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한인사회의 현안과 미래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주고 받은 참석자들. 왼쪽부터 김태원, 임소정, 황원균.
워싱턴 한인사회가 달라지고 있다. 이민 1세대들은 퇴조하고 1.5세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불경기가 장기화되고, 지식정보화 사회가 심화되면서 한인들의 경제력의 원천인 자영업 비즈니스들이 맥을 못 추는 현실이다. 이와 맞물려 한인사회도 예전의 활력을 잃고 침체 분위기에 젖어 있다. 이 전대미문의 파도가 덮치고 있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이 변화의 물결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워싱턴 지역 한인회장단, 평통 회장이 모여 허심탄회하게 작금의 현실을 진단하고 그 방향을 모색했다.
●참석자임소정 워싱턴한인연합회장(51, 임소정종합보험 대표)김태원 버지니아 한인회장(48, 한국자동차 대표)황원균 워싱턴 평통 회장(60, 영원무역 대표)
●장소: 본보 회의실●일시: 1월20일(화) 오후 5시
“한인커뮤니티는 물려줘야할 소중한 자산”
한인비즈니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마인드 절실해
한인간 유대 과거보다 감소, 커뮤니티센터 필요성 더 커져
한인단체 비슷한 행사 함께 해 경비 줄이고 분위기 업 해야
-한인사회가 예전 같지 않단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침체되고 활력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원인이 뭔가?황원균(이하 황): 우리 모두, 비즈니스 현장에서 피부로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물결이 요동치고 있다. 그러나 오랜 관성에 젖어 있다 보니 한인들만 그 변화를 제대로 절감하지 못하고 있다. 동포사회가 활력을 잃은 것도, 한인 비즈니스인 자영업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슬로우한 게 큰 영향을 미쳤다. 임소정(이하 임): 한인들의 의식도 많이 바뀐 것 같다. 난 80년대 후반부터 보험업을 시작했는데 그동안 한인 업주들이 대부분 바뀌었다. 80년대 한인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돈 모으는 재미로 산 것 같다. DC의 흑인촌에서 방탄유리로 자신들을 지켜내며 가게에서 먹고 자며 일을 했다. 물론 세상도 변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놀 거 다 놀고, 쉴 거 다 쉬어가며 일한다. 거기다 비즈니스 환경도 크게 바뀌었지만 예전 해오던 방식대로만 일들을 한다. 적응의 실패다. 그게 동포사회 침체의 한 원인이라 볼 수 있다. 김태원(이하 김): 25년간 미국생활하면서 망해도 봤고, 100불이 없어 아이의 저금통을 뜯고픈 충동을 느낄 때도 있었다. 불황이 10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많은 한인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 아픔과 좌절의 시간을 깊이 이해한다. 그래도 자신감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 희망을 가져야 목표가 생기고 삶의 생기가 돋아나고 성취할 수 있다. 동포 개개인이 갖는 희망이 다시 한인사회에 활력을 가져다 줄 것이다.
-불황 탓도 있지만 지식정보화 사회가 심화되면서 자영업에 의존해온 한인 비즈니스도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 같다. 한인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나름의 비전은 없나?임: 세탁소나 델리, 그로서리 등 한인들이 해온 자영업 비즈니스의 대부분이 영어를 잘 못해도 돈 버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고객과 비즈니스 환경이 혁명적으로 변했다. 지금은 영어로 고객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며 고객 프렌들리로 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 성공하려면 영어부터 배워야 한다. 또 과거 패턴으로 비즈니스를 해선 안 된다. 같은 업종이라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열심히만 해선 안 되는 세상이다. 김: 비즈니스를 하면서 큰 부침을 겪다보니 어떻게 하면 망하지 않는지 그 노하우를 나름 체험 습득한 것 같다. 20년 전의 고객과 지금의 고객은 살아온 경험과 의식이 다르다. 시장도 변했다. 이제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고객을 상대하는 자세로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시장 정보도 민감하게 공부해야 한다. 고객과 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업주만 뒤처지면 살아남을 수 없다. 황: 애난데일의 식당가를 찾으면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똑 같다. 새로운 메뉴, 새로운 인테리어, 새로운 마케팅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아이비리그 출신의 2세가 DC에 한국식 포장마차 식당을 내 대박을 터트렸다는 보도를 봤다. 떡볶이와 오뎅 등 한국 메뉴도 있지만 일본식도 가미한 퓨전 음식들을 많이 개발해 히트를 쳤다. 고급화 되고 저마다 독특한 칼라로 승부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
-능력 있는 엘리트들이 한인사회와 거리를 두고 있다. 자질이 떨어지는 일부 단체장들이 떠들어대는 분위기가 싫다 한다. 한인회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방법은 없나? 김: 편견이 사람 잡을 수도 있단 말이 떠오른다. 한인회에 참여도 안 해보고 “니들이 뭔데” 이런 식으로 섣부르게 재단해서는 안 된다. 편견을 바꾸려면 우리부터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안다. 버지니아 한인회는 어떤 일을 하는지 직접 보여주면서 편견이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황: 맞다. 네거티브한 생각을 바꾸려면 지금 잘 하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한인단체를 밥이나 술만 먹는 모임으로 오해하는 분들도 본다. 그래서 평통은 회의를 오후 3시에 하기도 한다. 밥과 술을 없앤 회의다. 임: 한인회에 능력 있는 분들이 안 나오시려고 한다. 뒤에서 도와주겠다는 식이다. 누군가가 싫어 참여 못하겠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임원진 구성에 힘들었다. 정직하고 겸손하며 올바르게 운영하면 능력 있는 분들이 한인회에 많이 나올 것이다. 먼저 보여준 다음 “도와주세요”라고 하는 게 순서란 생각이 든다.
-한인사회의 활성화나 지속을 위해 한인커뮤니티 센터 건립이 추진되고 있지만 속도가 나지 않는다. 정말 건립될 수 있는 것인가?김: 얼마 전 아들의 농구시합 때문에 주이시 커뮤니티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게 우리들 꺼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시작이 반이다. 1세대들을 주축으로 모두가 힘을 합치면 우리 손으로 우리들의 센터를 세울 수 있다. 커뮤니티 센터는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 당위성이다. 임: 센터 건립에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 한인사회에서 1세와 2세가 다 모이는 공간은 교회 밖에 없다. 2세들은 한국어도 잘 못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이 다니시니 함께 다닌다. 그렇지만 교회는 종교기관이라 일반인들에는 거리가 멀다. 커뮤니티 센터는 종교와 나이, 성별을 떠나 모든 한인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이다. 한인사회의 재원이 교회로 몰리고 있는 만큼 센터 건립에 교회와 성당 등 종교기관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황: 주이시 센터에서 두 차례 브리핑을 받으며 느낀 게 많다. ‘쎄네카’라는 커뮤니티 교회에서 재정지원을 하고 정치로비단체인 ‘에이팩’에서도 700만불을 지원해 건립했다 한다. 워싱턴 지역에 300여개의 교회가 있고 좋은 프로그램들을 운영하지만 교인 아니면 참여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커뮤니티 센터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종교기관들이 센터 건립을 도와주는 건 또 다른 선교다. 커뮤니티 센터는 돈만 갖고 짓는 건 아니다. 돈과 염원, 정부의 지원, 세 박자가 맞아야 한다. 그 여건이 성숙됐다. 센터는 반드시 건립된다.
-이러다 10년 뒤에는 한인사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워싱턴 한인사회가 다시 활력을 되찾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임: 한인사회가 없어도 잘 사는데 뭣 하러 그런데 가느냐는 인식이 많다. 소수계인 한인들의 권익을 위해서는 커뮤니티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얼마 전, 베트남 커뮤니티 회장 취임식에 갔었다. 400명이 왔는데 여러 단체들이 모이고 1세와 2세들이 함께 잔치 분위기로 행사를 하는 걸 보고 우린 왜 안 될까를 생각해봤다. 모든 단체들이 뭉쳐야 한다. 비슷한 행사는 함께 해 경비나 시간을 줄이고 잔치분위기로 가야 한다. 그때가 온 것 같다. 모두들 피로도가 쌓여 있다. 김: 커뮤니티는 부모와 자식들에 세습되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자라나는 2세들을 커뮤니티에 참여시키는 게 중요하다. 내가 입후보 했을 때와 취임식에 자식들을 일부러 동행시켰다. 3.1절이나 광복절 행사 같은데 글짓기나 그림대회 등 즐거운 행사를 통해 2세들을 한인 커뮤니티에 참여시켜야 한다. 어르신들만의 행사가 되어선 안 된다. 그래야 2세들이 한인 커뮤니티를 이해하고 성장해서도 애정을 갖고 참여하게 된다. 어르신들과 2세들이 모두 모이는 행사가 될 때 커뮤니티는 영속된다. 그리고 서로 칭찬하는 한인사회가 됐으면 한다. 그래야 서로간의 불신도 씻고 자주 만나며 커뮤니티가 발전한다. 서로 칭찬해줍시다. (일동 웃음)황: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는 말이 생각난다. 남을 폄하하는 걸 삼가고 나쁜 점 보다는 좋은 점을 이야기 하자. 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모두 힘을 합쳐 부스팅(끌어올려야)해야 한다. 한인회는 구심점이 돼야 한다. 모두가 자신감을 갖고 잘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임하면 경기는 곧 풀릴 것이다. 올해는 전진하는 동포사회가 됐으면 한다. <진행/ 이종국 기자>
-70년대 이민 온 1세대들이 사라지고 있다. 1.5세들이 커뮤니티에 등장하면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양 세대간 가치관과 경험, 삶에 대한 태도나 일의 방식 등 많은 차이가 있을 텐데 어떻게 조화를 이뤄나갈 것인가?
김: 명절에 노인아파트에 계시는 부모님을 뵈러 가면 입구에서 자식들을 기다리는 한인 노인분들이 많으시다. 민망하기도 하고 가슴이 찡하다. 한인사회가 세대교체는 되고 있지만 1세대들에 존경심을 갖고 연대해야 한다. 한인회도 부모와 자식세대가 함께 하는 행사를 많이 만들 계획이다.
황: 과거에 비해 동포들이 함께 하는 행사가 많이 줄었다. 이왕 하는 행사라면 동포들이 함께 하는 잔치 분위기로 가야 한다. 3.1절과 광복절 행사도 마찬가지다. 1세대들과 2세대들이 함께 즐기는 행사로 갈 때 한인사회의 활력도 더 생긴다.
임: 제 부모님도 70년대 이민 오셨다. 그 때는 한인들 간에 정을 나누고 커뮤니티도 화기애애했다 한다. 요새는 길에서 한인들 만나면 피하는 분위기다. (일동 웃음) 전에는 같이 고생하고 뭉치며 살았는데 요즘 이민 오는 분들은 한국에서부터 많은 정보를 갖고 오기에 한인 간의 유대의 필요성을 덜 느끼는 것 같다. 또 교회가 자체 커뮤니티 역할을 하니 한인사회의 필요성도 줄어드는 것 같다. 그래서 커뮤니티센터가 더 강조 되는 것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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