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뉴욕가정상담소 (KAFSC, Korean American Family Service Center)
뉴욕가정상담소 연례만찬은 ‘차별 없이 인간 존엄성이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뜻을 같이 한 1세와 2세들이 모이는 자리이다.
1989년 10 월21일 가 정문제 상 담소 창립 모임 장면.
뉴욕가정상담소를 이끌어가는 이사회 이사들과 준이사들. (2018년 연례만찬에서)
교육을 마친 자원봉사자들, 상담소 운영에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1989년 맨하탄 뉴욕한인교회 한귀퉁이서 창립
2008년 최초 연방보조금 수령 장기주택 옵션 제공
30년동안 2,000명에 법률지원·보금자리 제공
가정폭력 및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들에게 편하고 안전한‘ 친정’ 역할로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뉴욕가정상담소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누군가의 작은 손길이 수많은 사
람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폭력 없는 사회, 희망의 미래를 연다는 점에서뉴욕가정상담소 의 더욱 큰 도약이 기대된다
■ 초창기 연혁
1989년 10월21일(토) 설립자 김광희는 맨하탄의 뉴욕한인교회(633w 115st) 한귀퉁이에 뉴욕가정문제상담소(Korean American Family Service Center)의 문을 열었다. 10년간 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한 크레딧으로 2년간 무료였다.
‘가정폭력, 성폭력과 차별 없이 인간 존엄성이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사명감과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전달하자는 소박한 동기로 시작된 것이다.
1989년~1991년 제1대 이사장은 강흥순으로 1990년 제1회 자원봉사자 가정폭력 교육과 오뚜기클럽(가정폭력피해자/싱글맘지원클럽)이 시작됐고 1991년 뉴욕우먼스파운데이션(NY Woman’s Foundation) 기금으로 정규직원과 시간제 직원을 고용했다.
1994년 15명 가정폭력 피해자 자녀들을 위한 호돌이방과후 학교도 시작됐다.
1996년 최애영 이사장은 이사회와 재정적 기반을 다졌고 1997년 상주 변호사가 법률지원 서비스를 했다. 1998년 뉴욕시 사법부(NYS DCJS) 기금으로 법정지원과 지역사회 홍보 프로그램, 24시간 핫라인 서비스가 시작됐고 뉴욕주 보건국 기금으로 성폭력 상담 프로그램이 설치됐다.
1999년 자넷 르노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아웃스탠딩 서비스 어워드(Outstanding Service Award)를 받았고 가정의 포괄적인 서비스를 확대하고자 ‘뉴욕가정문제상담소’에서 ‘뉴욕가정상담소’로 개칭했다.
2002년 상담소내 YCPT(Youth Community Project Team, 청소년 지역사회 봉사팀) 프로그램과 빅시스터· 빅브라더 멘토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2005년 뉴욕가정상담소는 974명의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했고 2006년 온라인 상담 시작과 가정폭력 생존자들과 목격자 수기를 담은 ‘Voices’를 편집 출판했다. 2007년 가정폭력 예방 침묵행진 실시 및 여성건강 검진 연례행사를 열었다. 2009년 상담소 창립 20년을 맞아 이사회는 뉴욕가정상담소의 나아갈 바를 재정립했다.
■ 2세 참여로 더욱 성장
2008년 미국무부 여성 폭력방지사무소(OVW)로부터 최초의 연방보조금을 수령하여 장기주택 옵션을 제공하게 됐다. 2010년 퀸즈에서 맨하탄으로 갈라 장소를 옮겨 기금 조성 및 1.5세, 2세들이 참여하는 긍정적 결과를 낳았다.
2011년 뉴욕아시안여성센터, 남아시아여성을 위한 사키(Sakhi), ‘PROJECT SPEAK OUT’ 이라는 획기적인 파트너십 프로젝트의 일부가 되어 지역사회에 가정폭력에 대한 태도 변화에 함께 노력한다. 자원봉사 그룹 하모니(Harmony)가 설립된다.
해를 거듭할수록 상담자가 늘며 2012년 1,620건의 핫라인 전화에 응답, 1,985건의 상담을 제공하며 주거 프로그램에 7가족 (여성 7명, 어린이8명)을 수용한다.
2014년 1월2일 ‘Women in Need Center(무지개의 집, 방은숙 이사장, 김은경 사무총장)’과 합병하여 가정 폭력 및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포괄적인 서비스 응급 셸터를 제공하게 된다.
2016년 19번째 연례 침묵의 행진에 200명 이상이 참여한다. ‘Garden of Hope’와 아랍계가족지원센터가 가정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한 인식, 친구 및 기금 조성을 위해 뉴욕가정상담소의 ‘ Purple 5K Dash’ 에 가입해 온다.
2018년 이사장 에스더 임, 준이사회장(Associate Board Chair) 윌리엄 강, 프로그램, 데이터 수집 및 보고에 대한 감독을 위해 창설된 부소장(소장대행)에 김새남이 정해진다.
2019년 3월8일 뉴욕가정상담소 뉴저지분원이 개설되었다.
■ 아직도 폭력이 존재
미국에서 7,4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면서 연인, 배우자로부터 가정폭력, 성폭력, 스토킹의 피해를 당한다고 한다. 이 말 못할 고민과 고통을 뉴욕가정상담소가 도와주고 있다. 가정폭력, 성폭력, 아동학대, 노인학대, 스토킹, 데이트 폭력, 성매매 등 개인 및 가족을 위한 상담, 교육 및 정보 안내와 법적 사회적 연계 서비스를 지원한다. 또한 개인, 그룹상담(부부, 가족, 우울증), 자녀문제(가정불화 피해 아동, 청소년 비행, 마약, 컴퓨터 게임 중독, 무단결석 등등)를 지닌 부모교육상담도 진행된다.
아직도 한인사회에 가정폭력 및 성폭력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것은 뉴욕가정상담소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2017년 뉴욕가정상담소 핫라인을 통해 3,109명이 전화를 걸어왔고 이중 가정폭력/성폭력이 2,555명 (82.0%), 그 외 다른 이유가 554명(18.0%)이었다. 2018년에도 3,000여명이 전화를 해왔으며 이 중 726명이 상담을 했고 서비스를 받았다.
■ 셸터와 직업교육
뉴욕가정상담소 산하 무지개의 집(Rainbow House)은 도움이 필요한 아시안 여성들과 그들의 자녀를 위해 복지 서비스 제공과 함께 3개월간 임시셸터와 18개월 장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피해자와 법정까지 동행하여 통역과 필요한 법률지원 서비스도 제공한다.
셸터 입주 여성을 위한 영주권을 비롯 신분획득에 도움을 주고 의료 검진 및 치료, 미술치료로 정신적 불안감 등을 치유해준다. 특히 취업 교육도 실시하여 여성의 존엄성과 자존감 회복에 힘쓴다. 영어, 컴퓨터, 재봉 교육에 한국음식, 행정관리, 오피스 어시스턴트, 베비시터 등의 잡을 소개한다. 가정폭력 및 성폭력 피해자는 전화 한 통이면 프로그램과 셸터까지 모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성인들을 위한 서비스 외 아동·청소년 프로그램으로 호돌이방과후학교, 빅시스터/ 빅브라더 멘토링 프로그램, 청소년 커뮤니티 프로젝트 팀, 리더십 프로그램 등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역사회 교육활동으로 핫라인 자원봉사자 교육이 봄가을로 1년에 두 번 열리며 가정폭력방지를 위한 침묵행진, 각종 지역사회 교육 세미나 및 포럼, 선도자 아웃리치 프로그램, 홍보 캠페인을 한다.
■ 상과 명예
2011년 호돌이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이 퀸즈 우수봉사 동반자상을 받았고 2012년 4월 이명신 이사가 뉴욕가정상담소 20년 봉사한 공로로 CMP와 옹패밀리 재단으로부터 아시안 아메리칸 지역사회 자원봉사자상을 수상했다.
2012년 최애영 명예이사가 존 리우 뉴욕감사원장실 인권역사의 달 명예상 수상, 2012년 5월 윤정숙 전 소장이 피터 구 시의원 사무실로부터 지역사회 지도자상, 2013년 홍보부장 김헬렌이 퀸즈한인회 지역봉사상을 받았다.
2014년 김광희 설립자 타임스 레저 신문사로부터 퀸즈 임팩트 상, 2018년 김광희 설립자가 한국정부의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 외 다수의 상을 받으며 뉴욕가정상담소는 주류사회는 물론 한국에서도 널리 인정받고 있다.
■창립 30년, 새로운 비전
뉴욕가정상담소는 지난 30년동안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시달리는 피해자 2,000명에게 법률지원과 보금자리 등을 제공해 왔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보통 20년이상 이사로, 자원봉사자로 함께 해오는 것이 뉴욕가정상담소의 장점이자 강점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뉴욕가정상담소에는 카운슬링, 소셜워커, 정신건강, 셸터(무지개의 집), 청소년프로그램 등에 18명이 풀타임, 40명이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윤정숙 전 상담소장은 “뉴욕의 어려운 여성들에게 따뜻하고 편안한 친정으로, 전문적 운영기관으로 더욱 인정받고 한인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바랬다.
임 에스더 이사장도 “뉴욕가정상담소가 미 동부지역에서 일을 잘 한다고 소문 나 있다. 한인사회가 좀더 관심을 갖고 전폭적 지지를 해주어 앞으로 애틀랜타, 버지니아 등 미 동부 전역에 뉴욕가정상담소 분원이 생길 것을 기대한다. ”고 30년 후의 미래를 설계했다.
“직원·봉사자·이사진·후원자들$모두 한가족”
■김광희 설립자
‘매맞는 여성’과 그들의 여성을 돕고 싶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1989년 10월21일(토) 집에서 가져온 책상 하나, 노란전화기 하나로 교회 사무실 한귀퉁이에서 시작한 뉴욕가정문제상담소, 어느새 창립 30년이 되었다.
설립자 김광희는 전문직 여성으로 풀타임 잡을 지닌 채 매주 화·목요일 오후 6시부터 9시 문을 열어 상담을 했고 24시간 안에 답한다는 약속을 지키고자, 사무실에 있는 앤서링 머신 체크를 위해 어딜 가든 공중전화를 찾아다녔다. 주중 법원에 가려면 주말에 일하고, 하루 휴가를 내어 롱아일랜드, 맨하탄, 펜실베니아 법정까지 변호사와 함께 갔다.
“초창기에 남자들한테 이혼시키려 한다고 욕 많이 먹었다.”는 김광희 설립자는 “30년동안 훌륭한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동안의 성장 발전은 우리들이 잘 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잘한 것이다. 또한 우리 자신의 삶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의 삶을 도왔다. 현재를 축하하고 미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클라이언트, 풀타임·파트타임 직원, 이사진, 후원자, 자원봉사자 등 돕는 사람까지 확장된 패밀리(Extended Family)가 함께 30년 후를 바라보자. 그러자면 어떻게 서로 도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뉴욕가정상담소 설립자 김광희를 한인사회가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많다. 첫째 상담소를 시작하면서 한국의 이태영 박사가 하는 한국가정법률사무소 뉴욕지부로 출발하면 편하게 갈 것을 굳이 사람들의 오해를 받아가며 뉴욕가정문제상담소(Korean American Family Service Center)로 당당하게 이름을 내걸며 가시밭길을 자청한 점이다. 말하자면 첫 번째 단추를 잘 꿴 것이다.
둘째 89~93년 소장 4년, 93~96년 이사장을 3년한 후 1.5세 김지영 소장에게 자리를 넘기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은 셈이다. 멀리 가려면 소를 끄는 마부가 로테이션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세째 1990년부터 뉴스 레터를 봄·가을 영어와 한글로 발행, 자원봉사자 교육도 영어와 한국어로 시작하여 1.5세, 2세들이 동참하게 만든 점이다. 네째 뉴욕우먼스파운데이션과 인연을 맺어 1991년 1만5,000달러 펀드 받은 것을 시작으로 30여년간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고 다른 기관과도 연계하여 주류사회 속에 뉴욕가정상담소를 각인시킨 점이다.
다섯째 오뚜기클럽 어머니가 혼자 살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한인기독여성 세미나 등으로 한인사회에 리더십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김광희의 별명은 ‘나침판’ 혹은 ‘치어 리더’, 이는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없게 방향을 지시한다고 해서고 가는데마다 주위사람들을 기분좋게 해주기 때문.
김광희는 ‘뉴욕최고 부자’다. 자원봉사자 교육이 끝나면 센트럴팍에서 아침을 사주고 뉴욕을 찾는 NGO 여성운동가, 뉴욕우먼스 파운데이션 직원에게는 ‘한국식당 런치스페셜’, 상담소 직원들에게는 ‘짜장면 내는 날’이 있다.
‘초창기시절 라면 끓여먹으며 일할 때 누군가 자장면 한그릇 사주는 것이 무척 고마웠다’는 초심을 잊지않기 때문이다.76년부터 코넬의과대학 부속병원 화학연구실에서 일한 것이 41년, 여전히 전문직 여성으로 일하면서 그 주급으로 감사의 밥 한끼를 산다.
“나 자신도 주류사회 여성단체의 멤버로 계속 교육을 받고 배운다. 상담소가 잠시동안 소장이나 이사한사람이 없어도 돌아갈 수 있도록 강화되고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고 말한다.
“무지개의 집과의 합병 가장 큰 성과”
■ 성지연 명예 이사장
1994년 처음 상담소에 들어올 때에는 가정폭력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여러 ‘가슴아픈 일’을 목격하면서 “내가, 우리가 이 여성을 돕자” 는 마음으로 25년간 뉴욕가정상담소 자원봉사자, 임시소장, 2008년~2016년 이사장을 지냈다.
성지연 명예이사장은 ‘가정 폭력, 설마 저 사람이?’ 할 정도로 겉모습으로는 절대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친지나 이웃의 가정폭력이 외면되기도 했고 상담소 오면 이혼시킨다는 비방으로 상담소가 자리 잡기까지 애로사항이 있었다고. 작년부터 목회자 초청 세미나를 통해 가정폭력은 어떤 건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지를 홍보하고 있으며 현재 한인사회에 상담소의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한다.
“아직도 한인사회에 남성이나 여성이 가해자로 가정폭력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3월8일 뉴저지 사무실을 오픈하면서 전화를 많이 받고 있다. 핫라인으로 전화가 오면 뉴저지 경찰서나 법원으로 가야할 경우가 생긴다. 현재 뉴저지 유일한 가정폭력 서비스를 하는 한인단체로서 앞으로 더욱 이용자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뉴욕가정상담소 뉴저지분원은 오픈 한달도 안되어 3명의 피해자가 상담 후 여러 후속조치를 받고 있다고.
성지연 이사장이 일하던 당시인 2014년 ‘무지개의 집’과의 합병을 가장 큰 성과로 든다.
“한인커뮤니티에 비슷한 단체는 많았다. 비슷한 시기에 무지개의 집은 셸터가 있지만 재정적으로 어려웠고 상담소는 어려운 여성을 돕기 위한 전문적 프로그램은 있지만 셸터가 없었다. 합병되면서 서로 없었던 것이 보완되고 각 이사진이 합쳐지면서 더 크게, 더 질적으로 높은 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다. 여러 자원, 정보 및 법적 자문, 셸터, 카운슬링 등등 한 번에 모든 서비스를 다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
현재 성지연 명예이사장은 비영리단체 어드바이스와 사회기업 전략(Strategy)를 돕는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뉴욕가정상담소 일을 적극 돕고 있다.
“가정문제 전반에 도움되는 프로그램 운영”
■ 김새남 소장 대행
“처음 상담소는 가정폭력 피해자 상담 위주로 시작되었지만 자녀 문제와 경제적인 면 등 여러 가정문제에 실질적 도움을 주고하다 보니 필요에 의해 프로그램이 증가되었다. 예를들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리는 호돌이방과후 학교 경우 1994년 한 클래스로 시작했지만 4년 전부터는 두 군데서 진행해야 할 정도로 200명 이상이 오고 있다.” 고 김새남 부소장(소장대행)은 현재의 활동상을 소개한다.
이는 호돌이방과후 학교가 학습뿐 아니라 자아성장 및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한 태권도나 사물놀이 등의 한국문화를 함께 배우다보니 저절로 프로그램이 발전한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뉴욕가정상담소의 오뚜기클럽은 이름은 사라졌지만 직업 프로그램으로 발전한 것도 시대의 필요성 때문이다.
“ 폭력 피해자인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직업 프로그램이 컴퓨터, 영어, 퀵북으로 시작되었고 지금은 재봉, 컴퓨터, 영어, 베이비시팅 분야를 교육한다. 1:1로 구직 상담을 하여 홀로 설 수 있는 준비를 시킨다.“
또한 매주 금요일 열리는 청소년 프로그램에 고등학생 35명이 참여 중이다. 이들에게 커뮤니티에 가정상담소의 미션을 알리는 한편 리더십 교육을 진행한다.
“24시간 핫라인이 운영되고 있는데 자원봉사자 50명이 활발하게 수고하고 있다. 자원봉사자 교육은 1년에 봄·가을로 두 번 열리는데 5주간동안 평일 저녁시간에 열린다. 자원봉사자모임 하모니 (Harmony)는 상담소 행사나 이벤트마다 나와서 봉사해준다.” 김새남 부소장은 컬럼비아 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출신으로 가정폭력 및 여성문제를 공부했고 2012년 ‘무지개의 집’ 소셜워커, 2014년 뉴욕가정상담소와 합병되면서 현재 전반적인 일을 하고 있다.
“가정폭력 여성피해자 및 가족, 커뮤니티 홍보교육 등등, 누가 이런 여성들을 도와주겠는가, 우리가 도와야 한다.” 그래서 하는 일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14명 이사진 연령·직업 고루 분포”
■ 임 에스더 이사장
“이사장은 이사진과 함께 상담소가 미션을 제대로 하는지와 재정적으로 돕는 일을 한다. 현재 이사진이 14명으로 월가, 비즈니스 오너, 변호사, 은행 및 투자가 등의 직업을 지녔고 40대, 50대 초반부터 77세까지 이민 1세, 1.5세와 2세로 구성되어 있다. ”고 임 에스더 이사장은 이사회를 소개한다.
특히 준이사진은 25~32세 청년 15명으로 구성되어 네트웍이 잘 되어있어 한인가정상담소의 자랑이라 할 수 있다. 사업자, 변호사 등의 직업을 지닌 이들 남녀는 기금모금 행사나 기타 이벤트에 참여하며 자원봉사자로 직접 일을 하기도 한다.
“이사회는 1년에 6번 하지만 상담소가 잘 돌아가는 지 프로그램을 살펴보아야 하며 갈라에서는 기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 말하는 임 에스더 이사장.
2007년 자원봉사자로 상담소에 발을 들여놓아 2017년 이사, 2018년 11월부터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무료 변론 서비스를 하고 있는 변호사다.
“이민문제나 영주권, 기타 가정 문제로 어려운 여성들 케이스가 많았다. 변호하고 양육비를 받아준 일이 가장 기뻤고 보람있다.”고 말한다.
창간 30주년을 맞은 상담소가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를 더욱 더 많이 도와주고 건강한 한인사회 조성에 도움되기’를 바라며 더 큰 도약을 기대했다.
“정부지원금·갈라 등으로 재정기반 닦아”
■ 윤정숙 전 소장
2008~2015년까지 7년간 뉴욕가정상담소장을 지낸 윤정숙 전 소장은 성지연 이사장과 환상적 커플을 이뤄 눈부신 성과를 이뤄냈다. 시카고 대학원 시절 핫라인, 가정폭력에 대해 배우고 한인단체에서 경험을 쌓은 다음 뉴욕에서 마음껏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뉴욕가정상담소의 기반을 다지고 모금활동 및 그랜트를 받아냄으로써 호돌이 프로그램을 비롯 지역사회 봉사를 2배로 하는 성과를 냈다. 특히 2009년 미국무부 여성폭력 방지사무소로부터 최초의 연방보조금으로 25만달러(3년간)를 받아냄으로써 피해여성이 가장 필요한 장기주택 옵션을 진행할 수 있게 했다. 2018년 65만달러(3년간)로 보조금이 올랐다.
“퀸즈 지역에서 갈라를 하다가 2010년 처음으로 맨하탄 그랜드 호텔에서 개최하여 그 해 50만달러 정도를 모았다. 갈라는 2세들이 앞장서서 리더십도 배우고 친구들도 사귀는 기회다. 자원봉사자들도 24시간 핫라인 봉사를 하면서 이민 와서 자신이 보람된 일을 한다는데 자긍심을 가졌다.”
지금도 가슴뿌듯한 것은 2014년 무지개의 집과의 합병이라고 한다.
“그동안 자매기관처럼 파트너로 그랜트를 함께 받는 등 서로 협조하며 믿음이 형성되었다. 상담소의 꿈이 셸터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피해여성을 100% 도와줄 수 있다. 1년이상 준비하여 서로 모자란 점을 보완하여 하나가 된 것이다.” 현재 윤정숙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시정부 일을 하는 한편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 중이다.
뉴욕가정상담소 (718-460-3801)
The Korean American Family Service Center
P.O. Box 541429, Flushing, NY 11354
뉴저지 상담소 (201-731-3800)
www.kafsc.org:
상담소는 월~금요일 오전9시~오후5시까지 문을 연다.
24시간 핫라인(영어/ 한국어): 718-460-3800
월간 후원 10달러, 1회 후원 50달러, 자유기부 현물 기부 및 기금
<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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