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좀비가 되겠어…'서울역'(★★★☆)
'서울역'은 '부산행'이 탄생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부산행'이 당위의 영화라면, '서울역'은 풍경의 영화"라는 연상호 감독의 말처럼 '부산행'이 보여준 작은 희망은 '서울역'이 묘사하는 최악의 절망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이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지옥이 된 세계보다 낫지 않다니, 좀비를 피해 아무리 도망쳐 봤자다. 서사(story)보다는 인상(image)으로 영화를 완성한 연상호 감독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이런 재난영화를 기다렸다…'터널'(감독 김성훈)(★★★★)
단순히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터널'은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은 재난영화다. 이 영화는 십여 년간 한국 재난영화가 벗어나지 못했던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한 단계 도약한다. 시종일관 유머러스하지만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을 잊지 않으며 동시에 따뜻하고 사려 깊다. 하정우를 비롯한 주연 배우들의 호연도 영화에 깊이를 더한다. 김성훈 감독은 '끝까지 간다'보다 더 뛰어난 작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우려가 현실이 됐다…'국가대표2'(감독 김종현)(★★)
'국가대표2'는 스포츠 영화의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과장된 연출도 문제다. 억지스러운 코미디, 포장된 감동에 어느 관객이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종반부에 펼쳐지는 주인공의 '신파 시퀀스'는 특히 실망스럽다. 다만 아이스하키 경기 장면의 박진감을 카메라에 담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그래도 매끈한 블록버스터…'스타트렉 비욘드'(★★★☆)
'스타트렉 비욘드'는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 '스타트렉 다크니스'(2013)에서 이어지는 '스타트렉' 리부트 시리즈 세 번째 편이다. '스타트렉 비욘드'는 전작들과 비교해 북미 현지에서 가장 적은 수입을 올렸다. 이유는 저스틴 린 감독이 스타트렉의 전통을 깨부쉈다는 것. 이 시리즈의 상징인 엔터프라이즈호를 박살 내다니 말이다. 이 시리즈의 오래된 팬들은 분노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건 그들의 이야기다. '스타트렉 비욘드'는 여름철과 잘 어울리는 SF 블록버스터다. 볼거리가 매 순간 이어지고, 유머 또한 훌륭하다. 린 감독은 인류애까지 이야기하지만, 그냥 오락영화로 즐기면 그만이다.
◇겉만 번지르르…'수어사이드 스쿼드'(감독 데이비드 에이어)(★★☆)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고 마고 로비의 '할리퀸'과 자레드 레토의 '조커'에 열광했던 사람이라면 머쓱해질 만하다. 강렬한 캐릭터 플레이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것으로 예상했던 이 영화는, '이미지 플레이'로 일관하다가 자멸하고 만다. 영화는 코스프레가 아니지 않은가. '인상'(image)이 아닌 '성격'(character)이 있어야 하고, 에피소드가 아니라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만 해서는, DC는 마블을 절대 이길 수 없다.
◇허진호에 대한 아쉬움…'덕혜옹주'(감독 허진호)(★★★☆)
'덕혜옹주'는 말끔하게 만들어졌다. 군더더기도 과장도 없는 연출이 안정감을 주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신뢰감을 준다. 그래서 관객은 극 초반부터 덕혜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눈물 흘리고 만다. 하지만 이건 허진호의 영화가 아닌가. '나의 조국'이라는 감정을 넘어선 뭔가를 이 영화에 원했던 건 허진호라면 그것을 해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혜의 '나라 사랑'은 절절하지만 곱씹게 되지 않는다. 이건 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라기보다는 허진호에 대한 아쉬움이다.
◇욕망과 충동과 본능, 그게 인간…'비거 스플래쉬'(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천박하고 상스러운 게 인간이다. 그래서 사랑하고, 그래도 사랑한다. 그게 인간이다. 화려한 연출 속에 진득하게 인간을 파고드는 루카 구아디나노 감독의 화법은 여전하다. 하지만 전작인 '아이 엠 러브'만큼 인간과 세계에 대한 적중률 높은 탐구가 이뤄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말이 많아진 고레에다…'태풍이 지나가고'(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태풍이 지나가고'는 고레에다 감독이 내놓았던 몇몇 걸작에는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다. 오히려 다소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가족영화를 만들지만, 철저하게 현실적이어서 때로는 섬뜩하게 느껴졌던 고레에다 감독도 나이를 먹는 건지 자꾸만 따뜻해지고 포근해진다. 그리고 메시지를 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편하게 웃으면서 즐길 수 있고, 나와 내 가족을 돌아볼 수 기회도 준다. 고레에다 감독 영화 중 가장 웃긴 영화이기도 하다.
◇요리사 전에 혁신가…'노마:뉴 노르딕 퀴진의 비밀'(★★★)
이 영화는 요리사와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것들에는 큰 관심이 없다. 볼거리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기록하려는 건 식당 노마'의 요리사 르네 레드제피의 혁신이고, 혁신을 향해 정진하는 레드제피의 태도다. 쿡방이나 먹방을 기대했다면 실망한다. 하지만 지독한 프로페셔널의 이야기가 보고 싶다면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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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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