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견제 없는 공수처, 권력비리 덮는 기구 전락 우려”
▶ 제1야당 빼고 게임 룰 일방적 결정은 초유 사태

문희상 국회의장이 30일 오후 열리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항의 속에 사회를 보고 있다. 공수처법은 한국당 의원들이 모두 퇴장한 뒤 통과됐다. <연합>
여권의 독선·독주 정치가 계속 이어지면서 정치가 실종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권은 정치 상식뿐 아니라 법적 절차도 어기면서 일방주의 정치를 하고 있어서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 정당이 30일 저녁 국회 본회의에서 논란이 많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을 강행 처리한 게 대표적 사례이다. ‘4+1협의체’에 참여한 더불어민주당과 4개 군소정당(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은 밀실에서 만든 새해 예산안과 선거법 개정안에 이어 공수처법까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격렬한 반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4+1협의체’가 제출한 공수처법 수정안은 이날 재석 177명 중 찬성 160명, 반대 14명, 기권 3명으로 가결됐다. 한국당이 반발하면서 집단 퇴장한 가운데 표결이 이뤄졌다.
이에 앞서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이 공수처의 과도한 권한을 제한하기 위해 제출한 수정안에 대한 표결이 진행됐지만 부결됐다.
내년 7월쯤 설치되는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전·현직 고위공직자 대부분과 판사·검사·경무관급 이상 경찰공무원 등이다. 이 가운데 검사·판사·경찰에 대해선 공수처가 기소권을 갖게 된다. 공수처장추천위원 7명 중 6명의 찬성으로 2명의 후보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 중 1명을 공수처장으로 임명한다. 공수처장은 다른 수사기관에서 같은 사건에 대한 중복 수사가 발생할 경우 해당 기관에 요청해 사건을 이첩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한국당은 “공수처는 권력 비리를 덮고, 정적들의 비리 의혹을 캐는 무소불위 기관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악법 중 악법인 공수처법이 날치기 처리됐다”면서 “공수처는 북한 보위부, 나치 게슈타포 같은 괴물이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국당은 이날 공수처법 처리 직후 의원총회를 열고 공수처법 일방 처리에 반발해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했다. 한국당의 의원직 총사퇴 결의는 실제 결행에 옮기기보다는 패스트트랙 법안 강행 처리에 대한 반발과 저항을 강력히 호소하는 의지 표명으로 풀이된다. 국회법상 ‘국회의원 사직’이 현실화하려면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과반 찬성으로 가결돼야 하며 회기가 아닐 때는 국회의장 결재가 필요하다. 그러나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제 의원직 총사퇴도 의미 없다”며 “야당의 존재 가치가 없다면 오늘 밤이라도 모두 한강으로 가거라”라며 거칠게 당을 비난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공수처법 통과에 대해 “견제 장치가 없는 공수처는 정권의 도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내년 4월 총선으로 새로 구성되는 21대 국회가 공수처법의 독소 조항을 제거하고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반면 민주당을 비롯한 ‘4+1 협의체’는 환영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공수처법 국회 통과는 검찰 개혁과 공정하고 정의로운 국가를 향한 역사적 진전의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도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인 공수처법이 통과되자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완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공수처 설치 방안이 논의된 지 20여년이 흐르고서야 마침내 제도화에 성공했다”며 “공수처 설치 입법이 성공한 것은 국민께서 검찰의 자의적이고 위협적인 권한 행사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교섭단체도 아닌 임의단체에 불과한 ‘4+1협의체’는 이에 앞서 지난 10일 새해 예산안을, 지난 27일에는 선거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게임 룰인 선거법은 여야 합의로 처리하는 게 순리이다. 국회에서 여당이 야당의 격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선거법 개정을 처리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번엔 수사기관 체계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는 공수처법을 힘으로 밀어붙였다. 게다가 공수처법 수정안에는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 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고 공수처가 수사 개시 여부를 회신해야 한다’는 독소 조항이 추가됐다. 자칫 공수처가 검찰이 수사하는 사건을 넘겨받아 덮어버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과 같은 권력 비리 규명은 불가능하게 된다.
범여권은 과반(148석)을 간신히 넘는 의석으로 쟁점 법안들을 강행 처리했다. 본래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으로 법안을 처리할 때는 재적 5분의 3 이상의 의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지정 후에 바른미래당이 양분됐기 때문에 지금은 야당을 배제한 강행 처리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게다가 선거법과 공수처법 수정안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원안과 크게 달라 불법 처리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한국당은 처리 절차의 문제점 등을 들어 헌법재판소에 선거법과 공수처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할 방침이다. 범여권이 제1야당과 제2야당의 원내지도부를 제치고 512조원이 넘는 ‘초수퍼 예산’을 일방 처리한 것도 독주 정치의 산물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독주 정치가 당장은 이기는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과도하게 밀어붙이면 결국 시간이 흐른 뒤 부메랑을 맞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르면 총선에서 민심의 심판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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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사=김광덕 뉴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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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수구 꼰대정치의 마지막 발악이길..... ㅉㅉㅉ
독주? 협상하러 마주 앉기라도 했나? 나머지 야당은 정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