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미군주둔비 확충·日핵무장론’ 부담…북핵대응 공조 강조할 듯
▶ 러일 경제협력·TPP 입장차·주일미군기지 조기이전 등 과제 산적
트럼프 (뉴욕 AP=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9일 미국 대선 개표 결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미일동맹의 틀을 유지하면서 관계를 강화할 방안을 마련하는데 초비상이 걸린 분위기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내심 클린턴 후보의 당선을 기대했다. 그런 만큼 내부적으로는 상당히 당혹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정권의 연장선에 있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달리 트럼프는 일본의 핵무장 용인론, 일본측의 주일미군 주둔비 부담 확충 등 과격한 주장을 해 온 만큼 대미 외교를 원점에서 재구축하는 것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 잇따른 동맹훼손 발언에 '견고한 미일동맹' 구축 시도
일본 정부는 우선 트럼프가 선거 과정에서 일본측의 주일미군 주둔비 부담 확충을 여러 차례 언급한 점을 주목하고 있다.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등 잇단 북한의 도발과 관련해 트럼프가 일본의 핵무장론을 언급한 것도 '선거용 돌출발언'으로 넘겨버리기에는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그동안은 굳건한 미일동맹에 기반한 미국의 억지력을 통해 대북 견제가 가능했지만, 이런 관계의 기본이 되는 주일미군 주둔비 문제 등을 직접적으로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이런 발언들이 현실화된다면 양국의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장기간 유지돼 온 동맹관계에 흠집이 생기면서 마찰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트럼프는 지난달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미국은 일본에 터무니없는 돈을 빼앗기고 있지만, 우리는 일본을 방위할 재정적 여유는 없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일본이 주일미군 주둔비 부담액을 늘리지 않으면 주일미군을 철수시킬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도 했다.
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 들어 극대화된 미일동맹에 찬물을 끼얹는 내용이다.
아베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보관련법을 강행처리하면서 자위대의 미군 지원 역할 확대 및 공동훈련, 방위장비 협력 등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만큼 트럼프의 향후 대일 외교의 향배에 따라서는 그동안 이어져 온 양국간 찰떡공조에 흠집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버락 오바마 정권에서 견지돼 온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전략을 트럼프가 유지할 지 아니면 이를 대체할 새로운 정책을 들고 나올지도 불명확한 것도 양국 관계의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요인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미일 동맹이 일본 외교의 기축(基軸)"(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 만큼 아베 총리를 비롯한 고위 관료들이 직접 나서서 트럼프와의 관계 구축에 공을 들일 방침이다.
실제 아베 총리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이후 가능한 한 조속히 미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위해 아베 총리는 가와이 가쓰유키(河井克行) 총리보좌관에 대해 다음주 미국을 방문하도록 지시했다.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아베 총리는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등 도발 행위를 반복하는 북한, 그리고 동·남중국해 진출을 강화하는 중국에 대해 미일동맹을 토대로 연대해 대응하자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아시아·태평양과 세계의 평화 그리고 번영을 위해 미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간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외무성 한 간부도 "동아시아의 냉엄한 안전보장 환경에 입각해 조기에 동맹 강화를 도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트럼프의 외교·안보 자문역인 마이클 플린 전 국방정보국(DNI) 국장이 지난달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트럼프가 당선돼도 미일관계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에 의미를 두는 분위기다.
그는 당시 일본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선거를 이기기 위해서는 자극적이고 강한 발언이 필요하다"고도 말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선거 과정에서는 득표를 위해 강경·돌출 발언을 이어갔지만 대선 승리로 집권하게 되면 각종 정책, 특히 외교정책의 경우 신중하게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 [AP=연합뉴스 자료사진]
◇ 러일경제협력·TPP·미군기지 이전 등 갈등요인 산적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미일동맹 공고화 유지라는 최대 과제 이외에도 러일 경제협력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문제 등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우선 일본 정부는 미국측이 탐탁지 않게 여기는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에 대해서는 "경제와 대러 제재를 투트랙으로 진행한다"는 논리로 트럼프측의 양해를 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를 둘러싼 미일간 갈등은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에 따른 대응을 두고 발생했다. 당시 미국은 러시아를 강하게 비판하며 경제제재에 나섰고 유럽 각국은 물론 일본에도 동참을 요구해 왔다.
이런 상황에 아베 정권이 러일간 영유권 분쟁이 있는 쿠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 협상을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대대적인 경제협력 추진 방침을 밝히면서 미국측의 시선이 따가웠다.
실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베 총리가 지난 5월 러시아 소치를 방문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기 전에 "지금은 그런 타이밍이 아니다"라며 자제를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는 트럼프 측에 "영토문제 해결이 시급한 만큼 러시아와의 대화 및 경제협력은 불가피하다"면서도 "대러 제재에는 미국과 공동 보조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오키나와(沖繩) 후텐마(普天間) 기지 이전 문제도 트럼프 정권과 해결해야 할 과제다.
오키나와현 기노완(宜野彎)시 중심부에 있는 후텐마기지에 대해 양국은 1996년 이전에 합의했지만 어디로 이전할 것인지를 둘러싼 일본 내 이견 등으로 아직도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다.
미국측은 "일본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이전 지역을 둘러싼 일본 정부와 오키나와현 등과의 갈등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후텐마기지 이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현지 주민의 반미 감정이 높아지며 그렇지않아도 트럼프 당선으로 불확실해진 미일동맹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아베 정권으로서도 계속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악수하는 아베(왼쪽)와 푸틴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경제 부문에서는 TPP를 둘러싼 입장차가 대표적이다. TPP는 현 오바마 정권의 아시아 우선 정책의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과격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내걸며 TPP를 비판해 왔고, 취임하게 되면 TPP 이탈을 선언하겠다는 점을 공언해 왔다.
아베 총리가 경제성장의 동력의 하나로서 TPP를 내걸며 의회 처리에 공을 들이는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일본은 TPP에 대해 다자간 자유무역체제라는 의미 이외에 중국을 겨냥한 미국 주도의 안전보장체제 구축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를 두고 있다.
그런 만큼 미국이 TPP에서 이탈하면 아시아와 세계에서 미국의 존재감이 그만큼 약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의 동맹을 최고 외교 가치로 삼는 일본의 영향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트럼프는 또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 일본, 중국, 멕시코 등을 적대시하며 이들 나라로부터 수입하는 물품들에 대한 관세도 올리겠다는 방침도 밝힌 바 있다.
이런 정책이 현실화되면 글로벌 무역 위축 및 금융시장 혼란을 불러, 세계 경제의 침체가 한층 가속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우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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