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정확하게 20년 전에 ‘평양역에 노랑리본을’이라는 장편소설을 낸 적 있다. 그때 소설원고를 들고 서울에 가서 선배 작가와 상의를 했다. 그 선배는 한국사람들은 노랑리본의 뜻도 모르고, 당시 평민당의 색이 노랑이라 거부반응이 있을지 모른다며 제목을 바꾸라고 했다.
미국에서 노랑리본의 의미는 생사의 기로에 처해있는 참전용사들이나 기약 없이 집을 나가 생사를 알 수 없는 가족들의 무사 귀가를 기다리는 염원의 뜻이라고 설명했지만 그 선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한국사람 모두가 노랑리본의 의미를 몰라도 나는 그 제목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은 1945년 압록 강변 두메산골에서 자란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소녀는 남녀평등, 지주타파, 노동 농민들을 위한 정치, 특수 계급타파 라는 김일성의 공산주의에 반해 혼자 평양으로 가서 학창시절 당에 충성을 다한다. 그 결과 평양광장에서 열린 8.15 세돌 기념행사장 단상 위에서 김일성의 꽃 동이까지 하지만, 학교 내의 불합리함을 지적했다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다.
그 때 옥바라지를 해 준 첫사랑과 6.25가 터지던 날 헤어지며 일년 후 평양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혈혈단신 남한 일대를 떠돌다가 결국 남미까지 가게 된다. 브라질에 안착하면서 평양역에서 첫사랑을 만나겠다는 평생 소원을 이루려고 나에게 책을 쓰게 한 것이다.
전시에 미국사람들은 노랑리본 스티커를 차에 붙이든지 노랑리본을 단다. 한인타운에는 한국계 미국시민도 많고 단체들도 많지만, 걸프전과 이라크 전쟁 때 노랑 리본을 외면해서, 나와 남편이 두 차례 전쟁 때 노랑리본 달기 캠페인을 했었다.
나는 이렇게 남달리 노랑리본과 연관이 있어 지금 한국의 노랑리본 달기에 대해 감회가 깊은 동시에 이상한 의문이 생긴다. 언제부터 한국국민들이 노랑리본을 알게 됐으며 어느 단체가 주도한 일인지가 궁금하다.
어제 한국에서 온 한 여행자가 푹푹 한숨을 쉬면서 “지금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 집과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애국할 때이지 어디 노랑리본을 달 때입니까?” 라고 했다. “왜 미국 사는 날 보고 그 말을 하나? 돌아가서 동네사람들 모아놓고 하라”고 했더니 이런 말을 한다.
“요즘은 부모가 죽어도 상주노릇 한 달 가지 않는데 정치인들이 눈치 보느라고 가슴에 노랑리본을 달고 다닌다. 언제까지 온 국민이 세월호 상주노릇을 해야 하는지… ”요즘 인터넷으로 그런 류의 나라 걱정의 글도 많이 쏟아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말레시아 비행기가 미사일에 폭파당해 여행자 수 백 명이 죽었다. 인명재천, 죽음에 자유로운 인생이 있을까? 죽음은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기에 아무리 억울한 죽음도 대항할 수 없지 않은가. 죽음의 기를 물리치지 못하면 또 죽음이 잇따른다.
한국의 일부 젊은이들과 진보세력은 미국을 싫어하면서 왜 미국의 노랑리본 달기는 따라하는지, 차라리 삼베리본을 달아야 민족자존심을 지킬 것 아닌가.
불행을 감싸 안으면 행복이 도망치고 희망의 빛도 거둬진다. 이별은 품을수록 아픔만 더 할 뿐이다. 이제 아무리 억울하고 아파도, 앞세운 사람들과 노랑리본을 가슴에 묻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희망을 품고 새 삶에 도전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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