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단체 “쓰레기 반대”에 식품업계 변화, 미국 생산량의 40% 연 1억6천만달러 버려 물·비료·에너지 등 낭비규모 어마어마
▶ 조그만 사과·휜 오이·상처 있는 오렌지… 소비자에 싼 가격 판매… 농부들도 환영
포르투갈의 ‘프루타 페이아’에서 샤핑하는 모녀. 이곳은 못생긴 농작물을 판매하는 협동조합이다. <사진 Patricia De Melo Moreira>
찌그러진 감자, 휘어진 오이, 부러진 당근...
단지 못 생겼다는 이유로 마켓 진열대에 오르지 못하는 채소들이다. 맛은 똑같이 좋은데 선진국 수퍼마켓의 미관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식품이 매년 수백만 톤에 달한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의 쓰레기 반대 압력에 공감한 식품업계가 최근 변하고 있다. 수십년 동안 보기 좋은 야채들만을 진열대에 가지런하게 쌓아놓던 많은 식품상들은 가능하면 적게 버리는 방법을 모색하는 한편 못 생긴 채소들도 팔기 시작한 것이다.
피츠버그나 파리 같은 도시의 상점들은 외관상 완벽하지 않은 야채 과일들도 가게에 내놓기 시작했다. 적은 비용으로 장을 보고 싶은 소비자들은 크기가 작은 사과, 상처 있는 오렌지를 아주 싼 가격에 살 수 있다.
식탁에 오르지도 못하는 농작물을 기르기 위해 사용되는 물, 비료, 에너지, 기타 자원들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쓰레기 반대 연맹인 자연자원방어회(ReFED)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전체의 40%에 달하는 1억6,200만달러 어치의 식품이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지 않고 버려진다. 이렇게 먹지 않을 음식을 생산하고 공정과정을 거치고 운송하느라 사용되는 물의 양이 미국에서 전체의 4분의 1이나 되고 오일 소비의 4%를 차지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쓰레기 반대 운동과 더불어 폐기될 식품도 팔 수 있게 된 것은 농부들에게는 새로운 수익을 가져다주고, 소비자들에게는 맛과 영양을 전혀 손해보지 않고도 가계비를 절약하게 해준다.
“농부들에게 기껏 키운 작물이 버려지는 일처럼 속상한 일은 없다”고 요크셔에서 당근과 무를 재배하는 기 포스킷은 말했다. 소비자들은 쓰레기를 싫어하고, 농부들은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으니 못생긴 식품을 파는 것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미관상 기준에 못 미치는 과일 야채들을 보면 보통의 상품들과 거의 차이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껍질 한쪽이 튀어나온 오렌지나 크기가 조금 작은 감자가 어떻다는 것인가.
샌프란시스코의 자연자원방어회 관계자인 데이나 건더스는 매주 20만 파운드(9만 킬로)의 복숭아와 자두를 버려야하는 농부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버리는 것들 10개 중에서 8개는 도대체 뭐가 잘못됐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멀쩡하다”는 말이 그것이다.
부유한 나라일수록 소매업자들은 미적 기준에 민감한 태도를 보이고, 소비자들은 늘 마켓 진열대에 획일적으로 예쁘고 가지런하게 쌓여있는 사과와 배들 사이에서 과일을 고른다.
이런 나라들은 농작물 산업 처리과정과 식품이 농장에서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장거리 운송 과정에서도 엄청난 쓰레기가 발생한다. 소매업자들이 상품에 등급을 매기기 때문에 농부들은 혹시라도 출하 농작물이 거부당할까봐 굉장한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모양이 똑바른 오이들을 박스에 넣을 때 구부러진 오이는 못 집어넣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데이나 건더스는 말했다. 그는 ‘쓰레기 없는 부엌 핸드북’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이같은 판매유통 과정에 최근 1~2년 사이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프랑스의 수퍼마켓 체인인 앵테르마르셰(Intermarche)는 2014년부터 ‘명예롭지 않은’(inglorious) 과일과 야채를 30% 싼 가격에 팔기로 한 정보를 식품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과 함께 소셜미디어에 내보냈다. 처음에 시험적으로 작게 시작한 이 캠페인은 큰 성공을 거두어 지금은 프랑스에 있는 모든 앵테르마르셰가 못생긴 농작물을 판매하고 있다.
영국의 고급 수퍼마켓인 웨이트로즈(Waitrose)는 ‘조금 덜 완벽한’(a little less than perfect)이란 이름을 붙여서 모양이 좀 빠지는 당근, 무, 감자, 양파, 토마토, 딸기, 사과, 배, 콩 등을 팔고 있다.
월마트가 소유한 영국의 그로서리 체인 아스다(Asda)는 지난 2월부터 ‘삐딱한 야채’(wonky veg) 박스를 5킬로그램 당 3.50파운드(4.65달러)에 팔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히트를 했는지 바로 다음 주부터 4배나 되는 350개 스토어로 확장한다고 발표했다. 아스다는 이 야채박스들이 수백톤의 쓰레기를 살려낸다고 말했다.
피츠버그의 자이언트 이글 역시 이런 일들에 영감을 받아 지난 2월부터 5개 스토어에서 ‘개성있는 식품’(produce with personality)을 20% 할인 가격에 팔기 시작했는데 고객들의 반응이 굉장히 긍정적이어서 동참 업소의 수를 21개로 늘였다고 댄 도노반 대변인은 말했다.
북가주 오클랜드의 해나 허즈밴드는 ‘임퍼펙트 프로듀스’라는 회사로부터 매주 야채 배달을 받아본 후 주변 사람들에게 이 박스 배달을 추천하고 있다. “건강식으로 바꾸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인식이 퍼져있는데 할인 가격으로 할 수 있으니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문 앞에 배달된 것들을 살펴보면 보통보다 조금 크거나 작은 것들이 대부분이고, 아주 가끔 정말 이상하게 생긴 채소가 들어있을 때도 있다고 그녀는 전했다. 신기한 모양의 야채를 만날 때면 사진으로 찍고, 그 야채를 요리한 모양도 찍어서 온라인에 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음식 쓰레기와의 싸움은 최근 글로벌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환경적인 이슈가 되었다. 농작물 생산에 쓰이는 자원들 외에도 버려지는 음식이 매립지에서 썩으면서 만들어내는 메탄가스가 강력한 온실 개스 효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매년 6,600만 톤의 음식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미국은(연방 농무부 자료) 2030년까지 그 양을 절반으로 줄일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도 비슷한 목표를 세우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주변의 9,500여 가정에 못생긴 야채 과일을 배달하는 ‘임퍼펙트 프로듀스’의 대표 벤 시몬은 가주의 농업지대인 센트럴 밸리의 농장을 방문했을 때 그 버려지는 규모를 보고 너무 놀란 이야기를 이렇게 전한다.
“농장의 거대한 시설을 돌아보면서 수많은 기계들이 아무 흠없는 키위와 오렌지들을 계속 버리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밭에 나가보니 셀러리의 50%가 수확되지 않은 채 버려져 있더군요. 그걸 보면서 도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임퍼펙트 프로듀스’의 구매자인 해나 허즈밴드는 소비자들이 오히려 소매업자들보다 더 오픈 마인드를 가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든 것이 똑같은 모양인 것에 익숙해져있지만 그로서리 상점들이 보다 다양한 상품을 진열하고 판매한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그녀는 단언했다.
한편 모양이 이상하다고 해서 식품을 버리는 일은 꿈도 못 꾸는 후진국에서는 대부분의 음식 쓰레기가 사회 기반시설의 부족으로 인해 생겨난다. 즉 냉장보관 시설이 부족하거나 농작물을 시장까지 운송하는 도로가 형편없기 때문이다.
모양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지 않고 버려지는 식품이 미국에서만 전체의 40%에 달한다. <사진 Jim Wi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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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The New York Time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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