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터족의 외양간은 집에서 멀리 떨어져 미생물 접촉 적은 탓
▶ 아미쉬 아동·임신부도 자가면역 저항성 높아
아미쉬 공동체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 ‘목격자’의 한 장면.
후터족 여인들이 함께 모여 일하고 있다. <사진 wikipedia.org>
지난 몇십년 사이 미국에서 천식과 앨러지가 2~3배 증가했다. 요즘엔 어린이 12명 중 한명이 천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앨러지를 가진 아이는 그보다 많다. ‘결핍의 유행병: 앨러지와 자가면역 질환의 새로운 이해’(An Epidemic of Absence: A New Way of Understanding Allergies and Autoimmune Disease)라는 책을 쓴 저자 모이즈 벨라스케즈-매노프(Moises Velasquez-Manoff)는 이런 현상에 관해 뉴욕타임스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앨러지와 천식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는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됐다고들 한다. 그러나 재채기 증세가 전 인구로 확산된 첫 번째 신호는 19세기 후반 미국과 영국의 상류층 사이에서 먼저 나타났다. 당시엔 건초열(꽃가루 앨러지)을 가진 것이 계급의 상징이기도 했고, 문명과 세련됨의 표식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한편 현대 학계에서 일부 관찰자들은 농부들은 꽃가루와 동물의 비듬과 접촉이 잦은데도 재채기와 쌕쌕거림이 가장 적은 집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 스위스에서 다시 대두됐는데 소규모 농장에서 자란 아이들은 같은 교외지역에서도 농장이 아닌 곳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건초열과 천식에 시달릴 확률이 1/2에서 1/3 정도 적었다.
유럽의 과학자들은 가축, 특별히 우유를 생산하는 소와 발효 사료, 미살균 생우유 등이 ‘농장 효과’라 불리는 보호 작용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외양간에 넘쳐나는 미생물(세균)이 어린 아이들의 면역체계를 자극시켜 앨러지를 예방시켜주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수년 전 학자들은 바로 이 현상의 미국 버전을 발견했다. 바로 아미쉬들이다. 인디애너 주의 아미쉬 공동체에서 자란 아이들은 유럽의 농부들보다도 앨러지를 가진 확률이 훨씬 낮았다. 선진 국가 중에서 가장 앨러지가 적은 그룹으로 판명된 것이다.
지난달 말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연구진은 또 새로운 중요한 사실을 발견해냈다. 아미쉬 공동체와 비교 대상이 될만한 적절한 그룹으로 미국내 또 다른 농장 커뮤니티인 후터족(Hutterites)을 찾아낸 것이다. 이 두 그룹은 유전적으로 같은 선조를 갖고 있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계열의 후손들이다. 그러나 미국 중서부에 사는 후터족은 아미쉬와 달리 보통 미국인들과 똑같이 앨러지에 취약하다.
왜 후터족에게는 농장효과가 없는 것일까? 가장 그럴듯한 이유로 아미쉬는 외양간이 집 바로 옆에 붙어있는 작은 농장에서 생활하는 반면 공동체 생활을 하는 후터족은 가축들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이다. 당연히 아미쉬들이 집에 더 많은 세균을 들여오게 되고 직접 퍼뜨리기도 하기 때문에 후터족의 집에서 발견되는 것보다 거의 6배나 많은 미생물과 접하며 살고 있음을 학자들은 발견했다.
게다가 후터 공동체에서는 주로 성인 남자들만이 소를 치는데 비해 아미쉬들은 어린아이들이 외양간에서 뛰어놀고 여자들은 임신부들조차 외양간 미생물과 접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도 임신 중 이런 미생물에 노출된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이 가장 앨러지가 적은 것으로 판명됐다. 세균의 자극을 받은 엄마의 면역체계가 태아에게 앨러지에 대한 저항성을 사전 프로그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연구에 참여한 아미쉬 아이들의 5%가 천식을 가진 데 비해 후터족 아이들은 21%가 천식을 갖고 있었다. 또한 유전적으로 비슷한 이 두 공동체의 면역 시스템 역시 굉장히 큰 차이를 보였다.
후터족 아이들은 앨러지와 관련된 호중성백혈구(repel)를 많이 갖고 있는데 비해 아미쉬 아이들은 세균을 퇴치하는 산호성백혈구(neutrophils)를 훨씬 많이 갖고 있다.
더 중요한 차이는 아미쉬 아이들의 백혈구가 후터족 아이들의 백혈구와는 다른 유전자 발현을 나타내고 있어서 공격성보다는 자제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꽃가루와 비듬에 과잉반응하지 않는 형질이야말로 천식과 앨러지를 피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학자들은 또한 쥐를 이용한 면역체계 실험도 했다. 아미쉬와 후터족 가정에서 가져온 세균이 가득한 먼지에 쥐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한달 넘게 그 두 종류의 먼지를 코로 들이마신 쥐들은 굉장히 다른 결과를 보여줬는데 아미쉬 먼지는 천식을 예방해준 데 반해 후터족 먼지는 천식을 장려한다는 것이었다.
크게 말해서 면역 시스템은 두 종류로 나뉜다. 적응성 면역체계는 학습하고 기억한다. 그러나 선천적 면역체계는 감각기관처럼 세균에 대해 오래된 패턴을 인식한다. 연구원들이 쥐의 선천적 면역체계에 유전자 교란을 시켰더니 아미쉬 먼지는 그 예방 효과를 잃었고 쥐들은 숨쉬기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그 의미는 선천적 면역체계에 대한 자극이 천식을 방지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는 결점도 있다. 대상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양쪽 커뮤니티에서 30명씩의 어린이가 연구 대상이었다. 학자들은 어떤 특정 미생물이 중요한지를 밝혀내지도 못했다. 또 그 미생물들이 내장에 기생하는지 인체의 다른 곳에 자리잡는 지도 알지 못한다.
뉴욕 대학의 인간미생물군집 프로그램의 디렉터인 마틴 블레이저는 이 과학자들이 항생제 사용 여부와 제왕절개 분만의 비율도 연구에 포함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 두가지 모두 내장의 미생물군집 효과를 방해해 천식 발병률을 바꿀 수 있는 요소다.
그러나 쥐를 통한 성실한 실험은 농장효과의 중요한 요소를 알아내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세균이 선천적 면역체계를 자극한다는 단순한 매커니즘은 매우 인상적인 것이다. 이 연구의 수석 저자인 애리조나 대학 연구원 도나타 베르첼리는 “바로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 흥분하고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상황을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은 예방 의학에서 중요한 진일보인 것이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유전자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질병은 유전자와 환경 사이에서 왔다갔다 춤추며 출몰한다.
천식이 유행하는 것도 어쩌면 부분적으로는 런던 대학의 면역학자 그래함 루크가 우리의 ‘오랜 친구’라고 불렀던 오가니즘의 쇠퇴에서 기인하는 지도 모른다. 그 오가니즘이란 우리의 면역체계가 환경에 당연히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미생물 유기체를 말하는 것이다. 19세기에 처음 재채기를 해댔던 상류 계급 사람들은 아마도 이 오랜 친구들이 사라진 환경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지금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그 오가니즘을 잃어버렸다. 당면한 과제는 그것을 어떻게 되찾느냐 하는 것이다. 아미쉬 외양간에서 그 한가지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뉴욕타임스 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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