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루체른 페스티벌, 11명 초청 특별한 음악제
▶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 중에는 마린 알솝 유일
미르가 그라친테 틸라가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지휘하고 있다. <사진 cbso.co.uk>
스위스의 루체른 페스티벌(Lucerne Festival)은 매년 여름 전세계 음악인들이 몰려드는 축제로 유명하다. 그런데 올여름 페스티벌 분위기는 여느 해와 많이 달랐다. 클래식음악계에서 극소수인 여성 지휘자 11명을 초청, ‘프리마돈나’라는 주제로 다양한 레퍼토리와 특유의 방식으로 지휘하는 음악제를 마련한 것이다. 이들이 지도한 매스터클래스도 열렸는데 한 클래스에서 섬세하게 바톤을 흔드는 한 여성에게 마린 알솝(Marin Alsop)은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그건 좀 계집애 같은 동작이에요. 남자 지휘자가 그렇게 하면 예민한 제스처로 보지만 우리가 그렇게 할 때는 너무 여성적이라고 받아들이죠. 모든 동작은 어떤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일이 신경써야합니다”
2007년 볼티모어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함으로써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내 주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 마린 알솝(59)은 이번 루체른 음악제에서 오랫동안 남성들만의 영역이었던 마에스트로 포디엄의 현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아 많은 공감을 얻었다.
현대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날로 향상되어 재계에서나 정계에서 수장인 여성의 이름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국의 테레사 메이 수상,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또 11월 미국대선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등. 뿐만 아니라 펜타곤에 의하면 37명의 미군 4성 장군 중에서 3명이 여성으로 이는 전체의 8.1%에 해당하는 숫자다.
그런데 유독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중에서는 여성의 이름을 찾기란 굉장히 어렵다. 지금까지 미국의 20여개 주요 오케스트라 중에서 여자 음악감독은 마린 알솝이 유일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드디어 유리천정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핀란드 출신의 수잔나 말키(Susanna Malkki, 47)가 이달부터 핀란드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헬싱키 필하모닉의 수석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말키는 또 오는 12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지휘하는 네 번째 여성이 될 예정이고, 2017-18시즌부터 3년간 LA 필하모닉의 수석 객원지휘자로 활동할 예정이다.
최근 지휘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리투아니아 출신의 미르가 그라친테 틸라(Mirga Grazinyte-Tyla, 30)는 지난 달 영국의 버밍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했다. 이 오케스트라는 스타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안드리스 넬슨스를 키워낸 교향악단이다. 그라친테 틸라는 2012-13 시즌에 LA 필의 두다멜 지휘 펠로우로 시작해 2014년 보조지휘자(Assistant Conductor)가 됐고, 이번 시즌부터 부지휘자(Associate Conductor)로 승격되는 등 빠른 속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올여름 루체른 페스티벌에 초청된 여성지휘자 중 4명과 함께 그들의 음악과 커리어에 관해 대담을 나눴다. 미르가 그라친테 틸라, 수잔나 말키, 마린 알솝, 그리고 바바라 해니건(Barbara Hannigan)이 그들이다. 해니건은 캐나다의 소프라노이면서 지휘를 병행하는 스타 아티스트로 주목받고 있다. 다음은 대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 최초의 여성 지휘자 마린 알솝. <사진 bsomusic.org>
▲마린 알솝: 내가 아홉 살 때 아버지는 나를 레너드 번스타인의 ‘젊은이를 위한 콘서트’에 데려갔다. 그때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그게 너무 하고 싶었다. 그러나 바이올린 선생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너는 아직 너무 어려. 그리고 여자는 그런걸 하는게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부모님은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지.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할 수 있단다”라고 나를 격려해주셨다.
캐나다의 소프라노 겸 지휘자 바바라 해니건. <사진 Heikki Tuuli>
▲바바라 해니건: 나는 어렸을 때 여자가 오케스트라 지휘하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 커리어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고, 여자는 오케스트라 지휘를 못 하는 건줄 알았다.
핀란드 지휘자 수잔나 말키. <사진 Hiroyuki Ito>
▲수잔나 말키: 20년전 지휘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원, 세상에!” 하면서 마치 내가 불치병에라도 걸린 듯한 태도를 보였다.
▲미르가 그라친테-틸라: 부다페스트에서 젊은 지휘자들을 위한 대회에 나간 적이 있는데 시상식이 끝난 후 헝가리 여성인 심사위원장이 내게 오더니 “남자 지휘자 흉내 내지 말라”고 하는게 아닌가. 누굴 흉내 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때 무척 놀랐었다.
여자 지휘자들이 맞닥뜨리는 성차별은 놀라울 정도다. 러시아의 마에스트로 바실리 페트렌코는 “포디엄에 올라선 귀여운 여자의 모습은 사람들이 딴 생각을 하도록 유도한다”고 말했고, 말키와 해니건, 성시연을 가르친 요르마 파눌라조차 2014년 TV 인터뷰에서 “여자 지휘자들은 드뷔시 같은 ‘여성적인’ 레퍼토리만 연주하는게 좋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해니건: 다음날 아침 그에게 전화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이제껏 여자가 대곡을 연주하는 걸 본 일이 없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나는 화가 나지조차 않았다. 왜냐하면 너무 말도 안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단지 음악가로서 나의 이야기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말키: 불쌍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는 사실이다. 25년전이었다면 아무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마린 알솝의 볼티모어 오케스트라 전임자였던 유리 테미르카노프는 지난해 볼티모어 선 지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지휘자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피력했다.
“여자가 지휘하는 걸 반대하지 않는다. 그냥 싫을 뿐이다. 여자들은 권투도 하고 역도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지 나는 그런걸 보고 싶지 않다. 내 취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수십년에 걸친 선구적 여성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포디엄에서의 성적 불균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안토니아 브리코(Antonia Brico)는 1930년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했고, 1938년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한 첫 번째 여성이었다.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r)는 1962년 카네기홀에서 뉴욕 필하모닉의 정규 콘서트를 지휘한 첫 여성이었고, 새라 콜드웰(Sarah Caldwell)은 1976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지휘한 첫 번째 여성이었다.
반세기 전만 해도 오케스트라에서 여성단원을 보는 일은 희귀했으나 2013-14 시즌에 오케스트라 연주자의 47.4%는 여성이라고 미국 오케스트라 리그는 밝혔다.
알솝은 2002년 타키 콩코디아 지휘 펠로십(Taki Concordia Conducting Fellowship)을 창설했다. 지휘 커리어를 시작하는 젊은 여성들을 위한 멘토 그룹이다. 또한 2008년에는 볼티모어에 오키즈(OrchKids)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볼티모어의 빈민 지역 어린이 1,000여명에게 먹을 것과 함께 음악 레슨과 악기를 공급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어느 날 오키즈의 음악회에서 알솝은 한 소년과 소녀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들었다.
“헤이, 나도 지휘자가 될 수 있을 거 같애”(소년)
“야, 남자애들은 그런거 못해”(소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