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업 후 2년반은 적자… `맛있는 무제한 고기집’ 손님들이 알아줘 아끼지 않고 좋은 것 드리는 서비스 , 이제 2호·3호점으로 결실
“성공신화요? 에이~ 아니에요” 우국의 변용국(48)대표는 말을 꺼내자마자 손사레부터 쳤다. 2008년, 최악의 불경기 속에서 오픈했던 우국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버틸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 하지만 그 우려는 곧 ‘잘 되는 비결이 뭘까’의 부러움으로 바뀌었고, 주말에는 웨이팅을 각오하고 가야하는 곳이 됐다. 2호점이 문을 열었고 3호점도 곧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이정도면 목소리를 높여가며 ‘성공’을 논할 법도 한데, 변 대표는 한사코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성공’앞에서 겸손함을 보인 그가 ‘고기 퀄리티’를 얘기하자 180도 돌변(?)했다, “한인타운 무제한 고기 집들 중에서 우국보다 더 싼 가격에 더 좋은 퀼리티를 쓰는데가 있다고 하면 가게를 그냥 내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사실이기 때문에’ 나오는 자신감이었다. <박지혜 기자>
- 최악의 불경기라는 2008년에 오픈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사실 시작은 한창 경기 좋고 식당 개업이 붐을 이뤘던 2006년경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막차를 탄 거였다. 더 일찍 열 수도 있었는데 공사가 생각보다 지연되면서 오픈까지 20개월이나 걸렸다.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불경기가 시작된 타이밍이었고 방법이 없었다. 우국의 지금을 보는 분들은 원래부터 잘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픈 하고 2년 반 동안은 너무나도 고생이 많았다.
- 어떻게 버텼나
▲순익분기점도 못 넘기는 날들이 2년 반 동안 이어졌다. 특히 그 당시는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타운의 전체적인 고기집 분위기가 무제한이라는 특이한 성향으로 바뀌고 소비자들도 그쪽으로 움직이던 때였다. 처음에는 무제한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절대로 바꾸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러다 1년 동안 하루에 두 번 이상을 타운내 식당 주차장을 돌아보면서 손님들이 다 어디에 가 있나를 확인했다. 결국 ‘시장 자체가 무제한으로 돌아섰다면 그 시장에 뛰어들어 1등을 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 무제한을 시작하는 것도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마지막 탈출구라는 생각으로 뛰어든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퀄리티 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오픈할 때 최고의 고기집이 되기 위해 선택했던 고기 리스트, 똑같은 품목을 무제한으로 손님들에 제공했다. 그때 가격이 24.99달러였는데 당시 타운에 무제한 고기집들 가격이 9.99~17.99달러 선이었다. 1인분에 30달러는 받았어야 했는데 가격을 낮춘 것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은 비싸게 생각한다는 것에 갈등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 2개월 정도는 아무런 마케팅도 안하고 손님이 오면 “저희도 무제한을 합니다”라고 운을 띄우는 정도로만 시작했다. 무제한도 원래 내던 고기랑 똑같이 드린다고 말씀 드리고. 처음에는 손님들도 반신반의 하다가 결국에는 차츰 인정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정말 말 그대로 뭔가 확 터지듯이 시작됐다.
- ‘언제’‘어떻게’ 터졌나.
▲무제한을 시작한지 4개월째 쯤 때마침 연말이었다. 손님들이 몰려드는 시기였는데 그때 덕분에 ‘우국은 무제한도 좋은 고기를 주는구나’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이후에는 고공행진이었다. 매상이 200%가 늘었다.
- 결론은 좋은 퀄리티 덕분이었다는 말인가
▲‘좋은 음식을 좋은 가격에 파는 것’이 해답이었다. 음식이 맛있는 집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을 볼 수 있지만, 싸기만 한 곳은 그렇지 않다. 힘들었을 때 가격을 낮춘 적은 있지만 퀄리티는 낮춰본 적이 없다. 주변에서 ‘우국이 쓰는 고기가 대체 뭐냐’고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다고 듣는데, 확실한 것은 우국은 한번도 고기를 바꾼 적이 없다는 점이다.
- 고기가 좋아도 무제한 집에는 서비스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손님들 사이에서는 ‘일부러 여러 번 부를 때까지 안 온다’ ‘처음 고기는 좋은 거 주고 두 번째부터는 나쁜 것을 준다’는 이야기가 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실 그런 ‘꼼수’를 부릴 여유조차 없다. 한 테이블에서 고기 주문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그 주문을 늦지 않게 빼주는 것 만으로도 주방은 전쟁이다.
- 서비스 개선을 위해 우국이 노력하는 점은 무엇인가
▲종업원들에게 항상 얘기하는 것이 ‘절대 아끼지 말라’는 것이다. 손님이 찾기 전에 한 발 먼저 달려가고 먼저 좋은 것을 조언해주라고 교육한다. 특히 1호점은 직원의 반 이상이 오픈멤버라 이제 서로 눈만 봐도 손발이 착착 맞을 정도다. 옐프에서도 서비스에 대한 칭찬이 높은 편이다. 2호점은 처음부터 주방을 두 배 이상 키워서 무제한에 맞게 설계했다.
- 고기 외에 우국에서 자랑하는 메뉴가 있다면
▲‘갈비탕’과 ‘십채 궁중비빔밥’ 이 두 메뉴는 타운 내 최고라고 자부한다. 처음 휘청거렸을 때 우국을 잡아준 메뉴들이기도 하다. 특히 갈비탕은 고베 백립을 따로 주문해서 만든다. ‘십채궁중비빔밥’은 LA 위클리에서 ‘남가주에서 꼭 먹어봐야할 레스토랑 메뉴’로 선정되기도 했다.
- 요리를 안 한다고 들었다. 요식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군대 제대하고 스물다섯에 처음 미국에 왔다. 91년부터 봉제공장에서 시작해서 자바시장 옷가게에서도 일했는데 그때 많은 사람들을 통솔하고 책임자로 일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와이프랑 둘이서 열심히 일하고 한두 명 정도의 직원만 있어도 충분한 일이 뭘까를 고민하다가 커피샵이라는 답을 내렸다. 94년도에 6가 인근에 ‘카페 홈’이라는 커피샵을 차렸는데 당시 타운에 커피샵이 3~4개밖에 없을 때라 상당히 잘됐다. 7년 가까이 운영하다가 위층에 ‘쉬어가면 어떠하리’라는 민속주점을 열었다. 6년 넘게 운영하다가 결국 우국까지 이어졌다.
- 2호점을 소개해준다면
▲1호점을 쉬운 생각에서 시작했다면 2호점은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장소부터 인종, 고객층, 인테리어까지 철저히 고민하고 계산해서 오픈했다. 구이집의 문제점인 옷에 배는 냄새 문제를 해결하려고 테이블 밑으로 연기를 빼는 시스템을 설치했고, 무제한이지만 한식의 장점을 편안하게 낼 수 있도록 샐러드 바에 쌈이랑 야채섹션도 따로 마련했다. 한국적인 인테리어를 위해 거문고랑 사물놀이 쇼케이스를 만들었고 조선시대 민화도 걸어뒀다.
- 템플시티란 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손님들이 아이디어를 준 셈이다. 1호점의 주말 예약의 70%가 이쪽 지역에서 오는 전화였다. 이곳에 진입하면 잘 될 것이라는 감이 왔고, 지금까진 예상 적중이다.
- 한인들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실 타운 내 많은 식당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무리 사람이 북적여 보여도 사실 식당 매상은 ‘내가 있는 시간이 가장 잘되는 시간이고 이 집 매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그만큼 다들 힘들다. 한국 식당들의 가치를 인정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한인들은 한국식당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높은 편이다. 근사하게 차려진 밥상에 수없이 나오는 반찬을 생각하면 한식은 너무 가격이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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