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가슴 벅찬 감동이, 때론 말 못할 슬픔과 절망, 고단함이 우리의 삶에는 있다. 특히 낯설고 물 선 이국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 한인들에게는 결이 다른 스토리들이 저마다의 가슴 속에 내장돼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속, 이제는 잔잔한 강물처럼 침잠됐을 워싱턴 지역 한인들의 초기 이민생활의 애환과 남다른 사연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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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3년에 군대에 징집되어(카투사병 근무) 제대 후 복학을 미루고, 어릴 때부터 꿈꿔오던 미국 이민을 결심했다.
교통부에서 발급받은 3급 정비사 자격증과 서울 적십자병원 간호사로 근무했던 아내와 미국 이민생활이 시작되었다.
1974년 8월, 워싱턴 메트로 버스정비사 입사시험에 합격하여 정비사 헬퍼로 시작한 지 10개월 만에 정비사(Class B) 필기시험에 합격해 3단계 승진 발령을 받아 버스 엔진 재생부처에서 첫 근무를 했다.
부임 첫날 받은 일이 엔진 스타터 모터 교체였다. 책으로만 봐 왔던 스타터 모터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정비사 헬퍼들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팔짱을 끼고 고개만 돌릴 뿐 도와주지 않았다. 그들은 비록 교범 책이나 정비사 자격시험으로는 인정받지 못했으나 모두 경력이 3~8년 넘은 숙련공들이었다.
그 후에도 계속되는 헬퍼들의 무관심과 냉소, 항명으로 고심하다가 부서 책임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자기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서 명령과 도움요청에 따르지 않으면 직원번호와 이름을 적어 달라 했다. 미국에선 필기시험이건 경력실기시험이건 합격이 확인되면 무조건 자격이 인정되고 실행된다는 충고를 해주었다. 자격과 능력이 인정받는 사회, 법과 질서가 준수되는 사회라고 생각하니 새로운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다.
다음날부터 달라진 나의 태도에 불만을 품은 헬퍼들은 노골적으로 반항 했으며 “너희 나라로 가라”고 윽박 질렀다. 난 그에게 조용히 귓속말로 말했다. “난 돌아갈 나라가 없어. 너와 함께 세금 내며 살아갈 땅이 여기, 미국이니까”라고 말한 뒤 정중히 그에게 물었다.
“너의 직원번호가 뭐지?”
묵묵부답이었다. 근무태만에 인종차별이란 회사규칙 위반으로 징계처벌이 두려웠을 것이다.
몇 해 뒤 그 고참 헬퍼가 티엠 매뉴얼 책을 가져와서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B급 정비사 시험문제는 어느 페이지에서 많이 나오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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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수남 / 스프링필드·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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