다. 여기에 대학 산학협력단과 공공 연구원 등에서 기술 사업화 조직(TLO)의 전문성도 크게 떨어진다. 하성규 전 한양대 산학협력단장은 “국내 대학에서 대체적으로 단장 임기가 2년에 불과하고 부단장들이나 센터장들에 대한 인사권도 없다”며 “실제 일을 하는 센터장들도 다른 부서들과 순환 보직을 한다”고 전했다. 반면 미국 컬럼비아대의 오린 허스코비츠 IP 수석부사장 겸 컬럼비아기술벤처센터장은 “컬럼비아대가 특허를 출원하면 60%가량은 기업에 기술 이전되는데 대부분 등록 이전에 이뤄진다”며 “그만큼 시장에서 필요한 연구를 한다”고 뿌듯해 했다. 독일·이스라엘 등에서는 대학이나 공공연구원의 TLO도 뛰어난 전문성을 갖고 있다. 산업화가 되지 않는 ‘장롱 특허’를 양산해온 한국의 풍토와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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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본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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