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팁'은 제 이야기입니다. 이 노래로 인생의 보너스를 말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좋은 일, 좋은 생각을 하고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행복해지잖아요. 행복이 보너스처럼 오는 거죠. 노래를 부르면서 언제나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가수 현숙(56)이 들려주는 노래 '인생팁'이 인기다. 현숙은 후회 없이 도전하고 매사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더니 결국 행복해지더라는 이야기를 경쾌한 노래로 풀어냈다.
"할까 말까 할 때는 해라/ 긴가민가할 때는 하지 마라/ 돌아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던 길 가라/ 세 번 참고 세 번 웃고 세 번 칭찬하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배꼽 인사 잊지 마라/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배꼽 인사 잊지 마라/ 뿌린대로 거두는 게 인생이라지/ 우리의 인생에 사랑도 챙겨요/ 선물처럼 행복도 올테니 ('인생팁' 가사 中)
현숙은 1979년 데뷔해 40년 가까이 인기를 누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 중 한 사람이다. 겁도 없이 상경해 스타가 됐고, 급변하는 가요계에서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끝내 재기해 전국의 무대를 누비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부모와 스승을 지극정성으로 모신 효도의 아이콘이자,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의리파로도 유명하다. 인생의 쓴맛, 단맛, 매운맛을 본 이후에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그녀에게서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을 들어봤다.
◇ 1만원·김치 한 포기 들고 상경…'정말로' 불러 스타덤
현숙은 전북 김제에서 12남매 중 열한 번째로 태어났다. 가난한 농사꾼 살림이었지만 형제, 자매 우애가 좋았다. 한결같은 밝은 표정도 이런 성장 환경의 영향이 컸다.
그는 중학교 시절 친구와 둘이서 가발을 쓰고 노래자랑에 나가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을 불러 1등을 차지한다. 그때부터 어린 소녀의 꿈은 가수였다.
그는 꿈을 위해 김제여고 3학년 때 서울행 기차를 탄다. 그는 "서울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누가 이야기라도 해줬으면 못 떠났을 것"이라며 "그때는 두려움도 없이 꿈을 이루겠다는 마음 하나로 서울행 열차에 올랐다"고 회상했다.
그의 부모는 어린 딸을 걱정해 반대를 거듭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결국 딸의 손에 현금 1만원과 김치 한 포기, 쌀 한 말을 쥐여줬다.
"가슴이 찡 할까요 정말로/ 눈물이 핑 돌까요 정말로/ 나는 아직 사랑이란 모르지만/ 난 나는 믿는 것은 그대뿐/ 그대 나를 얄밉다고 말만하더니/ 오늘은 살며시 내 손 잡았네 오 예" ('정말로' 가사 中)
현숙은 상경한 그해에 선배 가수였던 김상범을 만나 데뷔에 성공한다. 중동에 일하러 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는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그를 스타로 만든 노래는 이어 나온 '정말로'였다. 이 노래는 발표된 지 15일 만에 빅히트를 한다. 그는 나이에 맞는 발랄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소원을 이룬 동시에 전국에서 리사이틀을 펼치는 대형 가수로 성장하게 된다. 현숙은 그해 MBC 10대 가수상을 거머쥔다.
"인생팁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할까 말까 할 때 해야지만 뭔가를 이루 수 있고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제로예요, 제로. 정말이지 내 인생은 아무도 대신 못 살아줍니다.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고향에서 걱정하는 부모님께 걱정 끼쳐 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이후 '포장마차', '건곤감리 청홍백' 등도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면서 가수 현숙은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1990년대에 극심한 슬럼프에 빠진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표되는 가요계 세대교체 바람을 혼자서만 피해갈 수는 없었다. 신곡이 수차례 외면당하면서 크게 힘들었고, 부모님과 스승이 병환에 시달리면서 슬픔은 더욱 깊어졌다.
재기의 발판은 한참 후에나 마련됐다. 1995년에 부모님을 정성으로 모시는 그의 효행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랑하는 영자씨'가 TV에 방송되면서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하는 영자씨/ 당신이 원한다면 무엇인들 못하리까/ 저 하늘에 별이라도 저 하늘에 달이라도/ 당신 앞에 바치오리다" ('사랑하는 영자씨' 가사 中)
다시 힘을 내 준비한 트로트곡 '요즘여자 요즘남자'는 1997년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현숙은 그해 방송대상을 받으며 제2의 가수인생을 시작한다. 그는 그 후로는 신곡 작업을 쉬어본 적이 없다.
"저는 매년 일 년에 한 곡씩, 되든 안 되든 신곡을 내기로 했어요. 끊임없이 음반을 내는 거예요. 노래하고 또 노래하고 싶어서요. 선생님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이지만 그렇게라도 노래를 만듭니다. 꿈이 있다면 무조건 노력해야지요."
현숙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금까지도 잘 지키고 있다. 그처럼 꾸준히 새로운 곡을 발표하는 건 트로트 가요계에서도 이례적인 일로 여겨진다.
덕분에 현숙은 지금도 전성기다. '오빠는 잘 있단다', '춤추는 탬버린', '프러포즈', '사랑에 한표 던진다', '사랑하고 싶어요', '내 인생에 박수', '당신 만나길 잘했어' 등 수많은 히트곡이 그의 뒤를 받쳐주고 있다. 경쾌한 멜로디로 같은 시대를 사는 언니, 오빠를 위로하는 그의 노래는 어렵지가 않다.
"항상 밝고 즐겁고 희망적인 노래를 부르려고 합니다. 그래야 저도 신나고 청중에게도 힘이 되죠. 제 인생의 신조가 '신나게 살자'는 거예요."
◇ '효녀가수' 현숙, 부모 작고 후 '나눔의 가수'로
현숙을 이야기할 때 '효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아버지는 7년간 치매를 앓다가 1996년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14년간 중풍으로 투병하다가 2007년 별세했다. 그는 아픈 부모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켰다.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해서, 부모님을 편하게 모시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
간병인이 없을 때는 차에 어머니를 태우고 다니면서 간병을 했고, 수시로 가출하는 아버지 걱정에 아버지의 속옷에 ‘가수 현숙 아버지입니다’란 글귀와 전화번호를 바느질로 새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스승도 부모님처럼 모셨다. 김상범씨가 2004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병원비를 댔다. 김씨의 마지막 길에는 상주 노릇까지 자처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파서 더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어요. 부모님과 선생님이 안 계셨으면 저도 자유분방하게 친구들과 어울리고 나이트클럽도 가고 여행도 많이 해보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앞만 보고 왔기 때문에 지금도 노래 부르는 현숙이 있는 거예요. 그분들이 제 곁에 있어줘서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8년이 넘었지만 그는 요즘도 공연장에서 보글보글 파마머리 어머니들을 보면 눈물이 핑 돈다고 말한다.
"힘들어도 부모님 살아계실 때가 좋았죠. 지금은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엄마, 아빠 나 좋은 일 생겼어요, 상 받았어요'라고 말할 사람이 없어요. 공연장에 부모님 모시고 온 가족이 보이면 부러워서 마음으로 운 적이 많았어요."
부모님이 아프신 이후 현숙의 사랑은 세상을 향해 커졌다. 현숙은 2004년부터 치매 노인과 홀몸 노인을 위해 대당 5천만원이 넘는 이동 목욕 차량을 매년 한 대씩 기증하고 있다. 전북 김제를 시작으로 전국 시·도에는 기증을 마쳤고 연평도, 추자도에도 목욕 차를 보냈다. 하다 보니 욕심이 더 생긴다는 그는 이제 전국에 있는 면에도 차를 보내겠다고 했다.
이밖에도 그는 고향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 소아암 백혈병 어린이를 위한 수술비 기부 등 다양한 선행을 펼쳤다.
왕성하게 기부활동을 하다 보니 오해도 많이 받고 섭섭할 때도 있다. 여기저기서 도와달라는 요청이 와도 수입에 한계가 있으니 마음만큼 도와주지 못하는데 그럴 때는 인심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인기를 얻으려고 부모를 팔고 좋은 일 한다고들 해요. 제가 어려워 봐서, 제가 아파 봐서 하는 일이거든요. 요즘은 SNS에 현숙이 다녀갔다는 소식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니 제가 원치 않아도 기부 활동이 밖으로 알려져요. 욕먹으면 속상할 때가 있지만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시장에서 누가 뭘 사면 자기도 사고 싶어지잖아요? 제가 앞장서서 뭔가 해야겠더라고요. 그러면 좋은 일 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 같아요."
◇ 노래하는 지금이 행복 "평생 무대에 서고 싶어"
국내에서 현숙만큼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여가수는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효녀가수'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랑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불렀던 노래가 대중을 기쁘게 했기 때문에 가수로 롱런할 수 있었다고 자부했다.
그의 자부심은 1980∼1982년 MBC 10대 가수상, 1997년 한국방송대상 여자가수상, 2005년 KBS가요대상 올해의가수상, 2007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여자성인가요상 등 굵직한 수상 기록으로도 증명된다.
그의 꿈은 가수로 평생 사랑받고, 열심히 일해 봉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매일 아침 조깅을 한다. 비서도 매니저도 없으니 성공적인 무대를 위해 내일 필요한 준비물은 오늘 밤 챙겨 머리맡에 두고 잔다.
그는 “인생팁을 부르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지금 현재가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인생에서 느꼈던 감사함을 노래로 전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싶다고 했다.
"저는 직장인도 공무원도 아닌데도 아침마다 나갈 곳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 감사합니다. 가수는 정년 없이 노래할 수 있고, 재능 기부를 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고, 돈을 벌어서 예쁜 일을 많이 나눌 수 있으니 가수가 된 것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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