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소년 보호감찰 실태
▶ 10대 비행소년에 초점 맞춰 운영 성폭행·임신 등 여성 건강문제엔 제대로 된 대처·치료 턱없이 미흡 LA카운티, 정확한 상황파악 착수
라트리스(18)는 회색 추리닝의 소매를 걷어 올려 팔뚝에 남아 있는 조그맣고 검은 여러 개의 선을 보호관찰관에게 보여주었다. 그녀의 가는 팔목에 새겨진 흉터는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는 흉흉한 삶의 이력서다. 그 중 몇 개는 수년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을 때 만들어졌다. 일을 당한 후 가슴을 쥐어뜯는 고통을 털어내려다 만든 상처다. 그때는 단 한 순간의 고통을 통해 평생 가시지 않을 영원한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는 자신이 알콜 중독자라고 털어놓았다. 학창시절은 8학년으로 끝났다.
열여섯 살에 아이를 낳은 미혼모 라트리스는 최근 보호관찰 위반혐의로 LA카운티 청소년 교화원에 입소했다. 4년에 걸쳐 무려 20여차례나 드나든 곳이니 거의 ‘내 집’이나 마찬가지다.
자그마한 몸집에 수다스런 그녀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항울제를 복용한다.
라트리스는 건강문제가 많다. 비단 그녀뿐 아니라 미 전국의 청소년 억류시설에서 생활하는 9,400여명 모두가 그렇다고 보아 무방하다.
교화원의 소녀 원생들에게는 주치의가 따로 없다. 주치의가 없으니 이들의 심리적, 정서적 문제는 진단도,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넘어가곤 한다.
교화원에 입소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원래 비행소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교화시설은 아직도 소녀 원생에게 적응을 하지 못한 상태다.
남자와 여자는 건강문제에도 차이를 보인다. 사내아이에 비해 계집애의 문제는 더욱 복잡하고 미묘하다.
연방 청소년 비행방지 사법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 교화원에서 지내는 소녀 원생 가운데 3분의 1이 성폭력 피해자다. 반면 소년 원생의 8%만이 같은 경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리적 폭력에 의한 피해와 자살 시도 역시 여자 쪽이 훨씬 많다. 설마 싶겠지만 마약관련 문제도 마찬가지다.
말이 좋아 교화원이지 교도소와 크게 바를 바 없는 전국의 청소년 유치시설 가운데 헬스케어의 최저기준을 충족시켜 주는 곳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시설과 운영방식 자체가 소년 위주로 되어 있어 10대 소녀 원생들은 헬스케어 측면에서 필요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시설이나 시스템 탓만 할 게 아니다. 이제까지 나온 연구결과에 따르면 교화원 담당자가 소녀 원생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상당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교화원의 스크리너(screener)는 건강전문가가 아니다. 이들이 소녀 원생에게 던지는 질문도 ‘여성용’이 아니다.
최근 LA카운티 보건국 관리들과 보호관찰관들은 카운티 청소년 교화시설의 여성 입소자들의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보다 정확하고 자세하게 파악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여기에 동원된 도구는 LA에 기반을 둔 ‘전국 교화원 소녀 원생 건강협회’ 회장인 레슬리 아코카가 제작한 117개 문항의 설문지다.
아코카는 “우리가 묻지 않으면 소녀 원생들의 건강문제는 눈에 뜨이지 않은 채 묻히게 된다”고 말한다.
소녀 원생들의 건강문제를 가려내기 위한 설문조사 프로그램은 샌타클라라의 교화원에서 시범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곳의 10대 소녀들은 절도, 폭행, 매춘, 기물훼손, 상습적 ‘땡땡이’ 등의 부적절한 행동 탓에 교화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들의 가장 공통적인 이슈는 임신이다. 전국 교화원 10대 여성 입소자의 3분의 1이 임신부다.
이 가운데 한 명인 샘은 생후 9개월 된 첫 아이에 이어 곧 둘째를 보게 된다.
샘(17)의 부모는 마약중독자였고 그녀를 키운 사람은 이들의 카운슬러였다. 천식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지닌 샘은 집에서 줄기차게 마리화나를 피웠고, 며칠씩 죽음보다 깊은 잠에 빠져들곤 했다. 가끔 악을 쓰며 울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카운슬러와 생애 첫 상담을 가진 것은 교회시설에 들어오고 난 후였다.
설문조사 결과는 또 가난으로 말미암은 건강문제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크리스티나(19)의 죄목은 ‘살상용 무기를 사용한 공격’이다. 처음 샌타클라라 청소년 교화원에 들어왔을 당시 그녀의 몸무게는 100파운드가 채 안됐다. 카운슬러들은 크리스티나가 상습적으로 크랙을 사용했을 것으로 단정했다. 크랙 중독은 현저한 체중감소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문조사를 통해 밝혀진 그녀의 문제는 굶주림이었다. 크리스티나는 집이 찢어지기 가난했기 때문에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고, 식사량도 턱없이 부족했다고 털어놓았다. 교화원에 들어온 지 불과 2주 만에 그녀의 몸무게는 15파운드가 늘었다.
마리(14)는 가장 최근에 들어온 입소자다. 발목에 수갑이 채워진 채 호송차량에 실려 샌타클라라 교화원에 도착한 마리는 자신을 마약중독자라고 소개했다. ‘폐쇄시설’에 들어온 이유는 마약사용과 거듭된 보호시설 이탈이었다.
보호감찰관인 캐더린 루소는 마리에게 ‘방’을 배정하기 전에 몇 가지 간단한 건강관련 질문을 던졌다. 임신을 한 적이 있는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거나 질환으로 약을 복용한 적이 있는지 등의 질문에 마리는 계속 고개를 저었다. 열네 살짜리 소녀는 적어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루소에게 설문지를 건네받는 마리는 빠른 속도로 답안을 써내려갔다. 스스로에 자해를 가한 경험도, 원하지 않은 섹스를 강요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하거나 상담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 듯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위험신호가 포착됐다.
“누군가 크게 다치거나 죽임을 당하는 광경을 실제로 본 적이 있느냐”는 문항에 마리는 서슴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정신적 트라우마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었고, 묻지 않으면 몰랐을 문제였다.
하지만 이처럼 지나칠 뻔한 건강문제를 찾아냈다 해도 지속적인 치료를 제공하기 힘들다. 청소년 교화원은 장기 감호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육체적, 혹은 정신적 건강문제를 지닌 입소자들은 대부분 치료가 끝나기 전에 퇴소한다. 퇴소 후 이들이 자기 돈을 내가며 치료를 계속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라트리스는 교화원에서 나간 후에도 치료를 계속 받을 계획이다. 간호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녀는 “새 출발을 결심한 것은 내 딸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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