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 장기체제 국수적 사회분위기 반영
▶ 신청자 19%만 통과 800달러 댓가 챙겨
베이징에 위치한 페킹대학 제 3병원의 불임클리닉에서 연구실 테크니션이 정자샘플을 검사하고 있다. [사진출처: 뉴욕타임스 AFP전송 사진]
■ 중국 스펌뱅크의 정자 기증자 광고 백태
중국 스펌뱅크의 정자 기증자 구인광고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자격조건을 달아놓았다.
우선 대머리에게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색맹과 같은 유전적 질환자도 마찬가지다. 대머리는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한 탓에 해당 남성은 아예 정자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일반 대중도 머리털 없는 남자를 정자기증자 후보에서 제외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여론을 빌어 공론화 할 수 있는 이슈가 전혀 아니라는 얘기다.
외모와 연령 기준을 통과한 신청자는 색맹검사와 혈액검사를 비롯한 일련의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중국 페킹 대학 제3병원이 작성한 광고의 위쪽에는 “사회주의 조국에 대한 지속적 사랑을 지닌 남성만이 신청 가능함”이라는 결정적 단서가 큼직한 글자로 달려 있다.
이건 얼마든지 공론화가 가능한 이슈고, 실제로 문제가 제기됐다. 정자 기증 희망자의 입장에서 스스로의 애국심과 당성을 점검해 보아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측정하고 평가해야 할지 대략 난감하다.
솔직히 용돈이나 벌어볼 요량으로 정자를 팔려는 남성에게 애국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 차제가 우스꽝스럽다는 지적도 쏟아져 나왔다.
정자은행의 웃지 못 할 광고는 중국의 달라진 정치 분위기를 반영한다. 정자은행이 설정한 신청자격도 중국인들의 일상생활 한복판에 공산당의 입지를 재구축하려는 시진핑의 시도에서 비롯됐다.
중국은 시 주석이 장기지배체제 확립의 토대로 활용한 국수적 사회주의 사상과 ‘굴기’ 열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도심 곳곳에 사회주의 구호를 담은 현수막이 나붙고, 하루에도 몇 번씩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랩뮤직이 전파를 타는가 하면 애국심에 불타는 영웅들이 극장가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타고 생식의 영역에도 당에 대한 충성심 테스트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최근 소셜미디어를 타고 급속히 번진 페킹대 제3병원 정자은행 광고는 잠재적 기증자의 첫 번째 자격조건으로 공산당과 시 주석에 대한 지지를 꼽았다.
광고는 이상적 기증자를 “훌륭한 이념적 사고와 사회주의 조국에 대한 지속적인 사랑 및 공산당 지도부에 대한 충성심을 지닌 남성”으로 묘사했다. 광고에 따르면 자격이 입증된 기증자에게는 최고 5,000 런민비(미화 800달러)가 주어진다. 2016년 자료를 보면 정자병원을 찾아온 신청자들의 19%가 자격을 인정받고 정자를 기증했다. 심사가 꽤나 엄격하다는 얘긴데, 문제는 당에 대한 충성심을 어떻게 점검해 적격자를 가려냈느냐이다. 신청자들 대부분이 색맹이거나 유전성 질환자일 턱이 없으니 결국 ‘충성심’ 테스트가 결정적인 선발기준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조롱과 비난이 쏟아지자 병원 측은 얼마전 문제의 광고를 슬며시 폐기했다.
그러나 광고가 촉발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 소셜미디어 사용자는 마이크로블로깅 사이트인 웨이보에 “국가와 당에 대한 사랑은 정자에서 출발한다”고 비아냥댔고, 자격기준을 조롱하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법을 준수하고, 정직하며 올곧고, 정치적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 젊은 남성”이라는 문구도 비난의 표적이 됐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웨이보 사용자는 “도대체 과학적 입증이 가능한 자격조건이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언론매체들이 나서 병원 측의 입장을 물어 보았으나 페킹대학 제 3병원은 굳은 침묵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대학병원의 정자 기증자 구인광고는 시 주석의 흔들림 없는 충성심 요구에 일선 관리들이 그들의 ‘일편단심’을 내보이기 위해 취한 과잉반응의 대표적인 예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비평가들은 시 주석이 마오쩌뚱 시대 이후 사라졌던 개인숭배를 장려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시진핑 정부의 관리들은 젊은 세대에 이른바 “붉은 유전자”를 주입해야 할 필요성을 자주 언급한다. 공산당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런던경제대학 국제관계학과 교수인 윌리엄 캘러한은 “정자은행 광고는 과학과 이념을 하나로 섞으려는 시진핑 주석의 시도를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특이한 방식으로 결합시켜 혈통종족이라는 중국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것”이라는 주석을 덧붙였다.
캘러한 교수에 따르면 정자은행의 광고는 중국 공산당이 정치적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식과 민족주의가 어떻게 인종적 순수성에 의해 규정되어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정자은행 광고는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이 완화됨에 따라 둘째 아이를 갖으려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정자은행들이 저마다 기증자 유치 압박에 시달리는 가운데 나왔다.
사회 고령화가 진행 중인 중국은 노동인력을 늘여야 한다는 국가차원의 강박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 편승한 일부 정자은행들이 젊은이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긴 하지만 사회 일각에서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시큰둥한 반응도 나온다.
중국 본토에서 발행되는 신문으로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글로벌 타임스의 편집장 후 시진은 “정자은행 광고는 우스꽝스럽다”고 평가절하하고 “별 것 아닌 광고에 지나친 반응을 보이는 일부 시민들의 속셈은 아마도 당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를 끌어내는데 초점이 맞추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후 시진은 웨이보에 올린 글을 통해 “이따위 광고를 만들어내 대형 사고를 친 해당 조직의 형편없는 지도자들에게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하며, 합당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정자은행 광고 논란은 최고 권력자를 향한 과잉충성이 빚은 논란으로, 빌미를 제공한 책임자들을 색출해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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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New York Tie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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