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차마 믿기 힘든 ‘인도 하층민 사회의 장로회의’
▶ 처벌로 ‘집단 성폭행’ 등 여성에게 악마적 판결

마을위원회의 명령에 따라 강간을 당한 하라야나 주의 소녀. 판차야트는 토지분쟁과 관련, 커뮤니티 전체에 대한 집단처벌로 4명의 마을 소녀에게‘강간형’을 집행했다.
열 세 살짜리 계집아이가 친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면 누가 처벌을 받아야 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상식선에서 보면 당연히 ‘인면수심’의 죄를 저지른 친부가 중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사건의 무대인 인도는 상식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사회다.
게다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카스트제도의 맨 아래쪽에 위치한 천민이고 이들의 판관이 ‘까막눈’ 일색인 부락의 장로들이라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판결을 기대하기 힘들다.

인도 하리야나 주 마을자치위원회협회 지도자인 수베 싱 사마인. 그의 주장에 따르면 판차야트는 커뮤니티 내부의 분쟁을 법원으로 가져가지 않고 원만하게 수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층민 집단촌인 고팔 커뮤니티의 유지들이 근친 성폭행사건을 다루기 위해 소집한 장로회는 엉뚱하게도 피해자인 10대 초반의 어린 소녀에게 회초리 형을 선고했다. 몹쓸 일을 당하고 나서 침묵을 지켰다는 것이 회초리가 부러질 때까지 10대의 매질을 당해야 했던 이유다.
반면 죄를 자복한 아버지에게는 “술을 마셔서 정신이 없었다”는 친절한 정황해석이 곁들여지면서 67달러의 벌금과 15대의 회초리 형이라는 솜방망이 판결이 떨어졌다.
부족의 장로회의격인 ‘판차야트’는 이웃 간의 분쟁을 해결하고 카스트제도에서 파생된 사회적 관습의 유지와 보존을 임무로 삼는 마을 자치위원회에 해당한다.
인도의 농촌지역에 부락 단위로 설치된 판차야트는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한 남녀의 결합을 가로막거나 이미 결혼한 ‘이종계급 커플’을 떼어놓는 역할을 주로 수행한다.
또한 간통과 강간 등 성범죄를 저지른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사법권을 행사하며 “마을의 질서유지와 기강확립 차원에서” 이른바 ‘명예살인’을 선동하기도 한다.
판차야트는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거나 가혹한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지난 2014년 웨스트 벵갈주 오지 마을 판차야트는 다른 부족의 남성과 관계를 맺은 여성에게 ‘집단 성폭행 형’을 선고한 후 13명의 장로들이 이를 직접 집행해 국제적인 물의를 일으켰다.
경찰에 접수된 진정서에 따르면 당시 해당 부락 판차야트의 리더는 12명의 위원들에게 “관습을 저버린 저 계집을 데리고 즐기라”고 명령했다. 문제의 여성은 판차야트 위원장을 비롯한 13명의 부족 장로들에 의해 회의장소로 사용된 헛간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그런가하면 부정혐의로 판차야트에 회부된 한 여성은 펄펄 끓는 기름 가마니 안에 넣은 동전을 맨손으로 꺼내 순결을 입증하라는 터무니없는 명령을 받았다.
또 다른 여성은 옷이 거의 벗겨진 채 맨발로 숲을 통과해야 하는 벌을 받았다. 숲에 포진한 판차야트 구성원들은 맨살이 드러난 그녀의 등을 향해 불에서 갓 구워낸 뜨겁고 단단한 밀가루 공을 쉬지 않고 던져댔다.
판차야트에 비판적인 ‘전인도민주여성협회’의 자그마티 상완 사무총장은 “마을 장로들로 구성된 부락위원회는 강간 케이스를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비공식적인 ‘지하재판’을 통해 처리한다”고 지적하고 “그들은 커뮤니티의 화합 차원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 사이의 합의를 강조하면서 피해 여성의 권익을 억누른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강간 피해자는 미화로 불과 몇 달러밖에 안 되는 합의금을 받고 입을 닫거나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락 위원회의 중재와 주선에 따라 가해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이처럼 상식을 짓밟는 일처리에도 불구하고 인도 북부 하리야나 주의 부락자치위원회협회 지도자인 수베 싱 사마인은 “사법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린데다 법정비용이 비싼 인도와 같은 나라에서 판차야트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강변했다. 그는 “법원으로 갈 것 없이 커뮤니티 내부에서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리의 확고한 기본방침”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2년 델히에서 버스를 타고 가던 여대생이 집단 성폭행을 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후 인도 정부는 강간피해자의 고발절차를 간소화하는 법안을 제정해 통과시켰지만 하층민들에게 경찰의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여기서 생기는 공백이 바로 판차야트의 활동공간이다.
온갖 잡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판차야트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한다. 자칫 부락민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사회적 추방’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1992년 인도의 중앙정부에 의해 공식적인 지방자치조직이 결성되면서 판차야트는 ‘불법 단체’로 지목됐고 5년 전 연방대법원에 의해 해체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판차야트는 대법원의 명령을 무시한 채 주민들의 화합을 보존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자체적인 칙령을 반포하는 등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1월 친부에게 성폭행을 당한 고팔 마을의 소녀는 가족들조차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 그저 열세 살 아니면 열다섯 살 쯤으로 어림짐작할 뿐이다.
학교 문턱을 넘어본 적이 없는 그녀는 가끔씩 길거리에서 음식을 구걸했고 곡예사인 홀아버지의 공연을 쫒아 다니며 물구나무서기 등의 잔재주를 부리기도 했다.
지난 1월 어느날 밤, 결혼잔치에서 놀이판을 벌린 후 얼큰하게 취한 채 집으로 돌아온 홀아버지는 충동적으로 어린 동생과 땅바닥에 나란히 누워 곤히 자고 있던 딸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회초리 처벌을 받은 후 오빠 집에서 생활하는 소녀는 그녀를 찾아간 외국 기자에게 “판차야트의 판결은 정당했고 회초리질도 살살했기 때문에 전혀 아프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그녀는 울고 또 울었다.
소녀는 판차야트의 중매로 45세 된 이웃마을의 찢어지게 가난한 홀아비와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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