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한잔의 초대/ 다큐영화 제작자 및 감독 김대실
시대의 아픔 속에 상처받은 사람들과 미국의 소수계 목소리를 대변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자 겸 감독 김대실, 그는 오는 9월 한국의 DMZ(비무장지대) 국제다큐영화제 참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최근작 ‘사람이 하늘이다’ 한국 상영이 드디어 포문을 여는 것. 그래서 그는 요즘 많이 설레고 행복한 가하면 슬프다.
●언제나 함께한 소울메이트
김대실 감독의 집으로 전화를 하면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바로 2009년 1월 별세한 그의 남편 단(Don)이다. 저음의 멋진 목소리가 출타 중인 집주인을 대신해 전화를 받아준다.
작년 10월 15일 뉴욕시립대 대학원센터 프로샨스키 오디토리엄에서 한국일보 특별후원으로 열린 뉴욕한인영화제(KAFFNY) 개막작인 ‘사람이 하늘이다’(People Are the Sky)는 이들이 만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김대실의 고향 신천을 비롯 북한을 방문해 영화를 함께 만들고자 했으나 병으로 남편을 잃었다. 그 후 재미기독교단체 도움으로 북한정부의 영화촬영 허가증을 받고 2012년과 2013년 북한을 두차례 방문한 김대실은 길에서 만난 평범한 북한 사람들을 무조건 인터뷰하여 다큐를 완성한 것이다. 동학사상 ‘사람이 곧 하늘’, ‘하늘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에서 제목을 인용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7살까지 북한 땅 신천에서 자랐다. 할머니 손을 잡고 아버지가 선택한 민주주의를 찾아 3.8선을 넘고 서울에서 살다가 미국 땅에서 60여년을 살아온 내 생애를 영화에 녹여내고자 했다. 나는 평생을 집을 찾아 헤매었는데 남편을 만나 비로소 집을 찾아 정착한 것이다. 그러나 30년을 함께 한 단을 여의고 다시 집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이 다큐 중간 중간에는 김대실이 직접 그린 유화가 나온다. 단의 초상화(김대실 사진 뒤) 8점, 그의 고향 아이오와 옥수수밭 풍경 등 18점의 그림들이 등장하여 곳곳에서 남편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유화는 여고시절 부터 단짝친구였던 서양화가 문미애가 그림 그리는 것을 어깨너머로 배웠고 남편과 사별후 그림을 그리며 그 긴 시간을 견뎌냈다고 한다. 화가 친구도 2004년 세상을 떴다.
“인연이란 단어가 있다. 단과 나는 전생에서부터 인연이 현생에 이어진 것으로 평생 소울메이트(Soul mate)로 살았다.”
●공부하면서 향수병 이겨
김대실은 1938년 황해도 신천 출생으로 5남2녀 중 다섯째인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면 가족들을 모두 모인 가운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분이었다.
그는 7세인 1945년 겨울, 꼭두새벽에 할머니 손을 잡고 형제들과 3.8선을 건너 남한으로 내려오며 정든 집을 떠나기 싫어 자꾸 뒤돌아보았던 기억이 난다고 한다. 부모님은 이미 서울로 가 있었다.
12살에 6.25 참상을 목격했고 이화여고와 감리교신학대 졸업후 1962년 9월 미국 유학을 왔다. 보스턴 대학에서 7년간 공부한 후 종교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69년 가을부터 마운트 홀리케(Mount Holyoke) 칼리지 교수가 되었다.
“목적을 세워놓고 오로지 스터디, 스터디 하면서 향수를 이겨냈다.”
김대실은 대학 교수, 연방인류국가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Humanities)과 뉴욕주 예술위원회(NY State council on the Arts) 미디어 프로그램 디렉터를 하면서 60세까지 안정된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나 나이 60이 되면서 조기은퇴를 한 88년부터 90년대에 한인여성으로 독보적인 다큐 영화 제작자 겸 감독이 된다.
●소외되고 억압받은 사람들
“미국에 살면서 인권에 대해 책임감을 갖게 됐다. 1979년 41세 동갑내기 단과 결혼하고 부부이자 영적 파트너로 30년 세월을 함께 했다. 늦은 나이에도 영화감독을 할 수 있게 용기를 준 단에게 감사한다. 그는 나의 영원한 지지자다.”
남편인 단은 연방인류국가기금 전 회장으로 물심양면 아내가 만드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다큐 제작을 도와주었다. 1992년 LA폭동을 다룬 ‘사이구’ , 1995년 사할린 동포들에 대한 ‘잊혀진 사람들’, 1999년 일본군 위안부 여성을 다룬 ‘침묵의 소리’ 등을 제작 감독했다. ‘침묵의 소리’를 미 하원의원들을 상대로 상영하여 종군위안부 결의안 채택 추진에 힘썼다. 그 후 ‘사이구’의 속편인 ‘젖은 모래알’, 인종문제를 고발한 ‘올리비아 이야기’ 등 8개의 다큐 영화를 만들었다.
이 작품들은 해외 각 영화제에서 상영됐고 그는 코닥 필름메이커상 수상, 라커펠러와 맥아더 재단의 그랜트를 받았다. 그는 ‘단을 그리며’, ‘아이오아 하늘’, ‘코리언 하늘’ 3부작에 한국의 기억과 미국에서 단과 함께 한 자신의 이야기를 실었다.
●미국의 한인들
“LA나 뉴욕이나 한국촌 젊은이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 물자 풍요로운 땅위에 살면서 혜택받은 사람들은 그만큼 돌려주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한인부모들은 성인자녀는 독립하여 살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개별적 성공보다는 흑인, 남미계 등 타인종과 힘을 합쳐 미국사회를 좋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단은 아이오아촌에서 새벽 4시반~5시면 일어나 일하는 소작인 가정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하였다. 나 역시 미국에 어린 나이에 공부하러 왔다.”
40세에 직장에서 만나 41세에 결혼한 부부는 임신 8개월에 유산한 슬픔을 잊고 입양 생각도 했으나 ‘2세들이 독립적 능력을 갖는데 도움을 주기로 합의’했다. 김대실에게는 지금도 그렇게 인연을 맺은 젊은 친구들이 많다. “매일 그에게 편지를 쓴다. 단이 없어서 많이 슬프고 함께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많이 행복하다.”
김대실이 사는 집 거실 유리창으로는 허드슨 리버가 유유히 흘러가고 조지 워싱턴 브리지의 처음과 끝이 통째로 보인다. 서재방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남편에게 대선을 앞두고 경선 중인 힐러리와 트럼프, 샌더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지난 5일에는 최초의 무슬림 런던시장 소식도 전했다. “평생 집을 찾아 헤매다가 단과 결혼한 이후 바로 그가 집인 것을 알았다. 집이 장소가 아닌 ‘사람’ 이었다.”
●늘 더 이상 못하겠다 하지만..
워싱턴DC영화제, 시애틀영화제, 하와이국제영화제, 부산영화제 등에서 상영된 그의 작품은 늘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다. 그의 다음 작품은 무엇일까.
“작품을 할 때마다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더는 못하겠다 했지만 또 하고는 했다. 정말, 이제는 더 이상 못하겠다. 돈도 너무 많이 들고 힘에 부쳐서 못할 것이다. 오는 9월 22일부터 29일까지 경기도 고양시와 파주시 일대에서 열리는 DMZ 국제다큐영화제에서 ‘사람이 하늘이다’의 반응이 좋고 이야기가 잘되면 한국 땅에서 순회 상영함과 동시에 10월에 열리는 평양 페스티벌에서 상영하고 싶다. 이 작품이 상영되는 평양 풍경, 영화를 보러온 평양사람들의 인터뷰, 이런 것들이 모이면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겠는가.”
그는 말로는 더 이상 못한다고 하지만 늘 새로운 작품을 머리에 그리고 있는 셈이다.
김대실은 현재 앨라배마 감옥에 수감 중인 흑인 남성과 18세부터 25세가 된 지금도 편지를 주고받고 있다. 6월에 면회를 가게 되면 그를 인터뷰할 것인데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런 환경 속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여주고 싶다.
“오는 7월이면 78세가 된다. 80세가 되면 그때부터는 목적 없는 삶을 살려한다. 글을 써도 출판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림을 그려도 전시를 하지 않겠다. 그냥 살려한다. 심플한 삶, 단이 와서 데려갈 때까지 간결하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
숱 많은 단발머리가 숱이 줄어들고 고운 재색빛이 내려앉은 지 오래지만 그는 여전히 사랑에 빠져있다. ‘죽음이 끝이 아닌 걸 알아. 당신의 반짝이는 눈, 기쁨에 찬 웃음소리, 속삭이는 목소리, 당신과의 사랑의 기억이 나를 살게 해’ 지어미가 지아비를 그리는, 70대 소녀의 순정이 거대한 인권 관련 영화를 만들게 하는 원천이 됨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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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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