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갖고 함께 나누며 살면 그게 봉사지요”

<사진 천지훈 기자>
자메이카 지역서 장사하며
흑인사회와 화합하는 길 터득
커뮤니티 서비스의 필요성 절감
KCS .유권자센터 등서 봉사
위안부 결의안.팰팍 기림비 등 업적
미하원 일본군위안부 결의안 채택, 미최초 뉴저지 팰팍 위안부기림비 등 한인이민사의 괄목할만한 업적마다 그의 족적이 선명하다. 미국생활 41년, 오늘도 지역사회 봉사 중인 정해민 재외한인사회연구재단 회장을 만나본다.
▲책임감
작년에 위 절제수술을 했지만 그는 여전히 활기에 차있고 의욕이 넘친다. 그 앞에서는 나이를 묻지말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컴퓨터를 다루고 기획을 하는 등 직접 실무를 하다 보니 서류에 치여 살지만 재밌다. 작년에 뉴욕상공회의소 제18대 회장 선거관리위원장을 할 때 위출혈이 왔다. 병원에 입원해서 투표용지, 현장 배치도, 명찰을 만들어 보냈다.”
2012~2014년 뉴욕한인상공회의소 상임고문을 할 당시 몸이 아파도 맨하탄 코넬병원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지 않았다. 아내가 노트북과 셀폰을 감추고 간호사가 말려도 소용없었다. 수술 직전 한시간마다 통증완화 주사를 맞아가며 맡은 일을 해냈던 그는 어찌 보면 책임감이 지나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해민은 말한다.“일단 단체의 장이 되면 책임감이 뭔가, 뭘 해야 하고,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 정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모든 일은 타이밍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오는 11월 7일에도 재외한인사회연구소 주최 학술대회를 앞두고 마음이 바쁘다. 퀸즈칼리지 재외한인사회연구소(소장 민병갑 석좌교수)를 후원하는 재외한인연구재단 회장으로써 조직을 더욱 확대하고 연구소를 확실히 돕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성공한 입양인 12명을 초청하여 그 스토리를 듣는다. 내년에는 그 스토리가 출판된다. 지난 5년동안 1년에 한권씩 책을 5권 내었다. 연구재단의 18명 이사가 행사를 앞두고 모일 것이다. ”
▲새로운 세계로
1936년 서울 출생인 정해민은 교육자인 아버지의 ‘근검절약’ 가훈 아래 성장했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10대와 20대 초반에 미군정 시절, 신탁통치 반대운동, 6.25 전쟁과 휴전 등 한국사의 가장 복잡하고 난해했던 시기를 살았고 대학생들은 매일 데모하는 것을 보았다.
서울사대부속 중고등학교와 서울대 법대 행정학과를 1955년 졸업한 후 대한중석, 국제화학 무역사업부 수입과장, 문교부 해외문화교류특별위원회 해외유학생 지도교수로 일하면서 해외로 눈을 떴다. 그는 새로운 세계로 가고싶었다.
74년 처형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아 미국 이민을 왔다. 아내 김영애와 함께 4살, 8살이던 두 딸의 손을 잡고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 내렸는데 그때 정해민은 38세 한창 나이였다. 뉴욕에는 퀸즈의 자메이카 지역에서 잡화상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뉴욕 온 지 한달만에 잡화상을 열었다. 자메이카 지역 빌딩과 빌딩 사이 가건물 공간에 샤터를 만들어 가게를 꾸몄고 친구가 잡화상 물건을 대주었다. 얼마 후 아내가 그 옆 가게에 패스트푸드점을 열었고 165가 스트릿 몰에 남자 옷가게를 또 열면서 10년간 3개의 가게를 동시 운영했다. ”
자메이카 지역에서 장사를 한 것이 한인사회 봉사 계기를 만들었다.
“저녁이면 돈 세기 바빴다. 그 거리에 한인자영업자가 10명 정도 있었다. 그때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한인들이 이 지역으로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몇달새 한인가게가 갑자기 100여개가 되었다. 가게가 몰려있으니 손님들이 소문 들고 와 더욱 규모가 커졌다. 뉴욕 3대 상업지역이 할렘, 브루클린 플랫부시, 자메이카 165가 지역이다. 자메이카 타운이 번창한 것은 한인 덕분이다.”
그는 20년간 장사를 하면서 혼자 잘 먹고 잘 살지 않았던 것, 같은 한인을 돕고 특히 한인이 흑인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도 연구했다.
“당시 흑인지역 한인 청과상에서 도둑을 잡자 시비가 일었다. 흑인 50~60명이 몰려와 가게 앞에서 연좌데모를 하니 장사를 못해 물건이 썩어갔다. 한흑간 갈등 원인을 찾았다.”
정해민은 자메이카 한인상인번영회 설립 및 초대이사장(1981~1983)으로 자메이카 흑인 대모라 불리는 ‘로라 카타’와 친분을 텄다. 그를 통해 흑인단체, 양로원, 학교 등에 TV, 와인, 장난감, 잡화용품 등을 기증하는 등 봉사활동을 시작하자 흑인들의 한인가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한인 가게에 흑인과 문제가 생기면 정해민은 자신의 가게를 문 닫고 찾아갔고 로라 카타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내 친구라고 하면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때 커뮤니티 서비스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위안부 하원결의안과 기림비
1994~1997년 뉴욕한인봉사센터(현 KCS)이사장으로 있을 때 공터 경매 뉴욕시 공고를 보고 김광석 사무총장과 함께 찾아갔다. 그때 20만1,000달러로 낙찰 받은 곳이 10년 넘어 200만달러를 받고 팔았고 지금의 KCS 건물의 종자돈이 되었다. (2013년 KCS 비전상 수상)
1999~2001년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현 시민참여센터) 자문위원장, 2001~2006년에는 이사장으로 활동했고 2001년~2006년 뉴욕시•청소년지역개발부(Citizenship of Youth and Community Development) 시민권 코디네이터로 일했다.
“아내는 패스트푸드 가게를 계속 하고 나는 가게를 정리하고 뉴욕시 공무원으로 일했다. 한인회, 교회, 단체를 찾아 시민권신청대행을 도와주어 총5,000명, 한인 1,500명이 시민권을 받았다. ”
정해민은 2006년부터 일본군 위안부하원결의안 (H.res.121)뉴욕추진연대 공동의장(정해민, 김영덕)으로 활동하며 한인이민사에 한 획을 긋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121뉴욕추진연대를 만들어 워싱턴 DC로 버스를 대절하여 10번 정도 왕복했다. 워싱턴 포스터 전면 광고비 3만달러, THE HILL 광고비 3,000달러, 교통비와 제반경비를 모두 우리가 도맡았다. ”
2년간의 준비 끝에 드디어 2007년 7월30일 미 하원 만장일치로 결의안 121(발의자 마이크 혼다 연방하원의원)이 채택됐다. 일본정부에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고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이었다.
“위안부 결의안만 통과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는 없었다. 그래서 팰팍 공립도서관 옆에 기림비를 만들기로 하고 골프대회를 통해 기금을 모았다. ”
비석돌은 버겐카운티행정부, 부지는 팰팍시가 제공했고 동판 등 제작경비는 시민참여센터와 기림비준비위가 맡아서 1년이 지나 2010년 10월23일 위안부기림비가 제막됐다. 이후 미국내에 제5의 기림비가 들어섰다.
정해민은 “위안부 하원결의안을 위해서 뉴욕시 공직을 사임했고 또 미주에 첫 번째로 세운 기림비 제작에 도움을 준 일 등 모두가 소신에 맞는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미국시민으로 사는 법
또한 정해민은 엘름허스트 한빛교회를 35년이상 다니는 원로장로로써 1986~1991년 한빛 한글학교 설립자 및 초대교장, 2008~2013년 엘름허스트커뮤니티센터 이사장, 2008년부터 현재 엘코스 상임고문 및 한빛상담실 실장으로 다인종 지역 봉사를 하고있다.
“봉사를 크게 보지 말라. 자기가 몸담고 있는 단체, 타운미팅들에 참가하여 이슈가 뭔지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단 20~30달러라도 기증을 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봉사란 함께 나누며 사는 것, 이것이 미국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역설하는 정해민. 그동안 미 하원 특별공로패 및 봉사상 등 여러 상을 받았지만 2009년 뉴욕시 공익옹호관 벳시 갓바움으로부터 ‘최우수 시민상’을 수상한 것이 가장 기쁘다고 한다.
정해민은 아내 김영애와 슬하에 두 딸을 두었고 큰딸은 리얼터, 작은딸은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로 손자3, 손녀1을 두었다.“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을 좋아하고 시편 23편을 자주 외운다”는 정해민, 한국인의 뿌리를 잊지 않으면서 미국내에 우리의 자존심을 알린 그, 든든한 뿌리에 잎이 무성한 거목 같다. 그 열매는 지금, 앞으로도 후손들이 한껏 누릴 것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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