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였다. 버지니아주 내 공립교에서 사용되는 교과서에 일본해 옆에 동해라는 단어를 하나 첨가하는 작업은 쉬운 듯 하면서도 의외로 험난했다. 지난 해 선거에 출마한 주지사 후보들을 비롯 굵직한 정치인들이 줄을 지어 ‘동해병기 지지’를 표명했을 때는 일사천리로 의회를 통과될 것 같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돌발적으로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캠페인 관계자들을 긴장케 만든 여러 일들 가운데 주하원 교육 소위에서 4대4 찬반 동수가 나와 법안이 위원장의 직권으로 폐기될 뻔 했던 상황이 첫 장애물. 공화계 의원들의 기지로 다음날 다시 표결에 붙여지고 자리를 비웠던 의원의 찬성을 얻어내 위기를 넘겼다. 상원에서 루이스 루카스 교육위원장이 압도적인 숫자로 하원을 통과한 법안을 깔아뭉갰을(sitting on it) 때가 두 번째 위기. 하원으로 넘어온 상원 법안을 기필코 통과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이 됐고 팀 휴고, 마크 김 등 중심에 섰던 의원들은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통과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은 표결을 앞두고 가진 20여분의 정회 시간에 갖게 됐다.
방청석에 있는 한인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올라온 데이빗 마라단 의원(공화)과 마크 김 의원(민주)은 “통과된다”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팀 휴고의 보좌관이 올라와 “안심하라”며 먼저 기자회견실로 내려가 준비하자고 했을 때는 거의 확실하다는 느낌이 전달됐다. 결과는 82대 16. 예상대로 였다.
◎- “민주주의는 살아있습니다.” 법안이 통과하고 곧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크 김 의원이 뱉은 일성이었다. 그는 “상원에서 정파주의와 정치적 놀음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결국 성공했다”며 “최선을 다해 한인들이 일한 결과”라고 공을 한인들에게 돌렸다.
그는 또 “절대 외교 분쟁의 소재가 될 수 없는 버지니아주 내의 일이었는데도 국제적인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아쉽다”면서도 “대신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제사회가 서로 대화하고 갈등의 해결점을 찾아가자”고 덧붙였다.
법안을 지지했던 의원들의 자축 메시지는 계속 이어졌다. 스콧 링검펠터 의원(공화)은 “약간의 범프(bump)’가 있었지만 어느나라 보다 절친한 동맹인 한미 두 나라가 어깨를 맞대고 큰 일을 해냈다”며 “권익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나타난 좋은 사례”라고 설명했다.
데이비드 라마단 의원은 “같은 이민자로서 한인들과 늘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리차드 블랙 상원의원(공화)은 월남전에서 한국 해병들과 함께 싸웠던 과거를 언급하며 “동해병기법안은 한인들의 마음(heart)이 담겨 있는 특별한 법안이었다”고 강조했다.
바브라 캄스탁 의원(공화)는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한 마음이 될 때 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한인들을 추켜세웠으며 한인이 부인인 챕 피터슨 상원의원(민주)도 “이번 일은 초당적으로 일궈낸 역사임을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 한인사회 내에서 선거 때마다 누구보다 확실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니어들은 동해병기법안 통과의 일등공신으로 불릴만 했다. 시민권 취득과 유권자 등록 비율을 따질 때 한인 시니어들은 사실 미 정치인들이 가장 눈치를 봐야할 대상. 이들은 법안 표결 때마다 방청석을 메우고 의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대단했다는 게 캠페인 관계자들의 평. 김상균 리치몬드한인회 회장은 “이번 캠페인을 통해 의원들이 유권자들을 얼마나 의식하는지 확인했다”며 중요한 시점마다 의원들의 투표를 지켜본 한인 시니어들이 의원들의 표심을 단속하는 빗장이 됐을 것이라고 평했다.
또 때마다 노인 아파트를 돌며 한인 시니어들을 인솔해온 우태창 워싱턴통합노인회 회장은 “70대에서부터 90대까지 몸의 불편함을 아랑곳하지 않고 참여해준 노인들은 정말 대단했다”며 7,000만 한인 동포들이 새 역사를 만든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번에도 300여명에 이르는 한인들이 동원될 수 있었던 것은 워싱턴한인연합회(회장 린다 한), 미주한인의목소리, 노인회와 같은 캠페인 주관 단체들의 희생과 함께 여행사, 교회 등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신바람 관광이 버스를 무료로 대여해 큰 도움을 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회의 시간이 1시간 앞당겨지면서 버스 출발 시간도 8시30분에서 7시30분으로 변경돼야 했고 이 사실을 모르고 애난데일로 온 30여명의 한인들은 버스가 떠난 줄 모르고 한참을 기다리다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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