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밤 11시가 다 돼서 인천행 1호선에 올라탔다. 에너지음료 한병을 벌컥벌컥 마신 탓에 호기로웠다. 싸이가 이날이곳에서 밤새 펼치는 '올나잇 스탠드 2016 - 싸드레날린'을 거뜬히 지켜볼 수 있을 듯했다. 어느덧 불혹이 된 싸이도 거칠 것 없는 에너지를 자랑하는데, 공연 꽤나 보러 다닌 30대 중반이 질 수 없지 않은가. 싸이는 공연 중반 말했다. "지치면 지고 미치면 이긴다." 난 이날 여러 번 졌다.
이날 어디선가 공연을 지켜봤을 '필리핀 복싱 영웅' 매니파퀴아오는 '과연 버텼을까'라는 생각만 여러번이었다.
#24일 00:17 = 가로 30mX세로 10m 무대를 장식한 세 개의 대형 스크린에서 영상이 흘러나왔다. 싸이가 고척 스카이돔 바깥에서 댄서들과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연상케 하는 대열로 계단을 올라왔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2만5000명의 함성이 쏟아졌다. 거대한 문이 열리고 불꽃이 터지는 동시에 싸이가 '챔피언'을 부르며 등장했다.
#01:00 = 2001년 당시 엽' 기토끼'와 함께 엽기 신드롬을 이끈 새' '가 나올 때부터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잠이 쏟아졌다. 97년생이라는 객석의 청년은 얼굴에 웃음이 아직 한가득이었다. 싸이의똑 빼닮은 10m 높이의 인형이 잠을 다행히 쫓아낸다. 박지윤의 성' 인식'을 시작으로 싸이 공연의 전매특허인 '여장 메들리' 때 깜짝 놀라 제 정신을 차렸다.
#02:09 = 싸이가 대뜸 "신곡을 발표하려다 늦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한 좋은 기사든 나쁜기사든 "이 XX 이럴 줄 알았어"라는 댓글이 붙는다고 눙쳤다. "가끔은 대처를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말 같지도 않아 '아닌 줄 아시겠지'라는 이야기도 있다"며 "어지러운 시절, 힘든 시절에 다같이 정말고생 많았다"며 전인권의 걱' 정 말아요 그대'를 다 같이 합창했다. 이후 실제 전인권이 등장했고, 그는 "싸이는 정말 좋은 친구"라고 말했다.
#02:44 = 본 공연이 끝나고 앙코르가 시작됐다. 곧 끝나겠지라는 생각을 하려던 찰나 싸이는 "무대는죽어도 여한이 없는 장소"라며 "여러분이 끝내고 싶어도 제가 끝내지 않는다"고 별렀다. 그러면서 "너는누구(아라리요)! 우리가 누구 (아라리요)!"라고 흥을 돋우는 응원가 '위 아 더 원'을 부르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이었다. 이어진 글로벌 히트곡 '강남스타일' 때 2만5000명이 동시에 말춤을 추는 장면은 다시봐도 장관이었다. 싸이는 객석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03:00 = 정규 공연이 마침내 끝났다. 그런데 '뒤풀이'가 있단다. '클럽 땀과 음악 사이'라는 부제를 내건 댄스곡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서태지와아이들 '하여가'를 시작으로 박진영의 '날떠나지마', DJ DOC의'런 투 유', 김건모의 잘' 못된 만남' 등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 획을 그른 댄스곡들이 잇따라 펼쳐졌다. 강'남스타일' 이후 부담이 따랐다며 올해 고생한 자신과 팬들 스스로에게 들려주자며 봄여름가을겨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이어 불렀다.
#03:28 = 공연이 정리되는가 싶더니 이제 록 메들리가 이어졌다. 이문세의 붉' 은 노을'을 시작으로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 크라잉넛의 '말달리자' 등 장르 구별 없이 강렬한 록의 사운드를 입은 유행가들의러시가 이어졌다. 밤' 을 하얗게 지새웠다'는 말이 실감났다. 무대를 종횡무진 하는 싸이의 기에 관객들은 눌리지 않았다. 윤수일의 아' 파트'가 울려퍼질 때 으" ?X라 으?X"라는 취임새의 화력은 어느 프로 스포츠 응원보다 강력했다.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를 부르면서 "신해철을 사랑하는 사람들 소리 질러"라고싸이가 외칠 때 몸 어디에 아직도 그런 기운이 남아 있는지 난간 앞에 매달려 울부짖고 있었다.
#04:04 = 모든 스태프가 스' 탠바이'가 됐다는 신호가 나오고 공연장을 빠져 나가던 관객들이 다시 무대 앞으로 몰렸다. 객석에는 아직까지 1만5000여명이 남아 있었다. 라' 이트 나우' 연' 예인'이 다시 울려퍼지는데 20대들은 마치 지금 공연이 시작된 것마냥 방방 뛰었다. 예전 밤샘 공연에 끝까지 남아 있는팬들을 위해 다시 놀기 시작했다고 회상한 싸이는 "이게 진국이야"라며 "무슨 노래를 듣고 싶냐"고 물었다. '막판'이라는 부제로 예정됐던 셋리스트는 유야무야됐다. 이날 밴드가 준비하지 않았던 환' 희' 요청에 "살짝 애매한데"라면서도 "말짱 꽝 빛바랜지 오래야~"라고 노래하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05:00 = 신기하게 정신이 멀쩡했다. 구일 역에서 동두천 방향 05:35 첫차를 기다렸다. 그제야 졸음이쏟아졌다. 몸에는 피로가 엄습했는데 스트레스는 멀찌감치 물러났다. 불혹의 싸이는 공연을 통해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을 없게 만드는 경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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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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