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구찬 선임기자의 觀點(관점)…선거철마다 3차례 신설 남발 ‘고질’, 외국인투자 80% 수도권 몰리는데도 지역균형론에 지방집중 배치한 결과
▶ 외국인 없는 ‘부동산 특구’로 전락, 입지선정·관리·운영 총체적 부실…선택과 집중전략·컨트롤타워 필요

2008년 황해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장수리 일원. 정부는 평택항이 인접한 이곳을 환황해권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구역 지정 이후 11년째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현덕지구는 사업자가 세 차례나 변경됐다.
확대지정 논란 경제자유구역 난맥14일 경기도 평택항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현덕면 장수리 일원. 정부가 환황해권 국제 비즈니스 거점을 육성하기 위해 2008년 지정한 황해경제자유구역 현덕지구다. 서해대교와 아산방조제 사이에 위치한 이곳은 가을걷이로 벼 밑동만 남은 들판에 짚더미와 농기구가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구역 지정 11년째 논밭으로 방치된 이곳이 외자유치용 경제특구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마을 진입로 전봇대마다 땅을 산다며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빛바랜 부동산 스티커는 투기 광풍이 농촌 마을을 어떻게 할퀴고 갔는지 짐작하게 했다.
여의도보다 조금 작은 70만평 규모의 현덕지구는 세계 최대 차이나타운을 짓겠다는 중국계 자본의 개발구상이 2016년에 승인되자 극심한 투기 바람에 휘말렸다. 프로젝트명은 ‘차이나캐슬’.
유커를 겨냥한 1만실 규모의 호텔과 카지노가 어우러진 대규모 복합리조트와 쇼핑몰·주거단지 등이 결합한 친중국 신도시 개발 호재에 평당 30만원 하던 논밭이 대토(代土) 대상지를 중심으로 60만원으로 뛰었다. 지구 외곽 땅값은 평당 120만~150만원으로 급등하고 대로변 상업지역은 1,000만원을 호가했다.
윤배근 중화부동산 사장은 “토지 보상이 임박했을 때는 밀려드는 손님을 응대하느라 점심도 걸렀다”며 “더러는 뭉칫돈을 들고 와 즉석에서 계약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피크 때는 하루에 1~2건씩 최대 5건도 계약했다고 한다.
‘차이나캐슬’이 신기루였음이 확인되기까지는 채 2년도 걸리지 않았다. 중국계 투자가가 자본금조차 납입하지 않는 바람에 황해청은 2018년 사업권을 박탈해버렸다. 현덕지구 개발의 경우 외자유치는 뒷전이었고 국내 금융권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전형적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었다. 10여곳에 불과하던 중개업소가 한때 80여곳으로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가 지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간 상태다.
현덕지구는 중국만 쳐다보다 쪽박 신세가 된 경제특구이자 정치권의 포퓰리즘과 정부의 지정 남발, 지방자치단체의 과욕과 무지 등이 결합한 외국인 투자정책 난맥의 표본이다. 사업자만도 세 번이나 바뀌었다. 입지선정부터 운영·관리까지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현장이기도 하다.
애초부터 황해경자구역 지정은 무리였다. 차이나머니 유치는 기본적으로 인천·새만금과 중복된다. 결국 정부는 구역 내 5개 지구 가운데 경기도 평택의 포승·현덕만 남긴 채 충남 3개 지구를 전면 해제했다. 개발면적은 54.16㎢에서 4.36㎢로 쪼그라들었다. 해제 면적이 90%를 넘는다.
황해보다 5년 늦은 2013년에 지정된 동해안권경자구역도 사정은 다를 바 없다. 환동해경제권의 물류·비즈니스 중심지로 육성한다는 화려한 구상은 그야말로 잿빛으로 변했다. 정부는 생산유발 13조원과 고용유발 5만명 등 경제적 파급효과를 홍보했지만 유치기업은 손꼽을 정도다.
개발면적도 다섯 차례에 걸쳐 해제되면서 최초 14.1㎢에서 4.80㎢로 줄어들었다. 급기야 정부는 전국의 경자구역을 대상으로 전면 구조조정에 착수해 개발·투자 부진 지역 303.3㎢ 를 해제했다. 이는 최초 지정 면적(513.1㎢)의 59%에 해당한다. 대규모 해제는 경제적 타당성과 사업성을 무시한 채 주먹구구식으로 입지를 선정했다는 방증이다.
경자구역은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세계적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경제특구의 일종이다. 정부는 내국인 역차별 비판을 무릅쓰고 세제 감면과 규제 완화, 인허가 일괄처리 등 각종 혜택을 부여했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정치권의 지역개발 압력에 밀려 구역 지정을 남발하면서 정책 부실을 자초했다.
정부는 원래 인천 단 한 곳만 지정하려다 2003년 인천을 첫 지정한 후 부랴부랴 부산·진해와 광양만권을 끼워 넣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결과 경자구역 신설 요구가 곳곳에서 빗발쳤다. 정부는 1차 3개 구역이 정상궤도에 진입하기 전인 2008년 황해와 대구·경북, 새만금·군산 등 3곳을 추가로 지정했다. 이도 모자라 2013년 동해안권과 충북까지 가세하면서 ‘1도 1특구’ 시대가 열렸다.
세 차례의 지정 과정은 하나같이 대선 국면과 맞물렸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구역 난맥의 첫 번째 원인을 외자 유치보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보조적 목표에 치중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구역 지정 5년, 10년이 넘었다면 기회를 충분히 준 것”이라며 “더 늦기 전에 개발 가능성이 없는 지역은 과감하게 해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자구역의 으뜸 목표인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실적을 보면 가히 민망한 수준이다. 2003년 첫 지정 이후 16년 동안 경자구역 내 FDI 누적 총액은 85억9,000만달러(도착 기준)로 전체 FDI 총액 1,673억달러의 4.9%에 불과하다.
경자구역 내 해외 기업은 전체 외국인투자기업의 3%도 채 되지 않는다. 경자구역이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가 아닌 내국인 부동산 개발 특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국인 투자의 80%가 수도권에 몰리는 상황에서 경자구역을 지방에 집중 배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처별로 흩어진 경제특구 전반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정책 컨트롤타워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지난해 말 울산과 광주 2곳을 경자구역 후보지로 지정해 논란을 낳고 있다. 광주와 울산은 내년 총선의 민감지역으로 꼽힌다. 내년 상반기 중 최종 확정되면 경자구역은 2018년 전면 해제된 새만금을 제외하고도 9곳으로 늘어난다. 선택과 집중을 해도 시원찮은 판에 또다시 확대한다면 기존 7개 구역의 개발과 투자 유치는 더욱 지체되고 예산 낭비를 가중시킬 공산이 크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개발사업비로 총 8조4,845억원을 투입했다. 여기에다 국세와 지방세·부담금 감면까지 합치면 혈세 투입액이 9조원에 육박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재정이 투입되고 어느 세월에 국내외 기업이 입주할지 모르겠다. 지역 균형을 고려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그 논리가 압도하면 본말이 전도된다.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돈과 일자리를 빨아들일 국가대표급 경제특구 육성은 한낱 구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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