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날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운전을 하고 가던 중에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에서는 진행자가 아버지날에 대한 유래를 소개하고 있었다.
어머니날이 처음 시작된 웨스트버지니아 주에서 어머니날을 공식적으로 기념한 2년 후인 1910년 워싱턴 주 스포켄의 한 교회에서 어머니날 설교를 듣던 존 B. 다드(John B. Dodd) 여사가 자신을 비롯한 6남매를 홀로 키우며 고생하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날도 기념할 것을 제안한 것이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아버지날은 좀처럼 공휴일로 지정되지 못하다가 62년이 지난 1972년에 리차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 6월 셋째 일요일을 아버지 날로 선포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정해진 아버지날은 어머니날에 비해 조용하게 기념하기로 모두가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것 같다. 동네 꽃집마다 문 밖까지 줄을 서고, 카드를 파는 가게의 진열대는 어린아이부터 노신사까지 자신의 마음을 대신 할 카드를 찾아내느라 발 디딜 틈이 없는 어머니날과 비교해 보면 아버지날은 카드 가게도 꽃집도 한산하다.
보석류를 비롯한 수많은 선물 용품을 쉴 사이 없이 보여주던 각종 광고도 아버지날은 공구나 가든 용품, 또는 그릴도구 등 실생활에 필요한 소박한 물건을 소개하며 지나간다. 그래도 아버지 날 덕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니 그것만으로도 반갑고 고마운 일이라 하겠다. 아이들이 고민하며 골랐을 선물을 풀고, 뒤뜰에서 함께 바비큐를 하며 아버지날을 보냈다.
아이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며칠 떠들썩하던 집안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TV 볼륨을 키워 그 쓸쓸함을 쫓아내던 아내가 TV 앞으로 나를 불렀다.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이었는데, 준비 과정 중에 한 인터뷰에서 단 둘만의 여행에 대한 걱정과 어색함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아버지와 그 아비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며 '아버지와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것이 꼭 닮았다' 고 말하는 아들이 낯선 곳을 여행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과정이 참 흥미로웠다. 권위적이며 아들에게 살갑게 표현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내 아버지의 모습과 오버랩 되었고,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에 대한 내 숨겨진 마음이기도 했다. 무슨 이유로 부자 사이가 서먹하게 되었는지 깊은 내용까지야 잘 모르지만, 꼬장꼬장 해 보이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손 한번 잡아 보자' 며 쑥스럽게 건네는 말 한마디에 덩달아 마음이 울컥해 졌다.
아들과 처음 떠나는 낯선 여행에서 자신의 죽음을 고민하는 또 다른 늙은 아버지의 눈물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언젠가 자신에게 닥칠 마지막 순간에 남겨진 가족들이 자신으로 인해 힘들어 질까봐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고 미리 부탁하는 아비의 말을 묵묵히 듣는 아들의 모습이 애틋했다. 마음을 터놓고서야 비로소 웃던 주름진 얼굴, 많은 것을 내려놓고 진심을 다하는 만큼 서먹한 부자 관계가 회복되어 남은 여행도 즐겁게 마무리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도 아버지에게 만큼은 여전히 인색한 나를 돌아보았다. 아버지 역시 사랑을 표현하는 법에 익숙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묵묵히 어려운 시절을 살아 내신 아버지의 뒷모습은 언제나 내가 되돌아보면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넉넉한 산이었다.
몇 해 전 아내가 지나가는 말처럼 아이들과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 보라고 했던 제안을 새 버킷 리스트에 담아 두어야겠다. 그런데 정말 우리끼리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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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선 전 한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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