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관영 매체가 최근 우리 정부의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을 연이틀 비난하며 천안함 폭침 사건을 ‘모략극’이라고 주장한 것을 놓고 한국과 미국의 대응이 엇갈리고 있다. 한국 정부는 ‘침묵’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나, 미국 정부는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라고 반박했다.

북한의 주장은 남북 해빙 무드가 조성되는 가운데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농담조 언급을 한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천안함 책임론 덮기’ 전략에 따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예술단과 함께 방북한 우리 측 취재진이 1일 평양 공연 당시 취재 제한을 받은 것과 관련해 2일 사과하러 온 자리에서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 저 김영철입니다”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3일 논평에서 이낙연 총리의 서해수호의 날 기념사를 ‘악청’이라고 비난하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놀음은 명백히 북남 관계 개선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 흐름에 역행하는 용납 못할 대결 행위”라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이어 “남조선 보수패당이 조작해낸 치졸한 모략극인 천안호 침몰 사건의 진상은 이미 만천하에 폭로되었다”고 강변했다.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은 2002년 제2연평해전, 2010년 천안함 사건·연평도 포격 도발 등 북한의 ‘3대 서해 도발’을 잊지 않기 위해 2016년부터 정부 행사로 거행하고 있으며, 올해는 지난달 23일 열렸다. 또 조선중앙통신은 4일 논평에서 “명백한 것은 천안호 사건이 친미 보수정권이 동족 대결을 위해 고의적으로 조작한 특대형 모략극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는 김영철의 ‘천안함 발언’에 항의하거나 유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3일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말했고, 통일부 당국자도 “특별히 말씀드릴 사안은 없다”고 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민·군 합동조사단이 천안함 폭침은 북한 어뢰 공격에 의한 것임을 밝혔다”면서도 김영철의 언급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만 대답했다.

반면 카티나 애덤스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3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2010년 5월19일 발표된 국제합동조사단의 보고서는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에서 발사된 북한 어뢰에 의해 침몰했다는 결과를 보여주는 객관적·과학적 증거”라며 “미국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4일 내신 기자 브리핑에서 ‘천안함 폭침에 관한 미국 국무부의 입장이 나왔는데, 우리 정부 입장과 외교장관의 생각은 무엇인가’라를 질문을 받고 “국방부 대변인 말씀이 우리 정부 입장”이라며 직접 언급을 피했다.

이를 두고 자유한국당 등 야권에선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을 조롱한 것이 명확해졌는데도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해빙 무드가 깨질까 봐 지나치게 북한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는 “김영철이 웃으며 천안함을 말하고 노동신문이 대한민국을 능멸하는데, 청와대와 국방부·통일부는 모두 ‘할 말이 없다’고 한다”면서 “이것이 정의이고, 공정인가”라고 반문했다. 전준영 천안함 예비역전우회장은 “북한은 조롱하고, 우리 정부는 침묵하고, 한국 공영방송은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한다”며 “어느 군인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싶겠는가”라고 말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핵·미사일 도발을 하던 북한이 최근 3개월 동안 ‘한국과 평화적으로 잘 지낼 수 있는 보통국가’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평화 공세(charm offenive)를 펴는 바람에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도발, 북핵과 미사일 등을 잊게 되는 착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지사=김광덕 뉴스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