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닭장서 풀려난 닭들 싸우다 다쳐 폐사 늘고 알은 더 적게 낳아
▶ 방목·오개닉·개방사육 등 소비자들 생산과정 중시, 대형 푸드업체들도 요구
아이오와의 와우콘에 위치한 대형 양계장. 아침마다 비좁은 축사에 갇혀 지내던 닭들이 신선한 공기와 자유가 있는 초원으로 무리를 지어 빠져 나온다.
울타리로 둘러싸인 목초지에는 자연산 먹을거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고 주변에는 알파파와 클로버, 옥수수와 콩이 심어진 밭이 눈 닿는 데까지 구불구불하게 펼쳐져 있다. 붉은 벼슬을 자랑하는 수탉과 풍성한 몸매의 암탉들은 쉬지 않고 구구대며 부리로 땅을 쪼거나 비벼댄다.
===
이곳에서 오개닉 농장을 운영하며 5,000마리의 닭을 사육하는 프랜시스 블레이크는 “폐쇄형 닭장에서 빠져나온 닭들이 이전에 비해 훨씬 편안해 보인다”고 말한다.
그는 양계장의 공장형 축사를 모두 없애고 개방형 축사로 운영하고 있다. 닭을 닭장에서 꺼내어 풀어 키운다는 뜻이다.
개방형 축사는 닭에겐 천국과 같다. 이는 지난 수년간 동물권 옹호론자들이 끊임없이 추구해 온 것이었고 상당수의 소비자들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미 맥도널드, 스타벅스, 코스코 등 대형 소매업체들은 향후 10년간 개방형 축사에서 성장한 닭과 계란만을 수납하겠다고 공급업자들에 공식 통고했다.
유명 제과점 체인인 파네라 브레드도 최근 이 대열에 합류했다.
미국의 양계산업은 제법 우람한 몸집을 지니고 있다.
계란을 생산하는 2억7,000만마리의 암탉을 거느린 국내 양계업의 전체 규모는 100억달러 정도다.
현재 양계업자들의 당면과제는 축사 개선이다. 종이보다 더 작은 가로 8.5인치, 세로 11인치 크기의 폐쇄된 닭장이 줄지어 연결된 공장용 축사는 보기엔 초라하고 갑갑해 보여도 지난 긴 세월 업계의 수익성을 올리는데 기여해온 검증된 축사 모델이었다.
하지만 개방형 축사가 닭들에게 가장 좋은 주거 모델인지는 확실치 않다.
우리에서 해방된 짐승들에게 ‘무한 자유’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닭장에 비해선 훨씬 넓지만 여전히 울타리나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지내게 된다.
이제까지 나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에서 풀려난 짐승은 대체로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때에 따라서는 서로를 잡아먹거나 상대에게 부상을 입히기도 한다.
어쨌건 수익성에만 초점을 맞춘 공장형 닭장이 개방 축사로 전환되고 있는 것은 음식이 식탁에 올려져 뱃속으로 들어가기 전까지의 전과정에 대해 점차 예민하고 우려스런 반응을 보이는 소비자들의 심리에 농장기업들이 적응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큰 사례에 해당한다.
물론 개방 축사로의 전환 이전에도 의미 있는 변화가 없지는 않았다. 송아지와 암소의 꼬리를 자르는 낙농업계의 관행이 사라졌고, 일부 주에서는 수태한 암퇘지를 가두어두는 좁은 우리의 사용을 금지시켰다.
전국 2위의 계란 생산업체로 기존의 공장형 양계장을 개방형 축사로 바꾸고 있는 로즈 에이커 팜스의 최고경영자(CEO) 마르쿠스 러스트는 “현재 양계업계에 대단히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그러나 솔직히 말해 고기와 달걀을 얻기 위해 기르는 닭은 애완동물이 아니고, 애완동물과 동일하게 대우해 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납득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닭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널찍한 공간에 풀어 기른다고 해서 닭이 모든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개방형 축사에서 자란다는 것은 어디든 장소를 바꿔가며 살 수 있는 완전한 ‘거주 및 이전의 자유’와도 상관이 없다.
연방 정부의 현행 오개닉 규정은 폐쇄형 닭장에서 벗어난 닭들에게 실외 접근(outdoor access)을 허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개방형 양계장 운영자들은 대부분 헛간에 풀어놓은 수천마리의 닭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놓았다.
이런 환경은 닭에게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날아오르려다 서로 공중충돌을 일으키기도 하고, 축사의 고정 구조물에 부딪혀 부상을 입거나 죽는 일이 다반사다.
치명적인 자리다툼도 곧잘 벌어진다. 이 모두가 개방사육으로 방향을 전환한 양계업자들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업주들의 손실도 만만치 않다. 닭장에서 풀려난 암탉은 이전보다 알을 적게 낳는다.
통계에 따르면 10%가량 계란 생산량이 줄어든다. 이와 반대로 생산비용은 가파르게 치솟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최대 달걀 공급업체인 로즈 에이커 팜스와 미시시피 소재 칼-메인 푸즈, 아이오와에 기반을 둔 렘브란트 푸즈 등 3개 양계업체는 향후 10년에 걸쳐 노후한 닭장을 교체하거나 새로운 축사를 짓는 방식으로 점차 개방형 사육으로 진행해 나아갈 계획이다.
식란업계의 공식적인 입장은 다양한 닭 축사 시스템을 구축한 후 소비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원하는 타입의 계란을 구입토록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개방 축사에서 생산된 계란이나 오개닉 달걀을 12알 한판에 4달러 정도를 주고 구입하든지 아니면 폐쇄형 닭장에서 나온 계란을 판당 2달러 선에 사든지 선택권을 소비자에게 돌려준다는 얘기다.
그러나 계란 소비량이 많은 네슬레와 맥도널드 등 대형 푸드업체들이 완전한, 혹은 점진적인 개방 사육을 요구하고 있고 소비자들 역시 조금 비싸긴 하지만 자유를 맛본 닭에게서 생산된 계란을 선호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수천, 수만마리의 닭들이 좁은 닭장에서 풀려날 전망이다.
네슬레와 맥도널드는 각각 연간 20억개의 계란을 소비한다.
올 10월 현재 달걀을 생산하는 암탉 2,400만마리가 닭장에서 해방됐다. 2009년에 비해 두 배나 높은 수치다.
가주 주립대학 수의학 교수인 조이 멘치는 “이제는 누구도 전통적인 닭 축사를 짓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올해 초 가주 주립대학의 연구원들은 서로 다른 축사 시스템을 하나하나 비교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결과 개방형 축사에서 암탉의 폐사율이 더 높게 나왔다.
개방 축사의 폐사율이 13%인데 비해 전통적인 닭장 시스템에서의 폐사율은 5%에 불과했다.
수백, 수천마리의 닭들이 밀집된 축사에서 공중으로 날아오르려다 충돌해 가슴뼈가 골절되는 사례가 늘어났고 일부 품종 사이에서는 동종끼리 서로 잡아먹는 일까지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보고서는 또 계란 생산량마저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우리에서 벗어난 닭들의 생산량은 이전 대비 5~10% 감소한 반면 양계업자들의 운영비는 23%나 올랐다.
멘치 교수는 “현 시점에서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케이지-프리 시스템에 따른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이다”고 말했다.
그녀는 “앞으로 학계의 연구는 축사를 재설계하는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디애나주에 위치한 러스트의 회사는 1년 전 새로 지을 모든 축사를 개방형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건설비용이 전통적인 축사에 비해 2~3배나 비싸고 관리비와 운영비 또한 기존 축사에 비해 훨씬 많이 들지만 전반적으로 개방형 축사에서 생산된 달걀을 선호하는 추세가 폭넓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에 회사로서도 불가피한 선택이다.
러스트는 소비자들이 기꺼이 추가비용을 지불할 용의를 보이기 때문에 개방 축사로의 전환은 결국 수지 맞는 장사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어수룩하게 보이는 농꾼들이 실은 셈이 빠른 자본주의자”라며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 서면 개방형 축사, 방목, 오개닉 등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을 무조건 따르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왕이다.
<
김영경 객원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