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속으로 그려진 빛의 속삭임’ 뉴멕시코의 반짝이는 하얀 모래언덕을 미국에선 “지구상에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라고 표현한다.
화이트샌드 국립공원은 세계의 위대한 자연의 신비스러운 장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 언덕은 세계 최대의 석고사막이면서 275평방마일을 하얀 모래로 가득 채우고 있다. 60마일 속도로 4시간 반 이상을 달려야 끝이 보인다고 한다.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이다. 아니 눈으로 보면서도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저 상상만 할 뿐이다.
사진작가들이 꼭 가보고 싶은 장소 중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자연이 이루어낸 신비로움과 그 웅장함 앞에 인간은 한없이 작아지나보다.
덜레스 국제공항을 떠나 텍사스의 엘파소(El Paso) 국제공항에 도착해 렌터카를 대여하여 나름대로 멋진 작품을 담아 볼 생각에 설레는 가슴을 안고 세계 최대의 모래사막을 만나러 떠난다. 화이트 샌드 국립공원은 엘파소 공항에서 차로 3시간 반 정도 거리이다.
공원에서 차로 15분정도 거리에 알라모고도(Alamogordo)라는 작은 도시가 있어 숙소를 정하고 월 마트나 식당에서 필요한 것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멕시코 국경이 가까워 불법입국의 가능성이 있기도 하지만 화이트 샌드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공군 미사일 시험기지가 있어 그 곳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70번 국도 선상에 있는 검문소를 거쳐야 한다. 때문에, 여권이나 비자서류 또는 운전면허증(신분증) 등은 꼭 준비해야 한다.
우리 일행은 검문을 간단히 마치고 유니폼을 입은 잘생긴 청년의 인사를 뒤로 하고 공군미사일 시험기지를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드디어 “White Sands National Monument” visitor center 안내판을 발견한다.
발자국을 내기에도 미안할 정도로 순백의 모래사막이 듣던 대로 겹겹이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선글라스 없이는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눈부시고 삼월 말인데도 한낮에는 땀을 흘려야 할 정도로 태양빛이 뜨겁지만 하얀 석고가루는 빛을 모두 반사해 버리기 때문에 신발을 벗고 맨발에 닿는 모래의 촉감은 뜨거운 날씨에도 의외로 시원하다.
모래인지 눈(snow)인지 알 수 없는 끝이 보이지 않는 온통 하얀 풍경은 마치 결혼식장에 들어서기 전 새 신부의 쿵쿵 뛰는 가슴처럼 내 가슴을 터질 듯 뛰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사진작가라면 한번쯤 가봐야 한다는 말에 한 표를 자신 있게 더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석고 모래언덕” 이라는 이름을 갖기에 충분하다고 어느새 동의해버렸다.
끝이 안보이게 광활하고 거창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는 내가 알고 있는 단어들이 초라해질 만큼이나 어떤 수식어도 찾을 수 없음이 내 언어의 부족함을 인정하게 했다.
원래 이곳은 석고로 포화된 아주 크고 얇은 늪이었는데 이것이 바닥에 가라앉게 되고, 다른 침전물로 인하여 여러 층으로 서서히 굳혀졌다가 로키산맥이 형성 될 때 하나의 구릉이 형성되었고 그 후 1천만 년 전에 단층이 일어나 구릉의 중심부분 전체가 가라앉아 분지를 형성하게 되고 단층 내에 있던 석고가 드러나게 된다.
석고는 물에 잘 녹기 때문에 비와 눈으로 풍화작용을 받아 분지 위로 옮겨지게 되고 석고는 결정체가 되어 모래의 모습으로 형성되었다. 이 석고모래들이 바람에 날려 사막화를 이루면서 그것이 화이트 샌드 사막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 지역은 비가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석고가 녹아내리지 않고 사막의 형태를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무거운 카메라가방을 등에 메고 삼각대를 손에 들고 광활한 모래언덕 위에 선 나는 마치 방망이로 머리라도 한 대 맞은 듯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를 몰라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어려운 시험지를 받아 든 학생처럼…
카메라에 이 넓고 넓은 곳을 어떻게 해야 하나도 빠짐없이 다 넣을 수 있을까 하는 욕심 때문에 발에서 쥐가 나듯 머릿속에서도 쥐가 나고 있었다. 골프 치는 사람들이나 운동하는 사람들이 필드에 나가기 전에 늘 하는 말이 있다. 마음을 비워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우리 사진 찍는 사람들도 늘 말한다. 마음을 비워라, 욕심을 부리지 마라, 작품 속에 묻어난다 등등.
하지만 이 멋진 풍경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비울 수 있을지 상다리가 부러지게 한 상 차려 놓고 조금만 먹어라 아님 한 개만 먹어라 하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언덕은 너무 광활해서 어디부터 어떻게 찍어야 좋을지 몰라 헤매다가 처음 만난 풍경은 모래썰매를 타는 사람들이었다. 하얀 모래언덕이 마치 스키장을 연상케 하고 그 위에서 눈썰매를 타듯 그렇게 썰매를 타며 어른, 아이, 모래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뒹굴고 있었다.
제가 배운 이론은 첫째 “사진은 빛의 예술이다”, 둘째 “사진은 자르기 예술이다” 라고 배웠는데 도대체 작은 프레임 안에 이 넓고 넓은 곳을 어떻게 넣어야 할지, 어떻게 잘라야 할지 머리에서 쥐가 나도록 고민하면서 여기 저기 한 프레임씩 그렇게 열심히 찍다가 너무 힘들고 더워서 잠시 휴식을 취해본다.
때로는 꽃피는 춘삼월이라 하는 삼월인데도 한낮은 너무 더워서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석양 찍을 포인트와 일출 포인트를 차로 빙글빙글 돌면서 헌팅 해 놓고 잠시 쉬면서 발견한 장소는 Playa Trail이다.
모래 위에 나무로 길을 만들어 놓아 모래를 밟지 않고도 석고사막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식물들과 주변을 수월하게 찍을 수 있었다.
척박하고 마른 석고(하얀모래) 바닥에 뿌리를 내려 살아가는 식물들의 생존능력은 어디까지인지, 이만큼 키우기까지는 얼마나 긴 세월이 흘렀고 힘이 들었는지, 길다란 그림자를 드리우며 날카롭게 버티고 있는 모습들이 험한 세상 속에서 버티고 있는 인간들의 외로운 모습을 닮은 것 같아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뾰족뾰족하지만 그래도 초록빛을 가진 식물들을 찍으려면 하얀 모래언덕과 도대체 어떻게 화이트 밸런스를 맞추어 찍어야 좋을지 몰라 당황스러웠고 온통 하얀 모래가 반사하는 햇빛 때문에 선글라스 없이는 눈을 뜨기조차 어렵고 사진을 찍으려면 선글라스를 쓰지 않아야 색감을 제대로 볼 수 있는데 눈물은 줄줄 흐르고 참으로 난감한 코스였다. 그래도 작품을 위해서라면 선글라스가 문제이겠나.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무거운 가방을 메고 넓고 넓은 모래사장을 걷다가 촬영하고 또 걷다가 촬영하고 하다 보니 너무 지치고 힘들어 잠시 쉬면서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고 석양을 찍기로 일행은 마음을 합쳐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원 내 먹을 곳이 없어 음식을 간단히 준비를 해 가야 알라모고도(Alamogordo) 도시까지 왕복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일행은 잘 몰라서 첫번째날은 알라모고도(Alamogordo ) 도시까지 왕복했어야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다음날 새벽 일출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50달러를 내고 새벽시간 예약을 해야 한다(밤사이 안전을 위해 어두워지면 공원문을 닫기 때문이다. 새벽 일출을 보고 싶은 사람들이나 사진작가들을 위해 예약을 하면 특별히 해뜨기전에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관리사무실이 문을 일찍 닫을 것 같아 새벽 5시로 먼저 예약을 해놓고서야 마음 편히 하얀 모래사막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근처에는 먹을 곳이 마땅하지 않아 한참을 달려서 허기진 배를 간단히 채우고서 일몰(Sunset) 찍을 포인트에 도착하니까 그렇게 찌는 듯한 한낮의 더위는 간 곳이 없고 어느새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공기가 차가워졌다. 사막이라서 그런가 역시 일교차가 몹시 심하였다.
땅거미가 몰려오는 시간에는 눈처럼 하얗던 모래가 석양빛을 받아 붉게 물들여지고 있었다. 하루를 마감하는 붉은 석양빛은 알알이 모래알과 스킨십하면서 속삭이는듯했다. 오늘 하루 수고했다고… 이제 편안히 쉬라고…
빠르게 움직이며 속삭이는 석양빛은 하얀 모래를 온통 붉게 물들이면서 어느새 쏘옥 넘어가버렸다. 온종일 바빴던 내 사진 시선도 빛이 사라져 어두움 속으로 빠져 들어가므로 휴식을 얻게 되었다.
기나긴 하루 일정과 하얀 모래사막이 만들어 준 감동으로 설렜던 가슴을 잠재운 것도 잠시 어제 예약한 새벽 5시 일출 촬영을 위해서 새벽 4시에 피곤한 몸을 힘들게 깨우고 공원에는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어제 경험했기에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컵라면을 하나 뚝딱 비우고 하얀 모래사막을 향해 달린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처럼.
모래사막의 새벽은 정말 추웠다. 어제 한낮의 더위는 간 곳 없고 오리털 자켓을 입고 장갑을 껴야 할 정도로 바람이 차가웠고 추웠다. 하지만 추운 것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세팅하고 손은 바쁘게 움직이면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한다.
해뜨기 직전 여명 빛은 어제의 석양빛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눈으로 보는 모래는 하얀색이지만 프레임 속으로 보이는 색감은 블루 톤이다. 색 온도(Kalvin Temperature)가 낮아서 그렇다.
이렇듯 프레임 속을 통해 보여지는 또 다른 세상이 나에게 전해 주는 매력은 오랜 시간 내면 속 나의 감성 세계를 깨우기에 충분했다. 멋있는 왕자가 잠자는 공주에게 입 맞추는 순간 잠에서 깨어나듯이 그렇게.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동트기 전 여명에는 모래의 색감이 블루 톤으로 전해졌지만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색온도가 오르고 태양빛을 품은 하얀 모래가 오렌지 빛깔로 물들여지고 모래알 한알 한알 따스하게 감싸주는 느낌이었다.
넓은 모래사막을 작가의 시선으로 자르고 사진을 촬영하면서 프레임 속으로 통해 보이는 모래알들은 알알이 움직이는 듯 했다. 눈부신 아침햇살이 새벽바람 음률에 하얀 모래사막의 능선을 넘나들며 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뜨거운 한낮 시간에는 선글라스 없으면 눈이 부셔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열하게 눈(snow)을 뿌려 놓은 듯한 하얀색, 불타오르는 석양에는 붉은색, 손가락이 마비될 정도로 추운 새벽바람을 가르며 떠오르는 여명엔 파란색, 그리고 해가 떠오르면서 서서히 변하는 은은한 오렌지색까지 다양한 사막의 기온으로 변하는 빛의 온도를 충분히 경험하게 해준 모래사막.
뒤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옛 속담을 사진을 촬영하면서 절실하게 공감하고 대 자연과 함께한 이번 출사여행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한 시간 속에 내 자신을 발견한 것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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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젬마 (여행작가, 한국사진작가협 워싱턴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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