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영화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다. 멕시코 출신 영화작가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의 신작으로, 10일 미국에서 열린 제7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화제에 올랐다.
디캐프리오는 이 영화로 데뷔 이래 첫 오스카 수상이 점쳐지는데, 영화를 보면 그가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개고생’을 했다. 거대한 회색곰에게 난자당하는 장면이 대표적인데, 곰이 마치 공을 굴리듯 디캐프리오를 이리저리 굴린다. (곰은 진짜와 CG를 섞어 완성했다) 또 네 발 달린 동물처럼 눈밭을 기어다니며 뼈 속까지 꽁꽁 얼어붙을 것 같은 겨울 강에 풍덩 들어간다.
도대체 연기란 무엇인가. 스크린 밖에서는 호화주택에서 살 저 배우는 왜 사서 저 고생을 하나 싶다. 다수의 미남 배우들이 연기력을 인정받고 싶어 외모를 망가뜨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데, 디캐프리오는 이 영화에서 그야말로 거지꼴을 하고 나온다. 생존 앞에 날것의 본능을 드러낸다.
제목인 레버넌트(revenant)는 저승에서 돌아온 자를 뜻한다. 영화는 죽음의 문턱을 넘은 한 남자이자 아버지의 복수 이야기다. 디캐프리오가 연기한 휴 글래스는 1823년 필라델피아 출신의 개척자로 미국 서부 역사에서 전설적 인물로 꼽힌다. 모피회사에서 사냥꾼으로 일하던 중 회색곰을 만나 큰 부상을 입는다. 동료들은 그를 돌봐주다 나중에는 버리고 달아나는데 홀로 남겨진 글래스는 고통과 추위, 배고픔과 싸워가며 4,000㎞가 넘는 기나긴 여정을 지나 살아서 돌아온다. 이냐리투 감독은 이 극적 실화에 부자의 이야기를 가미했다. 극중 글래스는 원주민과 사이에서 혼혈 아들을 둔 것으로 나온다.
도입부 전투신은 생생히 재현된 백인과 원주민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다. 미국이라는 신세계로 경제적 기회와 종교의 자유를 찾아온 서구 백인과 조상 대대로 그곳에서 살아온 원주민 간의 치열한 삶과 죽음이다. 끔찍하고 잔인하지만, 입이 쩍 벌어지게 진짜처럼 찍었다.
영화는 다양한 상징과 은유로 짜여있다. 혼혈의 아들을 둔 글래스는 다인종 국가인 미국의 태생과 닮아있다. 딸을 잃고 찾아다니는 원주민 부족장의 모습은 자신의 ‘땅’을 빼앗긴 원주민의 슬픈 운명과 겹쳐진다. 서구 식민지를 찾은 멕시코 감독은 원주민과 개척자이면서 약탈자인 서구인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절묘한 균형 감각을 보여준다. 원주민을 단순히 신비하거나 야만적인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당당하게 묘사된다. 백인은 나쁜놈부터 정의로운 사람까지 다양하다. 돈에 눈이 멀어 살인을 서슴지 않는, 원주민을 짐승이라고 대놓고 비하하는 인종차별주의자도 있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서 정의를 구현하려는 개척자도 있다. 또 원주민과 어울려 살다 그들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알게된 글래스 같은 인간도 있다.
영화는 아들을 잃고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남는 글래스의 혹독한 생존기와 복수기를 중심축에 두고 대담하고 집요하며 유려하게 나아간다. 이 여정은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보는 이를 이끈다. 마지막 숨을 내쉬기까지 어떻게든 죽을 힘을 다해 살아남는 것이 생명에 대한 인간의 예의라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본 날,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봤는데 어느 순간 위안을 받았다. 지금도 이 영화의 어떤 장면을 떠올리면 힘이 난다. 자연은 때로 인간에게 혹독하지만, 나약한 인간을 보호하고 치유해주는 것도 바로 자연이다. 이냐리투 감독은 인공조명을 사용하지 않고, 장엄한 자연을 공들여 담아냈는데 그 결과 영화를 보는 동안 희한한 체험을 안겨준다. 극 속 인간들의 탐욕과 대립에 긴장된 마음이 카메라가 대자연의 풍광을 잡으면 스르르 풀어진다. 극중 글래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도 자연이다. 그가 죽은 말의 배를 갈라 내장을 다 꺼낸 뒤 그곳에 들어가 추위를 피하는 장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복수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원동력이지만, 단지 복수에 머물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을 다룬 강렬하면서도 아름답고 스릴 넘치는 서사시다. 156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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