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4년 첫 헤비급 챔피언 올라
▶ 은퇴 후 32년간 파킨슨병 앓아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선수들이 5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오리올 팍 앳 캠든 야즈에서 열린 뉴욕 양키스와 경기에 앞서 타계한 무하마드 알리를 추모하고 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명언을 남긴 20세기 최고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3일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7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의 대변인 밥 거닐은 이날 성명을 통해 “알리가 32년 동안 파킨슨병을 앓은 끝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알리는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한 의료기관에서 생명보조 장치에 의존해 투병해왔고 가족들은 그의 임종을 지켰다. 그는 은퇴 3년 만인 1984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의료계에선 그러나 알리가 선수 시절 머리를 지속적으로 가격 당해 뇌에 충격이 누적된 까닭에 파킨슨병에 걸렸는지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린다. 대신 파킨슨병이 유전적 원인과 환경적 요인이 함께 작용해 생기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2세 때 복싱에 입문한 알리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라이트 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프로로 전향해 3차례에 걸쳐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고 통산 19차례 방어에 성공하면서 1960~70년대를 풍미했다.
그는 화려했던 성적과 함께 인종차별과 싸운 복서로도 널리 기억된다. 알리는 미국 대표로 로마 올림픽에 출전, 금메달리스트로 금의환향했으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식당 출입을 저지당하자 방송을 통해 “나는 세계 챔피언인데도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이웃집들이 있다”고 비판하는 등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관행에 강하게 저항했다. 그는 곧이어 올림픽 금메달을 강물에 던지고 프로로 전향했다.
알리는 1964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뒤 본명 캐시어스 클레이를 ‘노예의 이름’이라며 버리고,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하고 종교도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1967년에는 베트남 전쟁 징집 대상이었지만 알리는 “베트콩은 나를 깜둥이라고 부르지 않는데 내가 왜 총을 쏴야 하느냐”며 베트남전 참전 거부를 선언했다. 결국 그의 타이틀은 박탈됐고 프로복서 자격도 빼앗겼다. 3년여 법정공방 끝에 미국 대법원은 알리의 손을 들어줬고 그는 1970년 링에 복귀해 1974년 조지 포먼을 8회 KO로 물리치고 세계 챔피언에 복귀했다.
이후 조 프레이저, 래리 홈즈 등과 숱한 명승부를 남긴 뒤 39세이던 1981년 통산 56승(37KO)5패의 전적을 뒤로한 뒤 21년 간의 프로 생활을 마감했다. 알리는 은퇴 기자회견에서 “자유와 정의, 평등을 위해 싸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알리는 그러나 남은 여생을 파킨슨병과 싸워야 했다. 그의 타계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4일 미셸 오바마 여사와 함께 낸 성명에서 “(알리는)세상을 뒤흔들었다”고 애도하면서 “세상은 그로 인해 더 나아졌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알리를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넬슨 만델라 등 민권 운동가들과 비교했다. 알리가 선수 생활의 황금기에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하고 3년간 링을 떠나 고난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흑인들의 인권 개선 등 신념을 위해 가시밭길을 걸어온 이들과 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알리의 힘겨운 투병 사실도 언급하며 “(이 병이) 그의 눈에서 열망을 앗아가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또 알리가 아프거나 장애를 지닌 어린이들을 방문해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며 독려했던 일화도 공개했다.
토마스 바흐(63)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알리가 파킨슨병을 앓아 몸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최종 성화 점화자로 나온 장면을 회상하면서 “그는 진정한 올림피언”이라고 회고했다. 바흐 위원장은 IOC 페이스북에 “그는 올림픽 성화를 밝히고 자신의 고통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질병으로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용기를 가진 선수”라며 “그는 평화와 관용을 위해 싸운 선수”라고 추모했다.
아버지를 따라 복서의 길을 걸었던 알리의 막내딸 라일라 알리(39)는 페이스북에 아버지 알리와 자신의 딸 시드니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나의 딸 시드니가 아기였을 때 아버지와 함께 찍은 이 사진을 좋아한다”며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있다. 아버지가 보내준 모든 사랑에 감사 드린다”는 글을 남겼다. 라일라는 1999년 프로 데뷔 이후 24전 전승의 성적표를 남기고 은퇴했다. <성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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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오른쪽)가 1975년 10월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조 프레이저와 세 번째 대결에서 프레이저의 안면에 오른손 강펀치를 날리고 있다. 알리는 14라운드 TKO로 ‘세기의 대결’을 승리로 장식했다.
★알리의 명승부·명언
복귀전 포먼 상대 KO
조 프레이저와 2승1패
1973년 에너지 파동땐
“최단 기간에 눕혀 절전”
“내 상대는 모두 삐에로”
무하마드 알리는 세계 복싱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선수인 동시에 숱한 어록을 남긴 ‘링 위의 시인’이기도 했다. ABC방송은 “알리는 복싱 가운을 입은 로버트 프로스트, 챔피언 벨트를 맨 마야 안젤루(흑인여성 시인)”라고 평가했다.
알리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미국의 인종차별에 치를 떨며 금메달을 강물에 집어 던지고 프로로 전향한다. 한때 자신의 스승이기도 했던 아치 무어와 1962년 11월1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알리는 경기 전 “무어를 4회에 KO 시키겠다”라고 대기실에 적었고 말 그대로 무어를 두들겨 4회에 KO 승을 거뒀다.
알리는 1964년 2월25일 마이애미비치 컨벤션 홀에서 WBA.WBC 통합 챔피언인 소니 리스턴과 붙었다. 경기를 앞두고 알리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고 했다. 리스턴은 강펀치를 지녔지만 알리에게는 ‘알리 스텝’이라 불리는 현란한 풋워크가 있었다. 리스턴의 강펀치를 피한 알리는 빈틈을 노려 말 그대로 펀치를 벌처럼 쐈다. 결국 리스턴은 눈이 부어 더는 싸울 수 없게 돼 알리가 7회 TKO승으로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1970년 링에 복귀한 알리는 1974년 10월30일 WBC.WBA 챔피언 조지 포먼(67)과 자이르(현 콩고 민주공화국) 킨샤샤에서 맞붙었다. 역대 최강의 주먹을 가졌다고 평가 받는 포먼은 당시 24세의 신예였고, 알리는 32세의 노장 복서였다. 도박사들은 포먼의 승리를 점쳤다. 알리는 8라운드까지 로프를 등지고 포먼의 주먹세례를 잘 버티다가 8라운드 종료 직전 기습적인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얼굴에 적중시키고, 나비처럼 코너에서 빠져 나와 전광석화 같은 주먹을 날려 KO 승을 따냈다. ‘킨샤샤의 기적’이라 불리는 복싱 역사 최고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알리와 조 프레이저는 챔피언 자리를 놓고 세 번 붙었다.
1971년 3월 8일 열린 둘의 1차전은 15라운드까지 가는 혈투였다. 도전자 알리는 15라운드에서 챔피언 프레이저의 왼손 훅에 맞고 판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알리의 생애 첫 패배였다. 1974년 2차전은 판정 논란 속에 알리의 승리로 끝났고 이듬해 3차전이 열렸다.
‘세기의 경기’로 불린 전설 속의 승부에서 알리는 14라운드 TKO 승리를 거뒀다. 알리의 입담은 여전했는데 프레이저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전사다. 나 다음으로”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알리는 1973년 전세계를 강타한 에너지 파동 때는 “수억의 인구가 전력을 소모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최단시간내에 상대를 눕히겠다”고 유머를 던졌다. 또 조지 포먼과의 대결을 앞두고는 “어이 포먼, 나는 복싱계의 대통령이야. 자네가 골목대장이던 시절부터 말일세”라고 상대의 기를 죽였다. 래리 홈즈전을 앞두고 포드 대통령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 했을때는 “홈즈는 30세에요. 너무 늙었죠. 내가 38세지만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나는 인간이 아니거든요. 신을 제외하곤 아무도 나의 위대한 행적을 흉내내지 못했다고요.” 알리는 또“나는 가장 위대한 복서다. 또한 나와 상대하는 복서는 모두 삐에로다”라며 입담을 과시했다. <윤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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