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이스 리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연구원
하나만 고르라는 말에 장난감 진열대를 이리 돌고 저리 돌며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던 아이가 최종적으로 “이거!” 라며 들고 온 인형놀이세트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비슷한 종류의 다른 제품들보다 가격은 비싼데 내용물은 부실하고 잘 알려진 회사의 제품도 아닌데다 공주님 얼굴도 좀 촌스러워 보이는데…
“OO아, 여기봐 봐. 이 공주님이 더 예쁘지 않아?” “아니. 난 이게 좋은데?”
“아니야. 잘 한번 봐봐. 이 공주님은 옷도 세벌이나 들어있어. 갈아입히면서 놀 수도 있고 집에 있는 공주님들이랑 키도 비슷해서 같이 놀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이성적 판단이 부족한 세살 아이를 겨우 설득해서 경제적으로나 활용도 면에서나 가장 합리적인 인형놀이세트를 들고 집에 돌아왔는데 조금 가지고 놀던 아이가 삐죽거리며 말한다. “엄마, 나 아까 그 인형이 더 좋았어...”
모든 선택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이성적인 판단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는 성향, 텍사스대학 맥콤즈 경영대학원의 라흐 라흐자탄 교수는 이를 ‘이성중독’ 이라고 말한다. 부페에 가면 좋아하는 김밥대신 비싸고 만들기 어려운 음식들로 배를 채우거나(그리고 과식하거나), 눈에 들어오는 A제품 대신 가성비 높은 B제품을 선택하고, 좋아하고 적성에 맞는 일보다 월급이 많고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하는 상황들이 그렇다.
“왜 똑똑한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라는 그의 유명 저서에서 라흐자탄 교수는 이렇게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려 내린 결정들이 정작 우리가 삶의 최고가치라 말하는 ‘행복’을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감성을 배제하고 합리성과 이성을 따라 하는 선택들이 정작 우리가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막는 방해물이 된다는 것이다.
재고 따지고 고르느라 각자의 감성과 직감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선택을 계속하게 되면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사회 통념적 가치, 모두가 공감하고 인정할만한 선택, 정해져있는 답을 찾길 강조하는 교육방식에 길들여진 많은 한국학생들이 정말 자신이 좋아하고 행복한 일이 무엇인지 몰라 뒤늦게 방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과목보다 입시에 유리하고 중요한 과목 위주의 학습을 하고, 시험을 위한 공부만 했기에 행복의 기준이 오로지 성적에 고착화된다. 수치화하고 서열화할 수 없는 개인의 감정과 감성은 비논리적인 것으로 가치 폄하될 수밖에 없다.
시카고대학의 크리스 시 교수는 한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작은 하트모양의 초컬릿과 이보다 크고 4배가 비싼 바퀴벌레모양의 초컬릿 중 어떤 것이 더 맛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예상대로 응답자의 대부분이 하트모양의 초컬릿이라 답했지만, 정작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순간에는 대부분의 응답자가 크고 비싼 바퀴벌레 모양의 초컬릿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합리주의에 따라 크고 비싼 초컬릿을 선택한 이들은 정작 이를 맛있게 먹을 수는 없었을(적어도 그들에게 더 맛있어 보인 하트모양의 초컬릿보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배우는 것이 많음을 느낀다. 사고력과 판단력이 부족한 아이의 행동들이 답답할 때도 있지만 이리저리 재고 따지지 않는 순수함과 무모함, 근거 없는 자신감과 용기가 종종 부럽기도 하다. 왜냐고 물으면 “그냥” 이라고 말하는 순수함, 알아볼 수도 없는 그림을 끄적여 놓고 본인 스스로 만족스러워 자랑을 늘어놓는 용기, 이유도 논리도 없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쫓는 무모함. 그래서 아이는 어른보다 행복하다. 나의 이성중독이 아이의 행복한 선택들을 방해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제야 보인다.
이유 없이 좋은 것이 진짜 좋은 것이라는 말처럼, 때로는 이성과 논리보다 감성과 무의식이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온 세계가 열망하는 창조와 혁신의 원천 또한 이성과 성찰이 아닌 감정과 직감이지 않은가. 객관성과 일반적 통념에 과잉의존하지 않는 유연성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중요한 가치이자 경쟁력이기도 하다.
물론 진지한 성찰과 신중하고 합리적인 선택이 필수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선택과 결정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세상의 많은 일들에 스스로의 만족이 가장 중요한 결정도 많다. 이성도 합리성도 중요하지만 솔직한 스스로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내 마음챙김 또한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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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리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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