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TV에서 단막극이 매주 방송되던 시기, 멜로드라마 영화에 주로 떨어지던 악평은 ‘베스트극장’ 한 편 본만 못하다는 것이었다. 범죄 스릴러 영화에도 미드 한 회분만큼의 재미도 없다는 평이 가능해 졌다. 2000년대 들어 본격적인 범죄수사 시리즈가 봇물 터지듯 제작돼 세계적으로 방송되면서 범죄 영화는 웬만치 만들어서는 높아진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CSI’ ‘NCSI’ ‘특수수사대’(Law & Order), ‘본즈’ ‘크리미널 마인드’ 등을 통해 온갖 과학수사, 프로파일링 기법에 익숙해진 데다가 ‘멘탈리스트’ ‘라이 투 미’ ‘미디엄’ ‘한니발’ 등 심리·심령 수사물까지 섭렵한 터라 어지간한 범죄수사 드라마로는 감동과 감탄을 이끌어내기는 어렵게 됐다. 범인 체포에 초점을 맞춰 한 회 분량에 모든 것을 담아내야하기에 비약이 심하기는 하나 스피디한 전개로 인한 속 시원한 재미와 그럴듯한 핍진성을 획득한 시리즈물의 영향 탓일까, 10월2일 개봉 영화 ‘프리즈너스’는 범죄 스릴러 영화로는 너무 느린 진행과 그 중간중간 뜬금없이 툭툭 떨어지는 단서들이 긴밀하게 설명되지 못하면서 느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용은 이렇다. 미국의 어느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교외마을, 추수감사절을 맞아 켈러(휴 잭맨) 가족은 한 동네 사는 프랭클린(테런스 하워드)의 집을 방문해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인종은 흑백으로 다르지만 두 가족 모두 10대와 예닐곱 살 된 두 아이를 둔 비슷한 또래 부부로 구성돼 공감대를 형성하며 친해졌을 것이다. 켈러의 둘째 애나(에린 제라시모비치)가 프랭클린의 둘째 조이(키일라 드루 시몬스)와 집으로 돌아가서 잃어버린 빨간 호루라기를 함께 찾겠다며 나선 것이 사건의 시작이다. 두 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사건현장 근처에 있던 캠핑카 운전자 알렉스(폴 다노)가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지만, 그는 10세 정도의 지능을 지닌 정신지체자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그러나 그는 켈러가 들을 때만 실종된 아이들과 관련된 문장을 한 번씩 던진다. 그를 거두고 있는 숙모 홀리(멜리사 레오)의 말로는 정신장애인인데도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도 수상하다. 키우는 개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는 것도 목격된다.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자 켈러는 결국 알렉스를 납치해 범죄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가둬놓고 고문한다.
진범이 따로 있다고 믿는 형사 로키(제이크 질렌할)는 인근 성범죄자들을 탐문하던 중 고주망태 상태의 늙은 신부(렌 카리우)의 집 지하실에서 미라가 된 남자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가 16명의 아이들을 살해했다고 고해성사를 했다는 진술을 한다. 아동옷가게 점원으로부터 제보받은 또다른 용의자 밥(데이비드 데이스트멀치언)의 집을 덮치고, 온갖 미로가 그려진 벽, 토막 난 돼지 시체, 뱀과 피 묻은 아이옷으로 채운 검은 상자를 발견한다. 그가 진범일까, 혹은 공범일까. 아이들의 자취는 오리무중인 채 그는 총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그 후 밝혀진 그의 과거. 알렉스가 사라진 것을 안 로키는 실종사건 수사 중에 켈러를 의심해 감시하기에 이르고, 결국 그들은 흩어진 퍼즐을 맞춰 시간차를 두고 진범이 누구인지 파악하게 된다.
두 아이의 실종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중산층이 모여 있는 주택가를 온통 헤집어 놓게 되고, 그 와중에 그 집들이 숨겨놓은 비밀들이 하나씩 들춰진다. 평범해보이던 이웃들이 알고보니 연쇄납치살해범부터 시작해 경악할만한 사연을 지닌 이들이다. 그런데 연출은 이러한 공포감과 긴장감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다. 게다가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뜻하지 않게 맞이한 충격으로 정신병자가 돼버린 인간들의 언행을 일일이 이해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이유가 하나같이 불분명하다. 감독이 파놓은 함정을 피해가며 어림짐작으로 알아서들 해석해야 한다.
감독 드니 빌뇌브(46)는 캐나다 퀘벡 출신으로 전작 ‘그을린 사랑’(2010)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할리웃으로 진출했다. ‘그을린 사랑’에서도 잔잔하게 미스터리를 풀어가다가 충격적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데, ‘프리즈너스’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반복한다. 자신만의 섬세한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범죄영화로는 신선한 시도라고 평가될 수 있겠다. 구름 끼고 비오고 눈보라 치는 날씨, 무채색의 옷들, 회색빛으로 점철된 화면은 미술적 완성도가 높다. 그래도 153분이라는 러닝타임은 너무 늘어진다.
경찰이 추정하는 납치아동의 생존가능 시간은 168시간. 1주 내에 찾지 못하면 시체로 돌아올 확률이 절대적이다. 아무리 연방수사를 맡은 FBI나 NYPD, LAPD처럼 강력범죄가 흔한 대도시 경찰이 아니더라도 미 전역에 실종 경보시스템이 작동했다는데, 파트너도 없이 형사 한 명이 혼자 동분서주하는 것도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각본은 애런 구지코우스키라는 ‘초짜’ 작가의 작품으로 2005년 한 시나리오 선발대회에서 수상한 후 오랫동안 할리우드를 떠돌아다니며 영화화되지 못했다. 브라이언 싱어, 앤턴 후쿠아 감독과 크리스천 베일,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마크 월버그 같은 배우들이 꾸준히 관심을 보였으나 마침내 할리우드에 막 발을 들인 드니 빌뇌브에 의해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뉴시스 김태은 문화전문기자>tekim@newsi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