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Biz 리더 <22편> 돈키호테 창업자 야스다 다카오
▶ 도쿄 명문대까지 졸업했지만 밤거리 방황하며 타락한 삶
돈키호테를 창업한 야스다 다카오
돈키호테(Don Quixote).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가 쓴 소설이자 주인공 이름이기도 한 돈키호테는 창조된 지 400년이 흐른 지금도 사람들이 친숙하게 떠올리는 인물이다. 비쩍 마른 말에 몸을 실은 그가 자신의 이상에 사로잡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은 무모해 보이는 영웅의 상징이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일본에 가 본 적이 있다면 다른 그림이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진열대와 좁은 통로, 가지런함과는 거리가 먼 상품 진열,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형형색색 가격표. ‘돈돈돈 돈키~ 돈키호~테’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단순한 멜로디의 CM도 귓가를 맴돈다. 식품부터 의류, 전자제품 등 없는 게 없는 할인 유통점 돈키호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돈키호테라는 상호는 창업자인 야스다 다카오(68) 회장이 1989년 3월 일본 도쿄도 후추시에 1호점을 열며 직접 붙인 이름이다. 간판을 달았을 때 눈에 잘 띄고, 기억하기도 쉬운 이름을 고민한 끝에 선택했다. “유통업계라는 거대한 풍차를 상대로 기존 권위나 상식을 타파해 나가자는 다짐을 담았다”고 야스다 회장은 말한다. 돈키호테의 평당 매출은 업계 평균의 10배에 이르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동안 오히려 매출은 700배, 경상이익은 무려 3,600배 증가했다. 돈키호테는 지난달 400번째 매장을 열었다. 2017 회계연도(2016년 7월~2017년 6월) 매출 8,287억엔(약 73억5,000만달러)을 기록했고 이제는‘2020년 1억엔 돌파’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일용직과 도박으로 점철된 20대
야스다는 1949년 5월 기후현 오가키시에서 태어났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뒤늦게 학구열에 불타올랐다. 흥미로운 일이 넘쳐날 것만 같은 도쿄로 가고 싶어서였다. 목표가 생기니 집중력이 솟았고, 그는 도쿄의 명문 게이오대 법학부에 합격했다.
막상 입학해서는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석이 잦아 1학년 때 유급 처분을 받게 됐는데, 이 사실을 안 아버지는 학비와 생활비 지원을 끊었다. 아버지에게 머리를 숙이고 싶지 않았던 야스다는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 요코하마항에서 노역을 했다. 그즈음 마작을 배웠다. 힘들게 벌어들인 돈을 뜯기는 게 억울해 작정하고 연구를 거듭한 결과 3학년 무렵부터는 잃는 일이 드물었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해 들어간 첫 직장은 이름 없는 부동산회사였다. 게이오대 출신이라 하면 번듯한 대기업에도 취직할 수 있었지만, 작은 회사라면 빨리 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고 부동산 업종은 노하우만 쌓으면 독립하기도 쉬울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의 여파로 회사는 허망하게 도산했다. 입사한 지 불과 10개월 만이었다.
실업자 신세가 된 뒤 생활비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그때 그의 머리를 스친 게 있었으니, 바로 마작이었다. 고수 못지않은 실력을 자랑하던 야스다는 매일 저녁 마작장으로 출근해 밤을 꼴딱 새고 집에 들어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어찌 보면 타락한 삶 그 자체였지만, 밤거리를 하릴없이 배회하던 시간은 훗날 방황하는 청춘의 아픔을 위로하는 돈키호테식 마케팅 기법, 심야 시장 개척의 밑거름이 됐다”고 그는 말한다.
■돈키호테를 만든 건 팔할이 ‘도둑시장’
그가 하루살이 인생에 마침표를 찍고 사업으로 승부해보자는 마음을 먹은 건 30대를 앞둔 때였다. 마작 외에는 재주도 기술도 없고, 붙임성도 부족했던 야스다는 당시 전국에 생겨나기 시작한 할인점을 주목했다. 전 재산 800만엔(약 7만1,000달러)을 종잣돈 삼아 10여 평 점포를 빌린 그는 도산한 기업 등에서 나오는 재고 물품을 팔기로 했다.
초짜 상인이라 문전박대당하기 일쑤, 수십번 도매업체 문을 두드린 끝에 공급처를 확보했다. 그리하여 그의 나이 29세가 되던 해, 첫 가게 ‘도둑시장’이 세상과 만났다. 괴상한 이름을 붙인 이유는 단 하나, 어떻게든 눈에 띄기 위해서였다.
독특한 가게 이름이 한몫했는지 처음에는 손님들이 몰려왔지만 머지않아 파리만 날리기 시작했다. 하루 매상이 2,000엔(약 18달러)밖에 안 되는 날도 허다해 상품을 넉넉히 확보하지 못했다. 팔 상품이 없으니 손님이 오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망하지 않기 위해 그는 다른 방식을 고민했다. 그러다 떠올린 묘안은 견본품(샘플)이나 흠집 난 상품, 반품된 물건 등을 떼다 싼값에 파는 것이었다. 어차피 폐기될 이런 제품들은 헐값에 매입할 수 있었고, 가게는 금세 수많은 잡동사니로 가득 찼다. 볼펜이나 일회용 라이터 등에 단돈 10~20엔(10~20센트)이라는 가격이 붙었다. 너무나 싼 가격을 보고 종종 묻는 손님도 있었다. “정말 훔쳐 온 물건을 팔아서 가게 이름이 도둑시장인 건가요?”
■믿고 맡겨라, ‘창자의 힘’을 길러라
개업 2년 뒤 도둑시장은 지역 명물로 자리 잡았다. 장사가 잘 되니 물건 공급이 늘었고, 도둑시장만으로는 감당이 안 돼 다른 할인점으로 돌리는 일이 종종 생겼다. 몇 번 반복되자 다른 점포에 상품을 중개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업이 됐다. 중간도매상이 된 셈이었다.
야스다는 과감하게 도둑시장을 팔고 1983년 도매 전문회사 ‘리더’를 세웠다. 리더는 설립 수년 만에 연 매출 50억엔(약 4,400만달러)을 넘어설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런데 단골 할인점 주인들은 폐업이 잇따랐다. 도둑시장처럼 상품의 밀도를 높여 정글식 매장을 만들라고 노하우를 전수해도 그들은 그저 물건을 팔려는 장삿속으로만 받아들일 뿐이었다.
직접 소매점을 운영하며 자신의 노하우가 옳다는 점을 증명해 보이고, 체인 형태로 전수하는 것이 낫겠다 생각했다. 마침내 야스다는 1989년 돈키호테 1호점을 열며 다시 소매업에 뛰어든다.
이 과정을 겪으며 야스다가 내린 결론은 직원을 가르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정반대의 방법을 쓰기로 한다. 직원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직원마다 담당 구역을 정하도록 한 뒤 상품의 구매에서 진열, 가격 책정,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과감하게 위임했다. 도둑시장 시절 자신의 상황으로 직원들을 밀어 넣자, 그들은 근면하고 맹렬한 일꾼으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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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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