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리 올림픽’에 도전한 한국의 영 셰프들
“세계의 벽은 높았다.” 이 무슨 ‘응답하라 1988’인지. 쌍팔년도 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그 관용구가 장탄식으로 새어 나왔다. 한국인 요리사 4명이 ‘요리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리고 전 세계 결선 대회 진출 자격 획득에 실패했다. 겉으로 보자면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대만 타이페이에서 ‘2018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경연 대회(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동북아 결승이 열렸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요리 올림픽이다. 대회의 요지는 간단하다. 만 30세 이하, 1년 이상 레스토랑 주방에서 ‘셰프 디 파르티’(Chef de Partieㆍ주방의 여러 섹션 중 하나를 책임지는 요리사) 직무에 종사한 경험이 있는 요리사는 누구라도 지원할 수 있다. 세계 지도를 21개 구획으로 나눠 지역별 10명의 지역 결승 진출자를 정한다. 서류 심사는 이탈리아 유력한 요리학교인 알마(ALMA)가 맡는다. 올 2월부터 석 달간 참가 접수를 받았고, 90여개국에서 수천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올해로 세 번째 대회다.
지역 결승 진출자 10명이 발표된 것은 7월이었다. 한국은 대만, 홍콩, 마카오와 함께 동북아 지역으로 묶였다. 중국과 일본은 미식 시장이 크다 보니 각각 하나의 지역으로 분리됐다. 세계 미식시장에서 한식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동북아 결승 진출자 10명 중 5명이 한국인이라는 데서 또 한번 증명됐다. 최진원씨(밍글스)는 개인 사정으로 대회 직전에 기권을 선언, 한국인 4명이 지역 결승대회에 참가했다.
실화판 ‘마스터 셰프’
‘마스터 셰프’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영국에서 시작돼 세계 곳곳에서 라이선스로 제작된 인기 시리즈다. TV 속 인물들이 거액의 상금과 약속된 스타덤을 향해 꿈과 재능을 펼쳐 보이는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마스터 셰프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방송돼 인기를 끌었다.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는 맨살 그대로의 실화 그 자체다. 메이크업도, 카메라와 조명도 없고 상금조차 한 푼 없다. 결승에서 우승한 영 셰프는 3억원보다 훨씬 값어치 높은 상을 받는다. 일약 월드 스타가 되는 것. 쉽게 말하자면, 요리사 초년생이 책에서나 봤을 법한 스타 셰프들이 축하 악수를 먼저 건네는 존재가 되는 것. 산펠레그리노가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스타 셰프들, 레스토랑이 그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 우승자는 세계 각국을 방문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가 주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신분 상승이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도 미래의 스타 셰프가 되고자 하는 많은 젊은 요리사가 지원했다.
동북아 결승에서 영광은 한국에 임하지 않았다. 대만 출신의 젊은 요리사 쯔양천에게 돌아갔다. 쯔양천은 내년 5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결승에 진출해 세계 21개 지역 우승자들과 재능 그리고 실력을 겨루게 된다. 내년 5월 새로운 스타 셰프가 탄생한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4명의 이야기가 남았다. 동북아 결승에 출전한 한국 영 셰프들을 동행 취재했다.
대만에서 젊은 요리사들의 경연
강민성(27) 영 셰프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 2017ㆍ2018’ 1스타와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2017’ 15위 타이틀을 가진 어마어마한 레스토랑 ‘밍글스’에서 셰프 디 파르티로 일하고 있다. 김봉수(29) 영 셰프는 지원 당시 ‘한국술집 21세기 서울’ 헤드 셰프를 거쳐 현재 우드 그릴 레스토랑 ‘도마’ 헤드 셰프로 자리를 옮겼다. 둘은 셰프 커뮤니티에서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데 반해, 나머지 둘은 무명의 도전자다. 박종윤(29) 영 셰프는 경기 파주 ‘다이닝 노을’에서 수셰프로 일하고 있다. 배종훈(26) 영 셰프는 광주 ‘에스트레야’라는 레스토랑에서 얼마 전까지 셰프 디 파르티로 일했다.
대회 일정은 매우 압축적이었다. 4일 오후 타이페이에 도착해 잠시 휴식한 영 셰프들은 다음 날 새벽 7시부터 폭풍 같은 일정에 올라탔다. 이 대회의 의미가 승자를 가리는 요리 대회 이상이라는 것을 일깨운 것은 첫 공식 일정인 타이페이 재래 시장 투어였다. 대만은 새로운 미식의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는데, ‘아시아50베스트 레스토랑 2017’ 43위에 선정된 ‘무메’의 리치 린 셰프가 직접 나와 시장을 안내했다. 한국과 같은 듯 다른 재료가 많아 쉽지 않아 보였지만, 든든한 실력을 갖춘 요리사들은 “사람 사는 곳이라 다 구해진다”며 만족스럽게 준비를 마쳤다.
다음날 대회장에서 만난 영 셰프들은 각각이 하나의 레스토랑을 이뤘다. 무명과 유명의 셰프를 가르는 것은 재능이나 실력이 아닌 명성뿐이던가. 각자가 하나의 철학이고 가능성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심사위원의 면면도 대단했다. 모두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이나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한 엄청난 셰프들이다.
심사위원들은 전날 리치 셰프가 했던 것처럼 긴장 반, 조급함 반, 즐거움 약간으로 치열하게 요리를 해 나가는 영 셰프들의 주방을 돌며 요리 과정을 지켜보고, 다정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영 셰프들은 요리를 마치고 10여분간 요리를 설명하고, 심사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받아 내는 프리젠테이션과 시식 심사를 받았다. 조리 중 심사위원들이 보인 다정함과 거의 극단적으로 다른, 압박 면접에 가까운 심사였다. 판단 기준은 서류 심사 때와 마찬가지로 재료, 기술, 창의성, 예술성, 메시지 다섯 항목. 심사위원 5명이 의견을 교환하며 각 항목에 소신껏 점수를 매기고, 총점이 가장 높은 참가자가 우승자로 선정됐다.
그가 바로 쯔양천이다. 준비된 완성도를 펼쳐 보인 그의 노력을 이해하기에, 나머지 여덟 영 셰프들은 우승자 발표 순간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넸다. 사흘을 같이 보내는 동안 젊은 요리사들 사이 우정이 자라났다.
그들의 이름, 강민성 김봉수 박종윤 배종훈
강민성은 “부산물로 취급되는 부위인 우설을 사용해 한국의 맛을 선보이고자 했다. 현대적 프렌치 조리 기법을 사용해 소고기를 자주, 많이 접할 수 없었던 한국의 과거의 맛을 접시에 담아냈다”고 말했다. 심사 중 가장 혹독한 심사평으로 영 셰프들을 ‘멘붕’에 빠뜨린 치앙 셰프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주 맛있었다. 무척 완성도 높은 요리였다. 숙련된 기술을 갖고 있는 요리사라서 장래가 매우 기대된다.”
김봉수는 “잘 쓰지 않는 재료인 소의 심장을 이용한 요리를 준비했다. 전 세계 곳곳에 무명으로 일하고 있는 영 셰프를 발굴하는 이 대회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치앙 셰프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요리 경연대회에서 돋보일 수 있는 연출, 그리고 한국적 요소도 잘 보여 줬다. 스스로 즐기면서 요리하면서 주목을 끌고 고객을 즐겁게 해 주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영특한 요리사다. 진중하게 해 나가다 보면 더욱 큰 존재가 될 것으로 본다.”
박종윤은 이렇게 말했다. “지역 결승 진출자로 선정된 것만으로 이제까지 힘들게 해 왔던 요리사로서의 경험과 실력을 인정받은 것 같다.” 치앙 셰프는 박종윤 영 셰프에 대해 “한국과 대만의 재료가 달라 아쉬운 점이 있었을 것이다. 매우 잘 짜인 음식을 선보였다. 또한 조리 과정에서도 망설임 없이 해 나가고 있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가장 많은 가능성을 가졌다”고 말했다.
배종훈은 “앞으로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은 시기에 대회에 참가했다. 다른 영 셰프와 셰프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동안 장래에 대한 결심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며 “광주를 떠나 서울의 파인다이닝이나 앙드레 치앙의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치앙 셰프는 “단순하고 깔끔하지만 섬세하고 아름다운 요리였다. 특히 사과주스로 만든 ‘다시’는 아주 훌륭했다. 다음에도 참가한다면 더 치열하게 자신의 실력을 남김 없이 보여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무도 아니었던 그들이 자신의 특별함을 스스로 인정하게 하는 기회. 그들의 우상일 훌쩍 큰 존재가 가장 작은 존재로 여겼던 자신을 빛내 주는 뭉클한 경험. 대회는 무명의 젊은 요리사들에게 값진 경험을 주었다. 귀중하게 대해진 경험은 그들에게 성장 촉진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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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이해림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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