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강원도 오대산 신라 상원사 종, 국립경주박물관 신라 봉덕사 에밀레종,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보신각종.
워싱턴에는 가히 명당이라고 할 만큼 넓고 아담한 언덕 위에 짜임새 있게 조성된 정겨운 한국식 종각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을 준공한 지 올해로 3년째다. 의연하게 솟아 오른 종각은 물론이고 한국식 담장과 대문, 정자를 낀 자그마한 연못, 줄지어 선 장승과 책을 펴 놓은 듯한 화강암 한글 기념석물에 제주 돌 하루방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 종각 공원의 대표 상징인 한국식 종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중-일과는 다른 우리만의 독자성 확보
과학성+예술성으로 세계문화유산 우뚝
1. 한국 종의 역사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국식 종은 불교의식과 연관되어 발전한 이른바 범종을 말하며 그 발생과 발전 지역은 역시 한중일 동양 3국이다.
세 나라 종의 모양은 서로 다른데 여기에서도 한국 종은 독보적 과학성의 추구와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한 수 위의 주조 표현 기술로 완성하여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적 명품을 만들어 냈다.
한국식 종의 시원은 신라 33대 성덕왕 시대로 불교의 전래 및 발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최고종은 성덕왕 24년(서기 725년)에 조성된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종이다.
구경 903mm에 높이 1,670mm로 그리 크지는 않지만 무게를 이기느라 부릅 뜬 눈으로 입을 크게 벌려 용을 쓰는 용뉴(등을 굽힌 용 모양의 종을 거는 고리), 도드러진 젖꼭지가 9개씩 솟아 있는 네 개의 4각 유곽, 그리고 휘날리는 구름 속에서 두 선녀가 주악을 연주하는 비천상이 압권인 명종으로 종소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다음은 봉덕사종 또는 에밀레종으로도 불리는 성덕대왕신종이다. 이 종의 조성 내력은 성덕대왕이 승하하자 왕 위에 오른 큰 아들 34대 효성왕은 즉위 2년째인 738년 부친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봉덕사라는 큰 절을 지었다.
형의 뒤를 이어 35대 경덕왕이 된 작은 아들은 아버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청동 12만근(약 72톤)을 모아 큰 종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한 채 승하하자 그 아들 36대 혜공왕(성덕왕의 손자)이 부왕의 뜻을 이어 혜공왕 7년(771년)에 드디어 완성하여 이 종을 봉덕사에 안치함으로써 봉덕사 종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실로 봉덕사의 건립부터 종의 완성까지 3대 33년이 걸렸으니 얼마나 큰 역사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종의 규모를 보면 구경 2,227mm, 높이 3,663mm, 두께 203mm, 무게 약 20 톤의 세계 최대 범종으로 종소리가 파동이 겹치는 맥놀현상을 일으켜 강약이 반복되는 장중한 여운이 마치 에밀레 에밀레를 반복하듯 오래 끄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리 뿐만 아니라 화려한 문양과 하대의 여덟 모서리 끝동 등 표현 예술이 극치를 이루는 세계적 문화 유산이다.
2. 한국 종의 구조적 특징
<종 걸이 용뉴>
중국과 일본 종은 두마리의 용을 기하학적 완전 대칭으로 설치한 쌍룡뉴인 반면 한국종을 보면 한 마리의 용이 등을 굽혀 고리를 만드는 단룡뉴와 바른 편에 굴뚝 모양의 음통을 설치한 비대칭으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 종의 대표적 특징인 이 음통은 종의 본체와 내부적으로 통해 있고 공기와 파동이 자유롭게 이동하도록 되어 있다. 이 음통은 거친 잡음을 걸러 내어 음향을 정화하는 필터(Filter)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 종만의 독창적 대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문양과 표현 예술성>
한국 종은 위 아래 띠를 이루는 상하대의 화려한 예술적 문양은 물론 허리에는 양쪽에 화려한 문양의 두 개의 비천상과 앞 뒤 두 곳에 연꽃 무늬의 종을 치는 당좌와 필요에 따라 명문을 형상화 하여 신라인의 뛰어난 예술성과 주조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신라 금관이 말해 주듯이 신라는 고도의 금속가공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치 방식의 차이와 신라종의 음향학적 배려>
중국과 일본 종은 바닥으로부터 4~5m 매다는데 비해 한국 종은 불과 30~40cm 높이로 낮게 매단다. 그대신 종의 바로 아래 바닥에 반구형의 확처럼 움푹 파진 명동(울림구덩이)을 설치한다. 이는 굴속의 소리가 크고 멀리 울리는 현상을 이용한 것으로 상단의 음통과 더불어 신라인의 음향학적 과학성을 말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신라 종 곧 한국 종은 한 마리의 용고리, 음통, 명동과 화려한 문양의 주조 기술에서 뚜렸한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3. 한국 종의 분포
신라와 고려시대 불교의 융성과 함께 범종 주조가 활발하여 다수의 명종이 탄생하였으나 조선조에 들어와 배불숭유 정책으로 불교가 억압받던 중 임진왜란의 병화로 많은 사찰이 불 타 없어지고 약탈을 당한 뒤에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 전쟁 때는 범종 향로 등 청동제품이 총포탄 재료로 징발 당하면서 그 숫자가 급감하였다.
현재의 분포상황을 보면 한국에 있는 온전한 신라 종은 강원도 상원사종, 경주 박물관의 에밀레종, 충주 박물관의 신라종 등 3구 뿐이고 일본에는 4구가 있다고 한다.
신라 종을 이어 받은 고려 종은 한국에 106구, 일본에 51구, 프랑스에 1구, 북한에 1구가 있고 신라 종과 뚜렸한 차이를 보이는 조선 종은 한국에 128구, 일본에 4구, 북한에 11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문화재 약탈의 아픔을 실증하고 있다.
4. 보신각 종
이 종은 조선 세조 14년(1468년)에 만들어진 조선 종으로 크기와 무게가 에밀레 종과 맞먹는 대 종이지만 신라식에서 벗어나 음통이 없는 중국식 용고리와 문양이 평이하여 예술성에서 한 수 아래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도성 백성에게 하루 두번 시간을 알려주는 종으로, 해방 후에는 신년제야, 3.1절, 8.15에 각 33번의 종소리를 울리어 서울 시만과는 친근한 국민의 종인 셈이다.
본래의 보신각 종은 1979년 보신각 중건 당시 종의 균열이 발견되어 중앙 박물관으로 옮기고 1984년 서울대학교 염영하 교수의 설계로 복제품을 만들어 대신 사용하고 있다.
메도우락 종각 공원의 종은 정통 신라 종의 계보와 설치 방식을 따르고 있어 소리가 제법 좋으니 워싱턴 동포들은 우리 문화의 우수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새해제야, 3.1절, 8.15에 타종을 제도화하여 지역 주민에게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것은 어떠할까?
우리의 종각 공원에 자부심을 갖자.
*자료출처: 서울대학교 출판부 간행 염영하 지음, <한국의 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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