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게임에 도전했다. 비디오 게임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기에 VR게임 플레이는 그야말로 도전이었다. VR기기 헤드셋을 뒤집어쓰고 손에 두 개의 장비를 드니 눈 앞에 귀여운 몬스터가 나타나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안내를 한다.
처음 하는 게임인지라 모든 동작은 의지를 배반하고 이로 인해 게임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는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다. 몬스터랑 대결을 하리라. 그런데 이 녀석은 플레이어의 의도를 읽은 듯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게임을 하라고 훈계를 한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몬스터랑 한참 동안 놀았다. 물론 게임은 한 단계도 진척되지 못했고 무뇌아 같은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함께 한 사람들에게 동영상만 찍혔다.
갑자기 VR게임을 하게 된 이유는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른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때문이다. 스필버그 감독에게 최근 10년 동안 만든 작품 중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안겨 준 영화다. 2008년 개봉작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이후 2018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더 포스트’(The Post), 2013 아카데미 12개 부문 최다 후보작 ‘링컨’이 깨지 못했던 기록이다. 역시 스필버그 감독은 작품성보다는 오락성으로 승부하는 게 맞다고 해야 하나.
어니스 클라인의 2011년 동명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2045년 오아시스라는 가상 유토피아 속에 숨겨진 이스터 에그를 찾는 모험을 그린 판타지다. 첫 장면부터 VR에 푹 빠져 현실에서 삶의 의욕을 상실한 디스토피아 세상을 보여준다.
쓰레기 더미 속에 컨테이너를 고층빌딩처럼 쌓고 사는 오하이오주의 빈민가가 배경이고, 10대 주인공들은 오아시스의 개발자가 유산으로 남긴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오가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두뇌게임을 벌인다. 현실은 암울하지만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지니 척박한 현실은 잊고 모두가 게임중독이 돼있다.
이 영화의 흥행 키는 게임팬을 타겟으로 하기보다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아니 전혀 모르는 영화팬까지 흡수해버린 71세 노장 스필버그 감독의 연출력이다. 140분 동안 가상현실은 CG판타지로, 현실세계는 액션과 드라마로 펼쳐져 아이들보다는 극장을 찾은 어른이 더 즐거운 영화다.
원작을 그대로 가져온 게임의 실마리가 1980년대 대중문화 아이콘이기에 영화팬들은 눈을 뗄 수가 없다. 킹콩, 쥬라기공원, 샤이닝, 백투더퓨처 등의 장면이 현실의 시계를 돌리고 사탄의 인형 척키의 활약이 대미를 장식한다.
몰라서 스쳐 지나간 장면은 없는지 대중문화 골든벨 퀴즈를 푸는 듯하다. 게다가 적재적소에 흘러나오는 80년대 팝송은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머리 속에 심어놓은 칩들이 폭발하면서 불꽃놀이 연출하는 마지막 씬에 흘러나오던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처럼 희열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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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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