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대 갱조직-정치인 ‘검은 커넥션’ 일망타진
▶ 언더커버 정보요원 수십명 7년간 수백만달러 자금 투입, 중국계 폭력조직 두목-비리 정치인 등 29명 일거에 체포, 용의자들 “함정 없었다면 불법도 없었다” 변호전략 세워
미 연방수사국(FBI)의 함정수사 결과 뇌물수수 혐의로 체포된 리랜드 이 가주 상원의원.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의 최대 범죄조직인 치컹통의 우두머리 레이먼드 초우. 그는 무기밀매 혐의로 지난달 26일 FBI에 체포됐다.
미 연방수사국(FBI) 함정수사로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이 들썩이고 있다. 이곳을 통치하는 ‘검은 세력’인 치컹통의 우두머리 레이먼드 초우가 FBI가 쳐놓은 정교한 덫에 걸려 쇠고랑을 찼고, 캘리포니아 정치권의 유망주이자 차이나타운의 최대 후원자로 꼽히던 리랜드 이 주상원의원 역시 돈 세탁과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지난달 26일 체포됐기 때문이다. 차이나타운을 쥐고 흔들던 최대 갱 조직과 이 지역을 대표하는 유력 정치인이 사법당국의 함정수사로 한꺼번에 법망에 걸려 들었으니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중국 커뮤니티가 술렁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중국계 폭력조직들의 결사체인 치컹통은 사채업에서 무기 밀거래에 이르기까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무모함 탓에 ‘동종업계’ 내에서도 악명이 높다.
홍콩 마피아인 삼합회(트라이어드)의 일원으로 ‘새우 소년’이라는 별명을 지닌 초우는 지난 2006년 8월 치컹통의 최고 보스인 ‘용두’자리에 오르면서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을 통째로 손 안에 넣은 인물이다.
그가 샌프란시스코 암흑가의 대부라면 리랜드 이 의원은 차이나타운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지역 사회의 수호신으로 자리매김한 야심만만한 정치인이다.
이들은 모두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합법적이건 불법적이건 힘의 근원인 조직을 관리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서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조폭들은 물론이고 힘을 갖고 싶은 정치인들 역시 검은 돈의 유혹에 흔들리게 된다.
FBI가 수백만달러의 공작금을 투입해 함정수사를 펼친 것도 이들의 허점과 성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FBI 특별수사팀의 함정수사는 장장 7년에 걸쳐 전개됐다. 사업가, 혹은 마피아로 위장한 수 십명의 요원들은 현금을 물 쓰듯 써가며 이들에게 접근한 후 거부하기 힘든 ‘위험한 제안’을 내놓았다.
먹음직스럽지만 일단 물면 법의 그물에 걸려드는 미끼를 던져줌으로써 이들의 발 앞에 깊은 함정을 파놓은 것이다.
여기에 들어간 활동자금은 FBI가 지속적인 소탕작전을 통해 다른 범죄조직들로부터 압수한 검은 돈이었다.
언더커버 요원들은 수시로 공작 대상들을 고급 식당으로 데려가 식사와 술대접을 해가면서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불법적인 사업을 제안했다.
비밀요원들은 초우와 회동할 때마다 한 잔에 240달러가 넘는 고급 칵테일을 무제한 대접해가며 무기거래의 거간꾼으로 나서달라고 끈질기게 매달렸다. FBI의 감시가 심해 자신들이 직접 나설 수 없으니 그가 대신 총기를 매입해 넘겨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한 자루에 수백달러에 불과한 총기를 자루 당 수천달러에 사들이겠다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초우는 결국 미끼를 물었다. 총기를 구입해 되판 후 FBI로부터 5만8,000달러의 ‘팁’도 챙겼다. 확실한 증거를 남긴 채 제대로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는 3월26일 무기 밀거래혐의로 체포됐다.
같은 날 리랜드 이 의원도 사무실에도 FBI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그는 사업 확장을 위해 정치권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접근한 사업가로부터 선거자금 명목으로 수만달러의 뇌물을 받았다가 꼼짝없이 법의 그물에 걸려들었다. 이 의원이 ‘사업가’로부터 마지막으로 건네받은 서류가방에는 현금 2만달러가 담겨 있었다.
영화를 방불케 하는 FBI의 ‘스팅’(함정수사)으로 체포된 조직 폭력배와 비리 정치인은 모두 29명. 7년간 수십명의 언더커버 요원들이 수백만달러의 공작금을 투입해 수확한 결실이다.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이들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재판을 앞두고 초우와 이 의원의 변호인단은 FBI의 함정수사를 걸고넘어진다는 변호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의뢰인들이 범죄를 저지른 것은 FBI 언더커버 수사관들의 끈질긴 회유 때문이었다는 주장이다. 수사관들의 회유와 종용이 없었다면 피고인들이 법을 위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다.
함정수사를 둘러싼 논란은 예전부터 있어 왔다. 특히 매춘부로 위장한 여성 경관들에게 접근했다가 체포된 남성들은 범법행위의 원인 제공자가 바로 경찰이라며 법정에서 역공을 펼치곤 한다.
함정수사의 주된 표적은 테러 용의자와 비리 공직자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지난 2010년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파이어니어 코트하우스 스퀘어에서 열린 성탄트리 점등식에서 폭탄을 터뜨리려다 체포된 모하메드 모하무드는 지하드 전사로 위장한 FBI 언더커버 요원들의 꼬드김에 따라 범행을 저질렀고 가짜폭탄 역시 그들이 제공한 것이었다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0년에서 2011년에 이르는 기간 이라크의 알카에다에 수천달러의 현금과 상당량의 무기를 보내려 시도한 혐의로 체포된 모하나드 샤리프 함마디도 “애초부터 범행의도가 없었으나 FBI의 함정수사에 걸려들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연방 항소법원은 그의 정상참작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다.
노터데임 대학의 법학교수이자 전직 연방 검사인 지미 그루레는 “함정수사를 물고 넘어지는 변호전략이 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제까지 나온 연방 대법원의 판결은 함정수사에 호의적이었다. 연방 법무부의 함정수사 가이드라인도 언더커버 요원들에게 수사 대상자 특정과 관련해 상당한 재량권을 부여한다. 그 바탕에는 함정수사로 ‘범죄와의 전쟁’에서 가시적 결과를 올릴 수 있다는 인식이 폭넓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사실은 초우와 리랜드 이 의원이 FBI의 함정수사를 빌미삼아 법망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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