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립 글래스, 미니멀리즘 거장
미니멀리즘이라는 거대한 파고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아우른 작곡가 필립 글래스(79)가 자신의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1994)로 13년만에 한국을 찾는다.
글래스는 골든글로브상에 빛나는 영화 ‘트루먼쇼',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후보에 모두 올랐던 ‘디 아워스'를 비롯해 ‘쿤둔' ‘일루셔니스트'의 영화 음악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인 ‘스토커'로 한국에도 이름을 전했다.
일찌감치 1960~70년대 단순한 프레이즈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강렬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미니멀리즘을 확고히 확립한 작곡가다. 오페라, 극음악, 심포니, 실내악 등에서 로버트 윌슨, 라비 샹카, 데이비드 보위에 이르기까지 20~21세기에 족적을 남긴 예술가들과 장르를 초월해 작업했다. 지난해 10월 광주 아시아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윌슨의 5시간짜리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의 음악을 맡기도 했다.
글래스는 특히 20세기에 탄생한 영화라는 예술매체에 심취했다. 1980년대 미국의 컬트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갓프리 레지오의 ‘코야니스카시-균형 잃은 삶'(1982·‘카시' 시리즈 첫 번째)으로 시작한 영상과 음악의 혁신적인 결합은 1990년대 ‘장 콕토 3부작'에서 절정의 미학을 탄생시켰다.
2003년 LG아트센터에서 글래스의 ‘카시'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인 ‘코야니스카시-균형 잃은 삶'과 두 번째 작품인 ‘포와카시-변형 속의 삶'(1988)이 ‘필립 글래스-필립 온 필름'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된 바 있다. 당시 글래스가 한국을 방문했다.
20세기 초의 ‘르네상스맨'으로 통한 예술가 장 콕토(1889~1963)의 예술세계를 존경해온 글래스는 동화의 판타지를 한 편의 시처럼 구현해 큰 성공을 거둔 콕토의 흑백 고전영화 ‘미녀와 야수'(1946)에서 예술 창작의 본질을 읽어냈다. 여기에 자신의 음악적 영감을 불어넣어 영상의 보조로서의 음악이 아닌, 음악이 영상을 주도적으로 리드하는 필름 오페라라는 형식으로 탄생시켰다.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는 대사와 음악 등 모든 소리가 완전히 제거된 콕토의 흑백영화가 무대 위에 상영되는 가운데, 글래스가 새롭게 작곡한 음악을 ‘필립 글래스 앙상블'(1968년 글래스의 곡들을 연주하기 위해 작곡가가 창단)이 연주하고 4명의 성악가(소프라노·메조 소프라노·테너·바리톤)가 배우들의 대사에 맞춰 노래하는 형태의 공연이다.
95분간 마치 흑백 오페라를 라이브로 보는 듯하다. 빈티지 아방가르드 시네마와 세련된 현대음악의 만남이 색다른 로맨틱 판타지를 선사한다.
‘미녀와 야수'는 장 콕토 영화에 바탕을 둔 글래스의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는 콕토의 영화 ‘오르페' 시나리오를 체임버 오페라의 리브레토로 사용한 ‘오르페'(1993)다. 3부작의 마지막은 무용·연극 작품으로 콕토의 영화 ‘앙팡 테리블' 시나리오를 바탕(1996년 완성)으로 만들었다.
<
이재훈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