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대 근육 조절 이상’으로 자퇴한 가수 김윤아 대타
▶ ‘보이스 오브 코리아’ 시즌1 출연·밴드 ‘W&JAS’ 보컬
뮤지컬배우 겸 가수 장은아(33)는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라는 명제를 새삼 뮤지컬계 각인시켰다. 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펼쳐진 뮤지컬 ‘레베카' 무대가 증명의 자리였다.
죽은 ‘레베카'에 대한 집착으로 광기가 극에 달한 ‘댄버스 부인'은 장은아의 목소리와 연기를 입고 새로 태어났다. 장은아는 서울 공연 개막 직전, 만만치 않은 가창력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성대 근육 조절 이상'이라는 진단을 받고 자퇴한 가수 김윤아를 대신해 긴급 투입됐다.
그러나 이날 장은아의 첫 ‘레베카' 무대를 본 관객은 ‘대타'라는 단어를 완전히 잊었다. 커튼콜에서 엄청난 환호가 그녀에게 쏟아졌다. 환영과 성원이 뒤섞인 소리였다. 장은아에게는 선물과 다름 없었다. 그날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장은아의 눈에 기쁨의 눈물이 고였다.
첫 공연 다음날 만난 장은아는 “‘레베카'는 내 운명"이라며 활짝 웃었다. “‘영원한 생명'(1막의 중간 부분 넘버)을 부를 때까지 떨었다. 평소 떠는 스타일이 아닌데. 호호. 난초를 부여잡는 장면에서 가슴 속 미묘한 쿵쾅거림이 밀려오더라."많은 뮤지컬 여우들이 욕심을 내는 ‘댄버스 부인' 역을 제안받은 지 하루만에 넘버를 완벽하게 소화해 공연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 스태프들을 모두 놀라게 만들었다. 평소 ‘레베카' 넘버를 좋아했기 때문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장은아는 오직 가창력으로만 승부를 가리는 엠넷 ‘보이스 오브 코리아' 시즌1에서 그룹 ‘소녀시대'의 ‘훗'을 섹시한 버전으로 소화해 가창력을 인정 받았다. 영화 ‘국가대표' OST를 불렀으며 밴드 ‘W&JAS' 보컬로 활동 중이다.
무엇보다 2013년 ‘광화문 연가'의 일본투어로 뮤지컬에 데뷔한 뒤 같은 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거쳐 ‘서편제' ‘머더 발라드' ‘더 데빌' '씨왓아이워너씨' 등 넘버가 어렵기로 소문난 뮤지컬에서 활약하며 단숨에 급부상한 기대주다.
그럼에도 “저음과 고음을 넘나드는 댄버스 부인의 넘버는 수많은 뮤지컬 넘버 중에서도 난도가 높다"고 여겼다. “뮤지컬 넘버가 성악 풍도 있고, 팝 풍도 있는데 ‘레베카'는 미묘하게 그 중간 선상을 넘나든다. 중심을 잡기가 힘들지."그럼에도 애절한 발라드 ‘영원한 생명', 점차 리프라이즈되면서 광기가 똬리를 트는 ‘레베카'가 장은아의 입에서 울려퍼질 때 마치 넘버들은 그녀의 목소리에 맞춘 옷 같았다. 특히 또렷한 저음이 특징인 장은아의 장점이 살아나는 곡들이었다.
레베카의 의문사 이후 그녀의 어두운 그림자를 안고 사는 남자 ‘막심 드 윈터'와 그런 막심을 사랑해 새 아내가 된 윈터 부인인 ‘나', ‘나'를 쫓아내려는 집사 댄버스 부인 등이 막심의 저택 ‘맨덜리'에서 얽히고설키는 이야기다. 자신이 모셨으나 죽은 레베카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댄버스 부인은 나가 그녀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한다며 쫓아내려 한다.
그런데 장은아의 댄버스 부인은 카리스마로 무장한 역대 댄버스 부인들보다 조심스럽다. 장은아가 댄버스 부인이 되지 않고, 댄버스 부인이 장은아가 된 묘수다.
“아직은 100% 못 찾았는데 ‘나'가 불편함 속에서도 댄버스 본심을 알기 전까지 잘해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레베카' 세번째 리프라이즈에서 돌변하기 전까지 말이다."전체적인 흐름을 감안, 캐릭터의 강약 조절을 했다는 이야기다. 평소 화장을 하면 인상이 강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는 장은아이나 실제로는 순둥이다.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속 이야기도 쉽게 꺼내지 않는다.
“첫 공연에서는, 2막 마지막에 레베카의 광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감정을 훅 올리려고 초반에 약하게 했던 건 사실이다. 현재는 찾아가는 중이다. 그렇게 하면 댄버스 부인이 본래 가지고 있는 포스가 덜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 세부 조정 중이다."댄버스 부인이 레베카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묻자, 캐릭터를 연기하기 전 극본이나 악보 맨 앞장에 그녀의 전사(前史)를 상상해 써내려가는 장은아의 습관이 빛을 발한다.
역대 가장 어린 레베카로 이 역을 맡기에 이르다는 일부 시선도 있었다. 장은아는 그러나 가장 섹시한, 즉 여자로서의 매력이 있는 레베카를 그려내며 이 역에 또 다른 해석을 만들었다. “로버트 조핸슨 연출님이 주문한 것도 난무하지 않고 절제된 것이었다. 마치 댄버스 부인이 레베카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했다. 그래서 향수를 맡는 장면 등에서 레베카처럼 우아함을 더하려 했다."뮤지컬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중요한 뮤지컬 여배우군에 들어오기 시작한 장은아는 “첫 공연을 끝내고 나를 믿고 무대에 세워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며 "'레베카'를 전환점으로 앞으로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면 더 좋은 뮤지컬배우로 각인됐으면 한다"고 눈을 빛냈다.
장은아는 다른 뮤지컬 여우와 비교해 탄탄한 외형과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녔다. 그러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을 함께 작업한 이지나 연출의 “캐릭터에 너를 억지로 끼워 맞추기보다 네가 가진 장점으로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발판 삼아 진짜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 덕분에 관객들의 선택의 폭도 넓어질 거라 믿는다. 내가 가진 것을 좋게 보도록 더 노력해나가야지."막심 류정한·민영기·엄기준·송창의, 댄버스 부인 신영숙·차지연·장은아, 나 김보경·송상은. 총괄 프로듀서 엄홍현, 협력 프로듀서 김지원, 한국어 가사·대본 박천휘, 음악감독·지휘 김문정. 러닝타임 2시간50분. EMK뮤지컬컴퍼니·인터파크 티켓.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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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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