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갔다'라고 쓰고 살아 있는 것은 '봄' 이라고 읽는다. 묵묵히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 온 모든 생명에게 무료하고 건조했던 겨울의 시간에 동행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 본다. 지나고 보니 기다림은 견뎌냄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알겠다.
치밀하게 짜여진 규칙을 실행하는 로봇처럼 날마다 같은 시간에 잠에서 깨어 출근을 서두른다. 어둠속에 희미하게 보이던 산 위로 해가 떠오르고, 숲이라 부르던 곳에서 나무가 하나씩 깨어나며 존재를 알린다. 비가 지나간 자리마다 새순이 돋고 눈부신 4월의 빛이 쏟아진다.
강을 건너 온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꽃이 피어났다. 그리고 아침부터 새 소리가 들리던 날 그 꽃이 졌다. 그것이 작별 인사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풍경 속에 숨어 있다가 풍경 속에 사라져 가는 꽃은 끝내 한줌의 풍경 속으로 숨어들었다. 비록 마을을 덮을 기다란 산자락의 풍경이 되지는 못했어도 그저 사소한 봄날의 바람처럼 수줍은 풍경으로 기억하기로 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벅찬 마음으로 '아름답다'라고 말하면 '아름답다' 고 맞장구 쳐줄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이 참 고맙다. 힘들다는 투정에 '힘내!' 라고 말하며 손을 꽉 잡아 줄 누군가가 옆에 있어서, 한숨같이 뱉은 말이 혼잣말로 허공에서 사라지기 전에 받아 주는 소중한 존재가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어제는 참 힘든 하루였다.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다른 말이기도 했다. 삶이 무릎 꿇지 않을 만큼 몸이 지쳤었다. 어려운 하루와 충분히 마주 섰다는 의미이기도 하리라. 어쩌면 내가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에도 희망과 절망이 서로 닿을 듯이 마주선 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상념을 깨우는 눈부신 햇살이 나무에게, 그리고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 내는 듯 했다. 차를 세우고 주차장을 가로 질러 커피를 사러 가려는데 구부정한 내 그림자가 등 뒤로 따라왔다. '몸을 구부리고 서서 그림자를 보고 바로 서지 않는다고 욕하는 사람' 이 바로 내 모습이었을까?
이미 친숙하고 낡은 사물에서도 서먹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고, 스스로가 거울 속에 비친 변한 모습에 선뜻 익숙해 지지 않는 순간이 있는걸 보면 삶이란 멈추지 않고 능동적으로 적응하고 대응해야 하는 것인가 보다. 움츠러든 어깨를 고쳐 세우며 당당하게 커피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난 몇 주 동안은 만나는 사람마다 선거에 대한 이야기로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였다. 오래전에 고향을 떠나 먼 이국땅에 터전을 이루고 살면서도 미국의 대통령 경선 소식보다 고국의 선거 방송에 관심을 두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물론 여론조사나 자신 있게 예측했던 전문가들조차 투표 결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으니, 사람들은 현명한 유권자들의 심판이라고 에둘러서 말했지만 한발 물러서서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선거는 끝났지만 민심의 변화를 읽지 못한 정치인들이 그 '민심'을 다시 얻기까지의 과정 또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볼 일이겠다.
그리고 이어서 세월호 사고 2주기를 맞이했다. 날마다 소음처럼 쏟아내던 선거 방송과는 달리 지나가는 화면 너머로는 상처투성이의 사람들끼리 세월호 사고 2 주기를 아프게 기념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얄팍한 기억은 이미 바다 속에서 녹슬어 가는 배보다 더 빠르게 삭아 버렸음을 확인했을 뿐이다. ' 그만두라' 라고 하는 말은 아픈 사람들이 스스로의 마음에게 할 때 적절한 말이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아픔을 여미고 그 기다림을 승화하는 그 날까지, 그저 우리는 눈물 글썽이는 눈으로, 부모 된 마음으로 함께 해주면 되는 것은 아닐까?
가난한 여인의 발을 씻겨주던 이가 있었고, 철저히 외면 받으며 죽어갔던 이의 시신을 수습하려 나선 여인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그들의 행위는 사랑의 원형이 되었다. 오늘, 우리는 그 사랑으로 무엇 무엇을 사랑하는지 물어볼 일이다.
숲에서 오는 맑은 공기, 비에 젖은 나무에서 스며든 푸른 잎새, 멀리서 들릴 듯 들리지 않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소리 끝에 희미하게 들려오는 새 소리, 창이 큰 빵 가게 , 그 가게의 유리창 보다 더 맑았던 소녀들의 웃음소리, 비 갠 하늘로 새가 하늘을 가로 지른다. 이쯤해서 미루었던 화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햇빛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를 꺼내어 읽는다. 내 마음은 그처럼 '남의 나라' 에 있는 듯하고 '늙은 교수의 강의' 를 듣는 듯했다. 그런 내 마음에 '눈물과 위안의 악수'를 건네고 싶다. 눈치 없이 4월의 꽃이 화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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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선 전 커네티컷한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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